진화생물학은 과학일까요 아닐까요? 정확하게 말한다면 과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왜 그럴까요? 인간의 경우에, 그것은 적합한 환경에서 대상을 선별하거나 실험을 할 수 없고, 인간과 비교할 만한 가까운 친척 종도 없고, 화석 기록도 사용할 수가 없는 까닭이죠.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면 진화생물학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죠. 그건 과학과 철학의 차이점도 마찬가지죠. 진화심리학이 과학인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어떠한 데이터를 낼 수가 없죠. 과학이 철학과 다른 것은 명확한 이론 이외에 '실증적 검증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겠죠. 그런 기준에 비추어볼 때 진화생물학도 과학이라 볼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학인 것 같지만 사이비과학들도 있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종교에도 사이비가 있듯이, 과학에도 그것들이 분명 있겠죠. 이를테면 '12궁도표'의 체계화를 신봉하는 점성술이 대표적이지 않을까요? 사실 황도상의 별자리는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고, 하늘의 별들도 실은 보이지 않는 별들이 훨씬 더 많잖습니까?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명확한 과학을 비롯하여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경계선에 있는 과학들까지 총망라하여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이비과학들이 이 세상에 판을 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죠. 이를테면 매스미디어의 영향력과 정치적인 파급력 같은 것 말입니다.
진화생물학자는 적응과 자연선택에 관한 가설을 검증할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검상꼬리송사리의 경우, 야생에서 그 물고기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고 그 시스템을 조작하는 실험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적절한 화석 기록이 없더라도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도록 가까운 친척 종을 살펴볼 수도 있다.(71쪽)진화생물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진화생물학이 '거의 과학'에 가깝다고 하죠. 물론 물리학이나 화학이나 분자생물학처럼 그것을 '명확한 과학'이라고 말하기는 꺼려하죠. 왜냐하면 가설 이론이 실증적인 검증으로 뒷받침될 만한 사안이 아닌 까닭이겠죠. 다만 검상꼬리송사리의 경우처럼 특별한 방식의 검증 가능성 때문에 그나마 '거의 과학'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걸 인간에게 대입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란 이야기겠죠.
'거의 과학'이란 말이 그렇다고 과학을 훼손하거나 폄하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이 책에서 알게 됐습니다. 더욱이 과학에는 '경성과학'도 있고, 또 '연성과학'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비역사적이면서도 단순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을 '경성'과학이라 하고, 역사적이면서 복잡한 주제를 다루는 과학을 '연성'과학이라고 설명하죠. '거의 과학'으로 일컫는 진화생물학은 아마도 '연성과학' 쪽에 기울어 있겠죠.
고어의 책은 지구를 담은 화려한 인공위성 사진으로 시작하고 끝나는데, 대체로 아름다운 사진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부분은 유익하고, 어떤 부분은 당면 주제에 적합하며, 또 어떤 부분은 고어 가족 앨범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가족사진은 반대자들을 화나게 했고 지지자들에게는 환호를 받았지만, 어쨌거나 기후변화에 관한 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225쪽)이 책 제 6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둘러싼 '과학과 정치'에 관한 논의죠. 사실 대부분의 과학계 주장은 온실효과가 본질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그것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정치인들을 끌어들인다고 하죠. 엘 고어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하고요. 더욱이 롬보르의 책들도 곧잘 인용한다는데, 사실 그는 기후과학자도 아니고 환경문제에 관한 전문가도 아니라고 하죠.
물론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은 온실효과가 아주 나쁜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고,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온실효과 때문에 지구가 그나마 적절한 기후 속에 살아간다고 하죠. 그게 없으면 당장 혹한 속에 살지도 모를 것이고요.
그런데도 그것을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 책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매스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던 유명한 '제임스 프레이(James Frey, <백만 개의 작은 조각들>의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도 실은 상당 부분 거짓이었다고 하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론에 비친 모습 그대로를 믿는다고 하죠. 그건 심령술이나 점성술과 같은 사이비과학들도 예외이지는 않겠죠.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에 많이들 빠져 사는 것 같습니다. 사이비과학을 과학이라 속이면서, 언론과 정치권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예전에 황우석씨도 언론플레이를 즐겨했으니 그런 흐름들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그때 분별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준을 놓쳐서는 안 되겠죠. 이른바 '실증적 검증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 말입니다. 그걸 일깨워주기 위해, 이 책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니 한 번쯤 탐독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