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내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이야기를 풀어 헤치기에 앞서 수일 전, 술 취한 후 횡설수설한 말부터 꺼내야겠습니다.
아 글쎄, 지난주 지인들과 술 한 잔 거나하게 마시고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술김에 결혼 15년 차인 남편이 아내에게 건넨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여보. 당신 생일 때 내가 귀걸이 선물할 게.""당신이 웬일? 그 술에 뭐 탔데? 앞으로 그런 술만 마셔요. 호호~"아뿔사. 이 무슨 막말. 다음날, 맨 정신일 때 아내는 선물에 대해 확인 사살을 했습니다. 아시죠? 이럴 때 몸조심해야 한다는 거.
"당신 귀를 보니 하전하더라고. 하나 해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네.""당신이 해준다면 귀 뚫을 용의 있어요."아내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그렇다 치고, 저희 부부는 15년 전 결혼할 때 예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 없다고 서로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낭비 요인이 많다는 이유였습니다.
살다 보니 좀 아쉽더군요.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년 걸려 반지, 목걸이, 팔찌 등을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좋아하더군요. 아내는 마음의 선물을 무척이나 반겼습니다. 저까지 기분 좋았습니다.
아내에게 꽃 보냈더니...
아무리 술김에 한 약속이라도 지키는 게 도리. 그렇지만 아내는 며칠 전부터 "진심으로 필요 없다. 정말이니 살 생각 접으라"며 극구 사양했습니다. 왜 마음의 변화가 생겼을까?
어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출근 후 서둘러 꽃집에 전화했습니다.
"아내에게 꽃바구니 하나 보내 주소."오후에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꽃바구니 사진을 앞뒤로 찍어 보냈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문자.
"설마 내가 결제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이를 어째. 아내는 귀신이었습니다. 아내가 결재하는 거 맞거든요. 남편의 비자금을 기대했던 걸까, 싶었습니다. 비자금 이야기는 접기로 하지요. 하여튼 15년간 아내 생일 때 여지없이 꽃을 보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가 송금했습니다. 한편으로 아깝다고 푸념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분좋다더군요.
이번에는 결제에 대한 대답을 뒤로 늦췄습니다. 미리 기분 깰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제 저녁에 가족 생일파티를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여수세계박람회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아침 출근 전 딸이 "오늘 울랄라세션 공연 보러 갈 거야" 했거든요.
'아내' 입장보다 아들 옷 사주고픈 '엄마' 입장이 먼저
"저녁에 볼 건가요? 유비니는 박람회장에…."아내의 걱정(?)에 우리끼리만 저녁 식사하자고 했습니다. 미리 예약했던 채식 뷔페에서 메뉴를 바꿨습니다. 아들과 셋이 7천 원 하는 열무냉면으로 대신했습니다. 식사 후 아내는 "아들 옷 좀 사요. 3, 4년 옷 하나 안 사줬다"며 쇼핑을 요구했습니다.
"OK" 했습니다. 딸은 수시로 옷을 사는데 아들은 아무 말이 없어 사 준 기억이 없으니까. 아들옷과 신발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마다하는 아내 손을 억지로 끌고 보석 가게로 향했습니다.
"귀걸이 좀 보여주세요.""귀 뚫었나요?""대학 때 귀 뚫었는데 2~3년 만에 막힌 후론 안 뚫었어요.""그러면 안 되는데. 귀 뚫고 다시 오세요."생각해 보니 아내는 귀를 미리 뚫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 텐데, 그걸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아내 속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귀걸이를 선물받고 싶은 '아내' 입장보다, 아들에게 옷 사주고픈 '엄마' 입장이 먼저였던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위대하다 했을까? 못난 남편이 아내에게 할 말이라곤 이거 밖에 없네요.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다시 한 번 당신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