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정말 추웠다. 난방이 들어오질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운행이 중단됐다. 이동이 불가능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16일 오전 국회 앞. 각계 시민단체 회원 40여 명이 모여 현 위원장 연임반대 공동선언을 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휠체어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2010년 12월 인권위 점거 농성 당시를 회상했다.
인권위, 난방 요청 거절... 장애인 활동가 폐렴으로 사망2010년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박 대표를 비롯한 장애인단체 회원 150여 명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1층~13층에서 1박 2일 점거농성을 벌였다. 장애인 인권 보호 촉구 및 현 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대회였다. 3일 밤에도 10여 명의 회원이 남아 11층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이미 2일부터 엘리베이터는 운행을 멈췄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들은 계단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11~13층에서만 머물렀다. 3일 밤부터는 11층에 전기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았다. 회원들은 추위에 떨었다. 인권위 측에 연락했다. 중증 장애인들이 있으니 11층이라도 난방을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인권위 측은 화재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부탁을 거절했다."박 대표는 맵찼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 활동가의 이름을 소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는 1급 중증장애인 우동민 활동가도 있었다. 우씨는 이날 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감기에 걸렸다. 4일 오전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이후 그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감기가 급성 폐렴으로 악화돼 12월 말경 다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2011년 1월 2일 그는 세상을 등졌다.
"몸이 약한 장애인들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인권위는 외면했다. 전기와 난방 등 기본적인 생존수단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활동가가 병에 걸렸다.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할 인권위가 도리어 이들을 내몬 것이다."박 대표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당시 인권위가 남대문경찰서에 시설보호 요청을 하며 장애인을 상대로 공권력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권력을 투입해서 장애인을 막는 게 근본적인 대책인가"라며 "사회적 약자가 아닌 정권을 지키려는 현 위원장은 인사청문회를 할 자격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인권위 측의 해명은 다르다. 지난 14일 인권위가 국회에 제출한 현 위원장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는 "2012년 7월까지 총 38번의 점거 농성이 있었다"며 "불법 점거 농성을 용인할 경우 위원회 업무 자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해결방안을 신중히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인권위는 당시 전기와 난방 공급을 중단했다는 주장에 대해 "위원회는 점거 농성기간 중 엘리베이터와 전기 공급을 중단한 사실이 없으며, 식사·의료진·활동보조인 출입 등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오늘(16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장향숙 전 인권위 상임위원이 증인으로 나와 당시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증언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직장 내 성차별 시정 요구했는데... "여성 차별이 존재하느냐"이외에도 현장에 있던 노동·여성·청소년·성소수자 등 8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현 위원장을 향해 날선 비판을 던졌다.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직장 내 성차별 시정을 인권위에 요구했는데 오히려 현 위원장은 '여성 차별이 존재하느냐'는 말을 했다"고 힐난했다. 검은빛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일제고사 문제 진정을 요구했는데 인권위가 물리쳤다"고 비판했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넘어 위원장 인선 제도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명숙 인권활동사랑방 활동가는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위원장을 뽑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현 위원장 같이 검증 안 된 사람이 위원장으로 내정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선언에는 시민단체 외에도 각계인사 1600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공동선언에서 "현 위원장은 인사청문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용산참사' 유가족, 민간인 사찰 피해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왜 보호하려 하지 않았는지 대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국회는 제대로 인사청문회에 임해 현 위원장의 연임을 막아야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연임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