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우리 딸 새벽 1시까지 공부해요."
기 자: "고3이에요?"학부모: "초등학교 6학년이요."기 자: "네? 왜요?"학부모: "국제중학교 보내려고요. 일본어 수업이 밤 11시쯤 끝나고, 딴 거 좀 하면 금세 새벽 1시 돼요. 가엽지만 뭐 어떻게 해…. 그 정도는 해야 뭐든 될 수 있는 나라 아니에요?"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의 어린이집 동창생 엄마와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저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새벽 1시까지 공부해야 뭐든 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구나! 이런 나라가 정상적일까? 자꾸 곱씹어보게 됐습니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며 '기자질'로 밥벌이를 하느라 사실 책상에 애들을 앉혀놓고 공부를 시키지 못합니다. 아이의 공부에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숙제했니?" 정도가 고작이고, 주 1회 실시하는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해 주는 정도지요. 솔직히, 저도 받아쓰기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좀 봐주면 '만점'을 받지만, 안 봐주면 바로 '낙제점'이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는 지금 이 지겨운 받아쓰기를 왜 해야 할까요?""어? …."저는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애써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말은 끝까지 나오지 않더군요. 받아쓰기에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에게 "원치 않으면 하지 말자"는 과감한 목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리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공부는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한국에서 공부는 밥벌이 수단과 연결... 공부 안 하면 우리에게 공부는 그런 것 같습니다. 재밌어서 하기보다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한국에서 공부는 밥벌이 수단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며,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요즘 청년들은 너도나도 화려한 스펙을 쌓는데 열을 올리지요. 화려한 스펙을 쌓아도 좋은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1% 가능성에 목을 매고 모두 일렬로 서서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게 아닙니까. 어떻게든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 그러나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들, 홀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복지국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 복지국가를 현실로 만들기에 어려움이 많지요. 학생들은 날마다 학습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오마이뉴스> 기자실에는 상암중학교 학생들이 '직업체험'을 하러 방문했습니다. 우연히도 이 학생들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의 기자회견을 지켜보았습니다. 회견을 마친 국회의원들을 정론관 복도에서 만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제발 시험 좀 없애주세요. 학교가 너무 싫어요."전날 기말고사를 마쳤다는 학생들의 입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탄성이 쏟아졌습니다. 국회 교과위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국회 교과위 야당 측 간사를 맡은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은 "시험은 없어져도 공부는 해야지, 혹시 공부 안 하려고 시험 없애달라는 것은 아니지?"라며 농담을 걸었습니다. 몇몇 의원들은 "일제고사 폐지부터 생각해 보겠다"고 응원했습니다.
고백컨대, 요즘 아이들은 과거 저희 세대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공부를 합니다. 날마다 무거운 책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면 끝나는 데로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집에서 과외를 받으며 오로지 이 경쟁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그 부작용은 이미 청소년 자살, 왕따, 학교폭력 등의 문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즈음, 최근 열린 국회에서는 청소년의 건강권과 학습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김춘진 의원실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선행학습금지 특별법' 시안 발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김 의원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활동하지만, 18대 국회에서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교육 관련 단체의 입법발의를 돕는 것 같습니다.
"선행교육 참여자=학생성적 상위권"... 사실상 효과 없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02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연구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선행교육 참여자=학생성적 상위권"의 등식이 있지만, 여러 변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그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대부분 학생들은 선행학습이 효과가 없거나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교육 관련 기관들에 의한 선행교육이 없고, 문화적으로도 이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법률 제정의 가능성 자체가 불필요하지만, 우리는 선행학습이 너무 보편적인 상황이어서 이를 법률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행학습금지법'과 관련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아이들의 건강권을 이유로 '밤 중 학원이나 과외교습을 금지하는 법' 개정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인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13일 '학원·과외 밤 10시 이후 심야교습 금지 법률 개정안'을 내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제목이 눈길을 끌었지요. '청소년이 꿈꾸는 나라는 편안한 밤이 있는 삶'이다. 박 의원은 "전국의 절반 청소년들이 자정(일부는 초등학생 포함)까지 수업하는 '학생 과로 대한민국'이 됐다"며 "학원·과외 22시 이후 심야교습 금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박 의원은 "밤 10시 이후부터 오전 6시까지는 학원과 과외교습을 금지하고, 적발시 등록 말소나 교습정지,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했지요.
이 법의 개정안을 내는 취지에 대해서는 이런 의견을 밝혔습니다.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가 심야교습으로 학생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사교육 경쟁을 과열시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박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받은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학원 및 과외교습 시간 제한현황'에 따르면 전체의 절반인 8개 시·도가 자정까지 교습시간을 허용하고 있고, 울산의 경우는 초등학생까지 '24시간 교습허용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마저도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대부분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했지요.
박 의원은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1일 평균 수면시간은 OECD 가입국가 중 최저"라며 "고3 학생은 평균 5시간 14분, 중학생은 6시간 46분인데, 이것은 미국에 비해 각각 7시간 12분, 8시간 12분인 것에 비해 2시간 가까이 적게 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결과'에 따르면 늦은 시간 취침은 수면부족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고,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이상 학생의 평균 취침시간은 자정을 넘겨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박 의원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자료를 인용해 "수면시간이 8시간 미만인 청소년들은 자살, 우울증의 발생률이 높고, 일탈확률 또한 현저히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소년 건강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42%가 평상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32.8%는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낄 정도의 우울감을 앓고 있는데다 19.6%는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고, 6.8%는 자살을 계획했으며 4.3%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할 정도라고 합니다.
국회의 이런 움직임은 미래의 꿈나무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더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취지로 마련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인지, 어른이면 모두 함께 고민해 봐야합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이 많이 아프고 상처를 입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