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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퇴근, 집으로 출근 집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회사로 퇴근, 집으로 출근집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 정가람

회사를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토요일 오전 식구들과 함께 이불 속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데 아내가 문뜩 한 마디를 던졌다.

 

"당신 토요일에 출근 안 하니까 너무 좋다."

"응? 왜?"

"왜긴 왜야. 회사 안 가고 이렇게 집에 있으니까 아이들 얼굴도 보고 편하잖아. 물론 금요일 밤 술 먹고 늦게 오는 경우가 잦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토요일 오전이 당신 시간이잖아."

"어...그렇지 뭐."

 

회사를 옮겨서 생긴 생활의 변화 중 하나는 토요일 근무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최소 격주로 토요일 근무가 있었는데 반해, 옮긴 회사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아내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그러나 난 아내의 말을 마냥 긍정할 수 없었다. 물론 아내 앞에서야 수긍했지만, 뒤돌아 서서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나의 삶은 더 편안해졌을까?

 

"당신 토요일에 출근 안 하니까 너무 좋다"

 

사실 결혼 전 토요일 근무는 정말이지 최악의 조건이었다. 매주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본사나 영업팀의 다른 동기들과 달리 출근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었으며, 사무실에 가서도 평일과 달리 특별한 일 없이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출근해야 되나? 애인과 데이트는 도대체 언제 하라는 거야? 이러니 회사에 노총각이 수두룩할 수밖에.

 

그러나 이런 불평불만은 결혼과 함께, 특히 아이를 낳고서 조금씩 변해갔다. 여전히 토요일 근무는 반갑지 않았지만, 예전만큼 마냥 싫지만도 않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난 만큼 업무가 익숙해지고 직급이 올라간 만큼 사무실 생활이 편해졌으니 그럴 수밖에. 자율 복장으로 출근해, 남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 심지어 오락까지 할 수 있는 토요일 오전은 예전과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달라진 회사 생활만큼이나 집에서의 내 토요일 오전이 결혼을 전후로 매우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결혼 전만 하더라도 늦잠을 푹 자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데이트를 준비했던 그 시간이, 결혼 후에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집안 살림을 도와야 하는 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이는 유아가 있는 경우 더 할 수밖에 없는데, 주말은 그나마 아내가 조금 쉴 수 있는, 대신 남편의 육아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일어나 자고있는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놀아야 하는, 남편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시간.

 

그러니 내가 어찌 집이 더 편하다는 아내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겠는가. 비록 직장상사의 눈치는 볼 지언정 최소한 하루 정도는 편하게 쉴 수 있는 회사가 경우에 따라서는 항상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집보다 나을 수도 있다.

 

부족한 잠을 떼워라 어디서든 자고 본다
부족한 잠을 떼워라어디서든 자고 본다 ⓒ 정가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결혼 전 불편해하는 밑의 직원들에 개의치 않고 굳이 주말에 기어 나와 책상 앞에서 온라인 고스톱을 치는 상사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들이 마냥 한심해 보였는데, 이젠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출근, 회사로 퇴근'이라는 절대 명제가 어디 그냥 나왔겠는가.

 

아마도 많은 남편들, 특히 육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남편들에게 회사는 집보다 편한 공간일 것이다. 회사는 아내의 잔소리는 물론이요, 아이들의 보챔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벌기 위해 수고한다며 정당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반해 집은 육아가 익숙하지 않다는 등의 그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치열한 삶의 전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와 달리 가족은 갈아탈 수도 없지 않은가. 


요컨대 아빠의 육아딜레마 중 가장 큰 부분은 휴식처로서 집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어도 남편은 집에서 쉬는 대신 육아라는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휴식이라는 것이 노동재생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결국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피로가 쌓인다는 것이며, 이는 또다른 양태로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가열차지는 부부싸움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아이랑 10분도 못 놀아주냐고?

