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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 건설현장에서 입주 예정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 건설현장에서 입주 예정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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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있으면 친구들과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 나는 전학 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만약 반을 또 옮기면 전학을 너무 많이 가는 것 같다."

박난순(46)씨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인 두 자녀의 엄마다. 박씨에게 내 집 마련은 절실한 꿈이었다. 집이 없는 탓에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되면서 아이들은 3번씩이나 전학을 다녀야 했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한 달 만에 분반이 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설 학교였던 중학교는 완공이 안 돼 큰딸은 공사 중인 학교에 다녀야 했다. 위험한 공사장에 아이를 보내야 했던 박씨의 마음은 집 없는 설움보다 더 아팠다.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된 박씨는 꿈에 그리던 집을 얻었지만 도시 내에 초등학교를 비롯해 교육시설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쁨은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약 3000가구가 들어서는 보금자리 내 설립될 초등학교는 단 하나였다.

"저는 학교급식당번, 교통정리 한 번 못 가본 소극적이고 형편없는 엄마입니다. 그렇지만 학교 부족 사태로 아이가 또다시 아픔을 겪어야 한다면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 추가 신설이 꼭 필요합니다."

불안한 입주민... 시행처, 정부기관 무관심으로 일관

서울시 송파구, 성남시 창곡동, 하남시 학암동 일대를 아우르는 위례신도시에 보육시설과 학교 부족으로 '보육대란'이 예상된다. 총 4만3000여 세대 입주 계획인 위례신도시 내 보금자리주택 시범단지인 8블록, 11블록에 2949세대가 내년 12월에 처음으로 입주할 예정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보육시설 등 기반시설 부족을 우려하는 입주민들 반발이 거세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24일 오전 11시 위례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보금자리주택 입주 예정자 5명을 만날 수 있었다. 2500여 명이 가입한 '위례신도시입주자연합회'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자신을 '위례맨'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지난 1월 초등학교 등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사와 관련 부처 등을 직접 찾아다녔다고 했다. 구청장, 시의원, 국회의원을 붙잡고 상황을 호소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들은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보금자리주택은 정부가 무주택 서민을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 부문을 통해 직접 공급하는 주택사업이다. 청약저축에 가입한 무주택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입주세대가 맞벌이 부부인 경우가 많다. 또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의 경우 혼인기간 5년 이내이고 출산(임신 포함)해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15% ▲ 만 20세 미만인 자녀 3인 이상의 '3자녀 특별공급' 10% ▲ '생애최초 특별공급' 20% 등 다자녀 가정 지원 정책 및 출산 장려 정책을 적용한 가구수가 절반에 가까워 다른 공공주택에 비해 취학 아동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위례신도시 사업설계에 따르면 보금자리주택 8블록, 11블록 주변에 설립될 초등학교는 단 한 곳뿐이다. 이후 10블록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 학생 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또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으로 영·유아가 많은 세대 특성상, 초등학생 수는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입주민들은 "현재 예상 학생 수는 1200~1300명 정도지만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 3000명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학교를 추가 신설하지 않으면 분반, 오전·오후반 2부제 수업 등 과밀학급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10블록 단지 내에 초등학교를 신설해 달라는 것이다.

위례신도시 시행사인 LH공사 관계자는 "예측했던 것보다 학생 수가 더 많을 것이란 우려에 공감한다"며 "해당 초등학교는 1600명 정도 수용 가능하나 과밀학급 등으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교육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단지 내에 초등학교를 신설하기보다는 임대아파트 가구 수를 조정해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위례신도시 서울 지역을 관할하는 강동교육청 담당자는 "위례신도시는 다른 개발지구나 신도시보다 훨씬 많은 다자녀 혜택을 준 곳, 특히 신혼부부 혜택을 많이 준 곳이기 때문에 학생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현재 예측되는 상황이라면 초등학교를 추가 신설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용지 확보 문제를 LH와 합의하지 못한 상태로 지금 당장 추가 신설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위례신도시 조감도 일부. 보금자리주택 8단지와 11단지 사이에 초등학교가 건립된다. 그 옆에 있는 10단지에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서 주변 지역 초등학생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례신도시 조감도 일부. 보금자리주택 8단지와 11단지 사이에 초등학교가 건립된다. 그 옆에 있는 10단지에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서 주변 지역 초등학생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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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맡길 곳 없어 워킹맘은 직장 그만둬야 하나

