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 눌리네."20일 오후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엘리베이터 안. 한 인권위 여성 직원이 13층 버튼을 연신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19일)부터 13층 버튼만 눌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직접 4~5차례 눌러봤지만 '삑삑' 소리만 날 뿐이었다. 12층에서 내려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도 되지만, 이곳 역시 직원들만 이동할 수 있도록 보안장치를 설치해 뒀다. 한마디로 13층은 '철통보안' 상태다.
인권위 13층에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집무실이 있다. 현 위원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인권단체들의 위원장실 '기습 방문'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13층 버튼을 차단한 것이다.
용산참사 유가족 방문 때도 13층 버튼 눌리지 않아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위원장 면담을 요청하거나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인권위에 가면 인권위 측은 바로 13층으로 가는 버튼을 끈다"며 "현 위원장 부임 후 자주 그랬는데, 그의 연임을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진 올해(2012년)가 특히 심하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현 위원장 면담을 요청하며 인권위를 방문했을 때도 13층 버튼은 눌리지 않았다. 18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현 위원장에게 '특별 선물'을 주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명숙 활동가는 "당시 1층에 있는 경비원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해 '13층 껐습니다'라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전에도 인권위가 활동가들의 13층 진입을 강력하게 막았던 적이 있다. 지난 2010년 12월 각계 인권단체들이 현 위원장 사퇴 요구 농성을 벌였을 때다. 그때는 인권위의 엘리베이터 운행 자체가 멈춰 농성 중이던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의 이동권을 제한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혹시 청와대가 현 위원장의 임명을 강요할 경우, 인권단체가 또다시 인권위 점거를 시도할 것을 우려해 13층 버튼을 미리 차단한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명숙 활동가는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최근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며 "여론도 안 좋은데 설마 강행할까 싶다"고 말했다.
인권위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경우 대비"인권위 측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위원장실이 있는 13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차단한다고 해명했다. 홍보협력과의 한 관계자는 "인권단체에서 13층을 방문한다는 정보가 있으면 운영지원과가 보통 13층 버튼을 끄곤 한다"며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지원과 관계자도 "19일부터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해 13층 버튼을 껐다"며 차단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홍보협력과로 인권단체 관련 창구를 단일화했고, 모든 상담·민원은 7층 인권상담센터에서 하는 게 원칙"이라며 차단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현 위원장은 어떻게 출근할까. 위원장 비서실의 직원은 "(현 위원장은) 19일, 20일 출근한 상태고 지금도 위원장실에서 업무 중"이라며 "12층에서 내려 비상계단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13층 버튼 차단문제와 관련해서는 "운영지원과에서 결정하는 사안이지, 비서실은 전혀 모른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