 

나는 아직까지 두 아이의 아빠다 아이들과 노는 것은 나의 의무다
나는 아직까지 두 아이의 아빠다아이들과 노는 것은 나의 의무다 ⓒ 정가람

아빠의 또다른 육아 딜레마는 육아와 관련된 아빠의 행동들이 그 주체에 따라 다르게 평가됨으로써 육아활동 자체가 그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아내와 사회가 남성의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남성은 그와 같은 괴리 속에서 양측으로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우선 아내의 입장을 보자. 대부분의 엄마는 본능적으로 육아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따라 자신의 일을 우선으로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일의 수익 대부분이 아이에게 투자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육아는 엄마에게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많은 아내들은 남편에게 육아에 대한 공동책임을 요구한다. 자기만큼 아니어도 최소한 아빠가 퇴근 후나 주말에는 자식들과 놀기를 바란다. 그것은 아빠가 가져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집만 하더라도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잔소리 중의 하나가 "아이들하고 놀아주는데 10분도 못 넘기냐"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편이 생각하는 육아가 아내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내가 있기 때문인기도 하지만, 만약 남편이 그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면 그것이 육아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육아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은 자신이 사회에서 고생을 하는 만큼 집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를 갖게 마련이다. 물론 육아에 공동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앞서 자신의 경제활동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특히 이와 같은 보상심리는 자신의 직업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더욱더 강해지는데 그만큼 자신이 더 희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낮은 복지수준으로 인해 자신의 적성과 상관없이 급여만을 보고 직업을 골라야 하며, 직업조차도 양극화되어 대부분의 이들이 오로지 공무원과 공사, 대기업 직원에 목숨을 거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그러니 많은 남편들의 보상심리가 더욱 세지고 그만큼 육아의 공동책임을 원하는 아내와 싸울 수밖에.

 

남성의 육아휴직? 딴 나라 이야기

 

대한민국 아빠의 슬픈 자화상 주말은 남편의 육아시간이다
대한민국 아빠의 슬픈 자화상주말은 남편의 육아시간이다 ⓒ 이희동

 

아내는 시간 나면 집에 와서 같이 아이들 좀 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가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집에 가버리고 만다면 가부장적 구조에 있어서 그것은 그만큼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집안 단속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내에게 휘둘리는 변변치 못한 사내가 되는 것이다.

 

아내는 지금도 가끔, 첫째를 낳은 뒤 내가 회사 직원들과 축하주를 먹느라 새벽 4시에 들어왔던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바가지 긁지만 당시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사자로서 직원들의 축하를 받아야 했고, 그 자리에서 내가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남자답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내게 그 술 한 잔은 사회 생활의 연장이었다. 그것은 직장상사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였으며, 가부장적인 남성들 사이에서 퇴출되지 않기 위한 안쓰러운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위한 방안으로서 육아휴직 장려 등을 운운하지만 이는 얼척없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상사들에게 육아휴직을 거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도 윗사람들이 퇴근하지 않으면 일이 없어도 있는 척, 하릴없이 인터넷 쇼핑을 하더라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네의 현실인데 육아휴직을 거론한다고? 그것은 곧 회사보다 가정이 중요하다는 선언이며, 동시에 그만큼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고백일 뿐이다. 아직까지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업무 때문에 옆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영웅담으로 회자되는 것이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내 주위만 보더라도 남성의 육아휴직이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밖에.

 

쉴 수 없는 가장 남편은 피곤하다
쉴 수 없는 가장남편은 피곤하다 ⓒ 정가람

그러나 불행히도 아빠의 육아활동은 어떻게든 욕을 먹게 되어 있다. 남편은 성심성의껏 육아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나, 아내는 남편이 육아를 생색내며 도와줄 뿐 책임지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며, 남편은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만큼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는 집안 일 하느라 회사 생활에 충실하지 않는다고 떨떠름하다. 요컨대 아빠의 육아딜레마는 가정과 회사라는 두 공간에서 가장으로서 혹은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세대교체와 함께 계속해서 가부장적인 요소가 옅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회의 육아에 대한 책임 역시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러니 세상의 아빠들이여, 모두 힘내시라!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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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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