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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웅과 SS501 김형준, 철학자 니체를 사이에 두고 양극에 있는 연예인들이다. 얼마 전 엄태웅은 KBS 2TV <해피선데이 - 1박2일> 상식 퀴즈 대결에서 '신은 죽었다'는 말을 남긴 철학자를 묻는 질문에 정답을 맞춰 이른바 '상식남'으로 지칭됐다.

반면 SS501 김형준은 니체 덕분에 일찍이 '백치남'이 된 바 있다. 지난해 4월 MBC TV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에서 음악의 아버지를 묻는 질문에 니체라고 적었던 것. 니체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신은 죽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다보면 괴물처럼 된다" 등 수많은 인용의 홍수 속에 눈에 띈 에피소드들이다.

니체를 검색어로 지정하다니…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을 것이다. 책장 구석에 묻혀 있던 니체를 키보드로 되살리게끔 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김영사의 <니체 극장>, 고명섭 <한겨레신문> 문화부장이 상당한 '공력'을 발휘했음에 분명한 책이었다.

강렬한 보도자료의 유혹, 결국 <니체 극장> 상영 중간에...

 <니체 극장>, 864페이지에 이른다
<니체 극장>, 864페이지에 이른다 ⓒ 이정환

니체, 그 이름이 주는 부담만큼이나 그 두께 또한 엄청났다. 팔 백 하고도 다시 오십 여 페이지를 넘는 분량은 딱 '엄태웅' 정도의 '상식남'에게는, 차라리 가혹했다. 아무리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은 리뷰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보도자료의 유혹이 강렬했다. 하지만.

"2000년 서양철학사 중 '가장 위험한 철학자'이자 '모순의 철학자' 니체. 역사상 그 어떤 철학자 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푸코, 들뢰즈,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의 해석적 맥락 속에서…"

짜증이 확 치밀었다. 이는 '니체 = 신은 죽었다' 정도 등식만 간신히 연결짓는 나와 같은 독자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니체의 한 쪽 면만을 보고 마치 그것이 니체 사상의 전부인 양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오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꼼수'를 발동시켰다. 딱 한 파트만 정독하자. '신은 죽었다'는 말 또 '초인'의 이면은 무엇이냐. 대체 차라투스트라가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이냐. 이 정도만 '관람'해도 상식남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으로 한참 상영 중인 '니체 극장'에 기어 들어갔다. 마침 반전을 예고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삼각관계에 차이고 채인 니체, '차라투스트라'란 반전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탄생시킨 배경에 있는 '삼각 관계'. 가운데 인물이 니체의 친구 파울 레, 채찍을 들고 있는 여성이 루 살로메다. 저자는 이를 두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될 때 두 사람의 관계가 즉각 권력 관계로 바뀐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해도 좋다"고 풀이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탄생시킨 배경에 있는 '삼각 관계'. 가운데 인물이 니체의 친구 파울 레, 채찍을 들고 있는 여성이 루 살로메다. 저자는 이를 두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될 때 두 사람의 관계가 즉각 권력 관계로 바뀐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해도 좋다"고 풀이했다 ⓒ 김영사
그 반전의 출발은 삼각관계였다. 물론 그 '이등변 삼각형'의 꼭지각에는 스물 한 살의 러시아 여성이 있었다. 그 이름은 루 살로메. 양쪽 밑각에는 니체와 또 그의 친구 파울 레가 있었다. 문제의 출발은 열 한 살 연하의 여성을 짝사랑하는 레였다.
서로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성적 접촉도 없는 두 남자와의 공동생활. 이런 루의 '어장관리형' 꿈을 사랑을 이루는 계기로 '역이용'하려는 레, 니체를 끌어들인다. 그런데 니체도 루에 '꽂힌다'는 거, 전형적인 스토리다.

하지만 역시 루는 '밀당'의 고수였나 보다. 레한테는 일단 빼고, 니체는 완강히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시작한 그들의 '불안 불안한' 동거는 한 달 동안 지속됐다고 한다. 와중에 레와 루는 사랑을 키워 나가고, 결국 그들은 이사를 핑계로 니체를 '팽'시킨다. (바보 같은 니체, 이런 뻔한 꼼수에 속다니…)

그래서 반전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 유명한 책이 이처럼 니체의 삶의 최저점에 쓰였다는 것 말이다.

