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월)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 기온마츠리의 전야제를 보기에 앞서 오후 4시쯤 기온마츠리를 주관하는 야사카신사(八坂神社)엘 들렀다. 폭염을 피한다고 나선 게 오후 4시인데도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가 후끈거려 한 발짝을 옮길 수 없을 정도다. 교토의 수은주가 끓고 있는 가운데 유카타(浴衣) 차림의 젊은 남녀들은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쌍쌍이 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었다.
마치 이날을 기다린 양 수많은 젊은이가 신사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후 6시가 되자 이미 야사카신사 앞 도로는 차량통행이 금지된 상태였고, 삼삼오오 전통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장관을 이뤘다.
기온마츠리를 주관하는 야사카신사(八坂神社)는 교토시민 사이에서는 "기온상(祇園さん)"이라고 친근하게 불리는데 '부처님' 할 때의 뜻과 같은 '기온님'의 뜻이다. 야사카신사의 원래 이름은 기온신사(祇園神社), 기온사(祇園社), 기온감심원(祇園感神院) 등으로 불렸으나 명치유신 때인 1868년 야사카신사로 바뀌었다. 명치정부는 신불분리(神仏分離) 정책을 취했는데, 이는 불교를 폐하고 신사를 장려하는 정책이다.
명치 때에 고대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절은 상당수 폐사가 되었고, 신사는 그 이름도 바뀌게 된다.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지역에 있던 고려사(高麗寺)가 폐사되고 고려신사(高麗神社)도 고래신사(高來神社)로 바꿔버린 것은 그 대표적인 불교 훼손 정책이다. 야사카신사 역시 기온신사에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오랜 전통의 기온마츠리는 야사카마츠리라고 하지 않고 여전히 기온마츠리로 부르고 있다.
기온마츠리의 전야제를 요이야마(宵山)라고 부르는데, 예전에는 하루는 해가 진 밤부터 시작한다고 보았다. 이날 전야제에는 다음날 가마행렬에 쓰일 가마들을 보존회별로 선보였다. 모든 가마의 등불이 켜지고 기온바야시(祇園囃子, 악사)가 연주하는 "곤치키콘"이라는 일본 특유의 전통 가락이 울려 퍼지면 한여름 밤의 축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기온바야시(祇園囃子)는 각 가마에 타서 일본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때 쓰이는 악기는 징, 북, 피리다. 호우카보코(放下鉾) 바야시의 경우 초등학생부터 70대 이상의 바야시가 있으며 현재 총 43명이다. 바야시는 초등학생 때부터 배우는 데 대체로 10년 정도 징을 먼저 배운 뒤, 북을 치거나 피리를 불 수가 있다. 보통 마츠리 때는 30여 곡이 쓰이며, 숙련된 악사의 연주는 마츠리의 흥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풍물굿의 흥겨운 가락에 젖은 한국인의 귀에는 다소 단조로운 느낌이 든다.
기온마츠리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되는데, 이 기간에 행해지는 중요한 의식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깃뿌이리(吉符入り, The Opening Ceremony)란 사실상 기온마츠리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관계자들이 신전에 모여 무사히 마츠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더불어 올해의 마츠리당번(祭當番)을 정하여 한해의 마츠리가 원만히 이뤄지길 비는 의식이다.*구지도리(くじ取式, The Lottery)란 제비뽑기로 기온마츠리의 하이라이트인 17일 가마행렬의 순서를 정하는 의식이다. 7월 2일 각 가마 보존협회 관계자가 모여 교토시장 입회하에서 제비를 뽑는다. 올해의 순번 2위는 갓쿄야마(郭巨山)로 정해졌다. 가마행렬 1위인 나기나타보코를 비롯한 8기의 가마는 제비뽑기에서 예외이며 이들은 항상 정해진 순번에 행렬한다.
*미코시아라이(神輿洗, Mikoshi Arai)는 신행제(神行祭) 때 쓰이는 3대의 가마 가운데 주신(主神)을 모시는 가마를 교토 시내를 거쳐 가모가와(鴨川)에 가서 물로 씻김의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씻김의식은 7월 10일과 28일 무렵에 한다.*요이야마(宵山, Procession Eve)는 7월 17일 기온마츠리의 절정인 가마행렬 전야제를 말한다. 또한 이때는 뵤우부마츠리(병풍제, 屛風祭)라고 해서 오래된 전통가옥이나 점포에서 조상 대대로 간직해오던 병풍이나 액자, 족자 등 골동품을 내어놓고 마츠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잠깐 공개하는 행사도 하는데 1000년 향기가 묻어나는 교토의 향취를 느낄 좋은 기회다. 그런가하면 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관광물품전도 여기저기서 열리므로 다양한 행사안내를 알고 가면 좋다. *구지아라타메(くじ改め、Lottery Confirmation)는7월 2일날 뽑은 제비 순서대로 가마행렬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의식으로 전통 옷을 입은 교토시장 앞에 와서 각 가마의 대표가 번호표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 보이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몸짓을 선보여 구경꾼들의 큰 환호를 받는다. 어른들이 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동작이 더 박수갈채를 받는다.*히키조메(曳初, Taking the Yamahoko for a Test Drive)는 7월 12일~13일에 행해지는 의식으로 가마행렬을 위한 설치가 끝나갈 무렵 여성을 포함한 일반시민이 가마를 끌어보거나 타볼 수 있는 행사이다.
이러한 의식이 7월 1일부터 진행되는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볼거리로 남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가마행렬(야마호코쥰코, 山鉾巡行)이다. 현재 마츠리에 쓰이는 가마는 야마(한자로는 "山"이라고 쓰며 무게 0.5톤~1톤 규모)가 23대이고, 호코(한자로는 "鉾"라고 쓰며 무게 7~12톤 규모)가 9대로 모두 32대다.