취학 전 영·유아를 위한 보육시설 문제는 더 심각하다. 출판사에서 편집 업무를 하는 워킹맘 박정선(42)씨는 6살, 21개월 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돌봐줄 친척이나 지인이 없어 근무 시간에는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해서야 간신히 아이들을 돌본다. 위례신도시에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지만 박씨는 입주할 일이 두렵다. 단지 내 마련된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위례신도시에서 서울 용산에 있는 직장까지 출근하려면 적어도 오전 7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국공립 어린이집 외에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민간 어린이집은 찾기 어렵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입주 시기를 미루고 싶지만 5년 이상 의무거주 규정 때문에 입주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박씨는 집을 얻는 대신 직장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계문제까지 걱정하게 됐다.

현재 사업설계에 따르면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 내에서 영·유아를 맡길 수 있는 곳은 단지별로 59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 하나뿐이다. 즉 두 단지를 포함해 해당 보육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영·유아 수는 최대 118명이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자체 조사 결과 예상되는 영·유아 수가 1000여 명에 이를 것"이라며 "나머지 800명의 영·유아들은 어떡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LH 관계자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대한 규정'에 따라 보육시설을 설계한 것"이라 설명했다. 현행법상 주택건설기준 등에 대한 규정 55조에 따르면 3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주택단지에는 상시 21명 이상(500세대 이상인 경우에는 40명 이상)의 영유아를 보육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500세대 이상에 40명이라면 1000세대 이상의 경우 적어도 80명은 되어야 하지 않느냐"며 주택건설 기준 규정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입주자들의 민원에 LH측은 개정된 주택법시행령에 따라 의무거주제한을 완화해 "1층에 어린이집용 임대를 허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입주자들은 '거주 의무 차별 문제'와 '소음으로 인한 분쟁' 등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시설 추가 건립 문제 역시 토지 매입과 관련해 송파구청이 '예산 부족' 등으로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 영유아를 둔 입주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수요 예측 규정 마련... 보육료 지원보다 인프라 확충에 힘써야

시행사의 수요 예측 실패로 뉴타운·신도시 유치원 부족사태와 초등학교 과밀학급 문제가 고질화하고 있다. 성남 판교신도시 산운마을에는 약 3500가구가 입주했으나 보육기관은 최대 130명을 수용하는 공공 병설 유치원밖에 없어 경쟁률이 7대1에 이른다. 나머지 어린이들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 등으로 '원정 취원'을 해야 한다. 

택지개발지구인 서울 광일지구는 본래 들어서기로 했던 초등학교가 완공되지 않아 학부모와 입주민들이 피해를 입어야 했다. 서울 은평구 뉴타운 단지 내 설립된 은빛초등학교 역시 학생 수 예측 실패로 개교 석 달 만에 교실을 증축하는 상황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신도시 보육·교육대란이 반복되는 까닭은 보금자리와 같은 공공주택 건설기준에 국공립보육시설 설치와 관련해 특별히 규정된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500세대 이상인 경우 단지내 40명 이상의 영·유아를 보육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한다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최정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연구원은 "뉴타운·신도시의 경우 다자녀 세대 등에 입주 우선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수가 많을 수밖에 없으나 시행사와 정부 기관이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적 근거만으로 시설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사람이 차면 민간 어린이집이 알아서 들어올 것'이라는 행정편의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가 뉴타운 등을 건설할 때 세대의 특성을 파악해 교실을 정비하고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위례신도시 입주 예정자 박정선씨는 "정부나 정치인들이나 하나같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은 하는데 정작 현실에 전혀 도움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말로만 출산장려를 외칠 것이 아니라 출산과 보육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김희진 기자는 16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입니다.



#위례신도시#보육시설#유치원 부족#초등학교 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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