이를 두고 고명섭 '연사'는 "그 심리적 극한 상황에서 고통과 분노와 절망뿐인 진창 같은 현실을 황금으로 바꾸어낸다"고 표현한다. 어떤가. '신은 죽었다'는 명언, 인간적으로 '확' 다가오지 않는가.

니체 반국가주의의 '진실', 인종 말살의 그림자가...

"지난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가장 큰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모두 죽어갔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초인이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머리말과 '베푸는 덕에 대하여' 중에

결국 '신은 죽었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깊은 절망이 탄생시킨 셈이다. 이 책의 저자가 인도하는 대로, 니체의 삶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그 저술의 꼼꼼한 분석을 그저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니체의 사상이 '반전스럽게' 다가왔다.

니체의 '반국가주의의 진실'이 그 예다. 저자에 따르면, "선과 악이라는 말을 다 동원해가며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국가"이고,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소유하든 그것은 부당하게 취득한 장물에 불과하다"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전혀 급진적이지 않다.

그 이면에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 국가"라는 어두운 니체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니체의 반국가주의는 극단적 엘리트주의이자 냉혹한 귀족주의의 변형"이라며 "초인으로 가는 길에는 인종 말살의 음울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차라투스트라의 말 "여인은 기껏해야 암소 정도"

 히틀러를 만나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반유대주의를 둘러싸고 오빠와 불화를 빚었다고 한다. 저자는 니체는 반유대주의 운동을 혐오하고 명백하게 반대했다고 전했다
히틀러를 만나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반유대주의를 둘러싸고 오빠와 불화를 빚었다고 한다. 저자는 니체는 반유대주의 운동을 혐오하고 명백하게 반대했다고 전했다 ⓒ 김영사

'니체 극장'의 '반전'은 이뿐만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여성에 대한 니체의 인식은 자못 충격적이다. "여인에게는 우정을 나눌 능력이 없다. 여인은 여전히 고양이며 새다. 기껏해야 암소 정도" 역시 차라투스트라의 말이었다.

"나는 남자는 전쟁에 능하고 여자는 아이 낳는 데 능하길 바란다. 남자는 전투를 위해 양육되어야 하며 여자는 전사의 휴식을 위해 양육되어야 한다", 저자는 니체가 여성을 출산의 도구, 남성의 종속물로 보는 관점을 반복한다고 적시한다.

따라서 니체에게 평등은 "만인이 평등하게 저급해지는 길"이며, 평등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은 정의로운 복수심에 젖어있는 자들"일 뿐이다. 이처럼 저자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이 파시즘적 요소가 강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런 요소와 정면 대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저자는 "민주주의나 평등주의에 대한 반대가 니체의 목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니체는 삶의 자기 극복과 초인의 탄생을 목적으로 삼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민주주의나 평등주의 이념과 가치들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고 보았던 것일 뿐"이라고 '변호'한다. 저자의 문제 의식이 '어두운 니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식남' 엄태웅이라 더 피하기 힘든 '니체의 함정'

 파시즘의 사상적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니체
파시즘의 사상적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니체 ⓒ 김영사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른바 '식자층'이 니체를 소재로 더 속이기 쉬운 상대는 '엄태웅'일까, 아니면 SS501의 김형준일까. 그렇다. '니체라는, 그 네임밸류의 함정'에 더 빠지기 쉬운 상대는 엄태웅으로 대변되는 '상식인'일 것이다. 저자의 문제 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니체의 사상은 약이자 독이다. 니체는 원액 그대로 맛을 봐야 하며 할 수 있다면 원액 그대로 마셔야 한다. 그 니체를 소화하면 약이 되고 소화하지 못하면 독이 된다…(중략)…니체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어떤 영웅주의를 흔들어 깨운다. 니체가 일깨우는 영웅주의는 평온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불안 속에, 고통 속에 억눌려 있던 폭발하는 힘이다."

돌이켜보면 앞서 대선을 뒤흔든 바람은 '영웅주의'였다. 이 책의 시의성이 가볍게만 보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한 사람의 여러 '얼굴'을 바로 보기. 어쩌면 이것이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민주시민으로서의 '초인'에 가까워지는 길인지 모른다. <니체 극장>이란 장편 영화를 '도둑 관람'한 소감치고는 근사했다. 무더운 여름, 좋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지음, 김영사(2012)


#니체#신은 죽었다#차라투스트라#니체 극장#엄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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