야마와 호코를 합쳐 야마호코 (야마보코라고도 함)라 부르며 높이 창이 달린 것이 호코이고, 키가 낮은 것이 야마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야마호코라는 말을 우리말로 "수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수레란 물건을 싣는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가마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가마는 귀한 사람이 타거나 신령을 태우지만, 수레에는 신령을 태우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마호코 순행은 한국말로는 "가마행렬"이 자연스럽다.
기온마츠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마의 출현은 당시 유행하던 역병(전염병) 퇴치를 위한 것에서 유래했지만, 오늘날 이러한 초기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가마는 나기나타가마(長刀鉾) 정도다. 다른 가마들은 기온신앙(祇園信仰, 기온마츠리의 유래를 갖고 있는 야사카신사 신앙)과 관계없는 일본의 전설을 토대로 꾸미거나 중국의 고사를 토대로 꾸민 가마가 많다. 가마뿐만이 아니라 1965년까지 미나미간논야마(南観音山)를 비롯한 9기 가마는 정식 가마행렬에서 빠져 별도의 가마행렬에 속하다가 1966년 마츠리에서 정식가마 행렬에 합세하는 등 가마행렬 자체도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7)에는 여성이 마츠리에 참가한 기록이 있으나 에도 중기 이후에는 여성의 마츠리 참여가 금지돼 현재도 가마행렬에는 여성금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의 참여를 용인해주는 "가마보존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성을 참여시킬 것인지를 각각 가마보존회 판단에 맡기는데 다만 참여시 "기온마츠리가마연합회"에 신고하게 되어있으며, 현재는 미나미간논야마(南観音山)에서 2명, 칸코호코(函谷鉾)에서 3명의 여성이 가마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가마행렬이 지나가는 연변에는 기온마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적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치마키"라고 한다. 치마키는 야사카신사의 제신인 우두천왕이 마을에 내려와 하룻밤 묵으려고 할 때 부잣집에서 거절당했으나 마음씨 고운 동생 소민장래(蘇民将来)는 우두천왕을 하룻밤 재워 주었다.
이에 감복한 역신(疫神)이 소민장래 자손들에게만은 치마키를 주고 이것을 달아 두면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받게 해준다고 약속한 데서 유래한 일종의 부적이다. 가마행렬 중간중간에 이 부적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필자도 한 개 받았다.
가마행렬 도중 츠지마와시(辻回し)라고 해서 12톤에 달하는 거대한 가마의 방향을 바꾸는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이는 가마 구조상 방향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도로에 대나무를 깔고 물을 뿌려 미끄럽게 한 후 기온바야시(악사)의 가락에 맞추어 힘찬 구령과 함께 통일된 행동으로 활기차게 방향을 트는 모습은 무더위 속에서 한줄기 소나기처럼 씩씩하고 활기차다. 뜨거운 폭염 속에서 32대의 가마가 한 대씩 한 대씩 지나갈 때마다 일본인들은 환호와 손뼉으로 화답했다.
필자도 이들 틈에 끼어 열심히 응원의 손뼉을 쳤다. 필자가 친 손뼉은 두가지 뜻에서였는데 하나는 무더위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육중한 가마를 끄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싶은 마음에서였고, 또 한 가지 이유는 1100여 년 전 기온마츠리의 유래가 고대한국에서 비롯되었는데, 오랜 세월동안 일본인들이 부단히 지금까지 갈고 닦아 나온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서였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이제 새삼 기온마츠리의 유래를 따져서 무엇하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스가타 (菅田正昭)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 앞으로 일본의 마츠리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지속할 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마츠리 구경꾼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마츠리에 참여해서 육중한 가마를 끌거나 밀어주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츠리 본래의 종교성이 희박해지면서 지역의 이벤트화가 큰 원인이다. 앞으로 저출산 시대를 맞아 오늘의 마츠리가 어떤 상황을 맞게 될는지 걱정이다."한국인으로 기온마츠리를 지켜보면서 유감스러운 것은 신라의 신 우두천왕의 노여움을 달래려고 시작한 기온마츠리에 대한 유래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화려한 가마행렬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기온마츠리의 유래를 역사기록대로 밝혀 둔다면 꾸준히 한국인 관람객들도 늘어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옛 신라지방을 중심으로 기온마츠리를 통한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결국 마츠리(matsuri)는 맞으리(mazuri)로 사람이든 신이든 맞이하여 화목하게 지내자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폭염에 지쳐 하나 둘 예약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뜬 뒤에도 필자는 오래도록 신라신 우두천왕을 기리는 기온마츠리의 후끈한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일본인이 보는 기온마츠리와 서양인이 보는 마츠리 그리고 기온마츠리의 역사와 유래를 아는 한국인이 보는 마츠리는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올해 임시로 선보인 마지막 33번째 가마가 다 지나간 자리 위로 천여 년을 울어 온 듯한 매미 소리가 우렁차다. 가마가 떠난 자리에서 오이케도오리가 떠들썩하도록 매미들은 신라인의 후손이 들으라고 그렇게 울고 있었다.
<기온마츠리 정보안내>
|
*기온마츠리는 매년 축제의 절정인 가마행렬 날짜가 변경되므로 미리 조사하고 간다.(매년 7월 17일 전후) *기온마츠리를 보러 가는 사람은 챙이 깊은 모자와 얼음물, 찬수건 등은 넉넉히 준비해간다. *JR교토역 2층 종합안내소에 가면 한국어로 다양한 자료와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기온마츠리의 32대 가마를 비롯한 상세한 기온마츠리의 유래는 필자의 저서 야사카신사 사이트 : http://web.kyoto-inet.or.jp/org/yasaka/index.html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p106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