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2단독판사 정원석 판사는 기간제 교사로 수년간 근무한 원고들에게 "각각 476만∼883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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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판의 원고들은 4명의 기간제교사. 이들이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재판은 시작조차 못 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용기를 냈을까. 그 배경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소송을 계획하고 원고들을 모은 사람, 경기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안홍균 교사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도와 달라'... 대체 무엇을?
지난 2010년 5월 15일. '비정규직' 교사인 기간제교사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 한 정교사가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도움을 청한 이는 안홍균 교사. 그는 자신을 '비기간제교사'라고 소개했다. 기간제교사보다 나으면 낫지 못한 게 없는 정교사가 대체 무엇이 급해 기간제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일까.
안 교사의 요청은 '기간제교사들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하고 싶으니 원고가 되어 줄 이들은 연락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이 글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고맙다' '제발 그러면 좋겠다'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선뜻 원고가 돼 나서겠다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안 교사는 끈질기게 그 인터넷 카페에 '원고를 구한다'는 글을 연거푸 올렸고, 네 명이 쉽지 않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2년, 그들은 '기간제교사 성과급 지급 소송 1심 승소'라는 성과를 거뒀다.
자신의 문제도 아닌데 도대체 왜 안 교사는 이런 일을 계획한 것일까. 당시 기자는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물었다.
"성과급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성과급 차등 지급 자체를 반대해요. 눈에 보이는 교육적 성과(?)에 따라 차등 보수를 지급하는 교과부의 어리석은 행정으로 생기는 교사 간 갈등이 불편해서죠. 하지만 교사들 중 정교사에게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더더욱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같은 교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기간제교사들은 저와 똑같이, 때로는 저보다 더 많은 일을 했어요. 그런데도 그들은 차별 대우를 받았죠. 그 차별의 대표적인 경우가 성과급 미지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 곁의 동료들에 대한 명백한 신분 차별이고 저를 그 신분 차별의 수혜자로 만드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기간제 교사가 직접 소송에 나서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분이 불안해 현실적으로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래도 처지가 좀 나은 제가 뭔가 해보려고 했을 뿐입니다."이후 그는 통장에 들어온 성과급을 차마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았단다. 그리고 그 모인 돈으로 소송비용을 대 법적으로 기간제교사들이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같은 일 하면서도 성과급 못 받던 기간제교사들
기자는 안홍균 선생과 전화 통화를 했던 2년 전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기자는 안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자는 지난 2002년, 1년간의 기간제교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2003년, 기자는 정교사가 되자마자 전교조 본부에 찾아갔다. 기간제교사들에 대한 '차별'과 정교사 채용에 대한 '희망고문' 등을 토로하며 전교조 차원의 대응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무도 안타깝지만, 그건 기간제교사들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는 답변이었다.
근무 중인 학교의 동료 교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노력해서 정교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또 기간제교사들의 성과급 미지급에 대해서는 "교과부 지침에 따라 기간제교사는 본래 (성과급 지급)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지침 자체가 위법이고 부당한 것 아니냐'는 항변에는 "그럼 기간제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일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기간제교사 성과급 배제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규직) 성과급 차등 지급이 문제"라며 '그들만의 리그'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타까웠다. 노동분야 중 교단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가 가장 약하다는 말이 새삼 가슴 깊이 다가왔다.
우리나라 기간제교사들은 쉽사리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좁은 교직 사회서 자칫 '찍혀' 재임용이나 정교사가 되는 길이 영영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직접 싸우라'고 말하는 교직 사회의 기득권층, 정교사들의 모습은 기간제교사 시절을 뼈아프게 경험한 기자에게는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얼마 뒤 기자는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으니 더 이상 방법이 없네'라며 기간제교사 차별 문제에 대한 고민을 접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나는 이제 더 이상 기간제교사가 아니니까 상관 없어'라는 비겁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정의 외치지만 눈 앞 부조리에는 침묵하는 사람들해마다 성과급 지급 시기가 되면 회의 시간에 "왜 나는 B급이냐" "왜 저 사람이 S급이냐"라는 날이 선 목소리가 오가는 학교도 있다. 또 교무실은 성과급을 어디에 쓸지 이야기 나누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기도 한다. 그 목소리들 앞에서 기간제교사들은 그저 굳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들려도 못 듣는 척이랄까. 성과급 지급 초기에는 뜻있는 교사들이 성과급의 일부를 모아 기간제교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학교들은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안홍균 교사는 달랐다. 성과급에 있어 그는 '어떻게 해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고민은 옆자리 기간제교사들의 흔들리는 눈빛과 깊은 한숨에 닿아 있었다.
이후 소송이 진행되자 전교조는 뒤늦게나마 안 교사의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이와 관련해 안 교사는 "성과급 지급 자체를 반대하는 전교조로서는 이런 소송, 즉 평등하게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소송에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며 "그래도 전교조가 오랜 고민 끝에 뒤늦게나마 적극 나서기로 결정해 정말 다행이고 전교조에게 정말 고맙다"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지난해에 기간제교사 성과급 소송을 '전교조 기획 소송'으로 삼고 소송 비용을 전액 부담했다. 현재 전교조는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기간제교사들의 성과급 집단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안 교사는 적어도 기간제교사 성과급 문제에 있어서 선구자라고 부를 만하다. 소설 <헬프>에서 자신은 백인임에도 흑인 가정부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를 알리고자 노력한 여기자 스키터나 자신은 독일인임에도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한 오스카 쉰들러가 그랬듯 안 교사도 정규직 교사지만 기간제교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썼다. 세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기득권자가 가져야 할 바른 태도'였다.
기자는 안 교사에게 여러 번 인터뷰를 제의했으나 1심 재판 전날(6월 27일)까지 그는 제의를 거절했다. 부끄럽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안 교사는 "소송의 불씨는 제가 당겼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싸우신 정의로운 분들은 원고들과 변호사"라며 "나는 그저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고자 시작한 일일 뿐"이라고 답했다. 또 "혹여 재판에서 지게 되면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으면 이길 수 있었던 싸움에 누를 끼친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적지 않은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잠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가장 좋은 건 정교사가 늘어나는 것"그런 안 교사는 지난 6월 28일 승소 소식을 접하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크게 웃으며 '술 한잔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7월 2일 성과급 소송의 원고와 소송 대리를 맡은 변호사 등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뒤늦게나마 인터뷰에도 응해줬다.
"현재 혁신학교에 온 정신을 쏟고 있다"는 안 교사는 인터뷰 중 "사실 기간제교사와 관련한 문제에서 진정한 대안은 성과급 소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간제교사 성과급 소송 1심에서 이긴 날, 누구보다 기뻐하던 그가 한 말치고는 조금 어색했다.
"기간제교사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 진정한 대안은 정교사를 최대로 확보하는 겁니다. 기간제교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신분상의 불안'이니까요. 신분이 불안하면 소신 있는 교육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규직 교사를 늘리고 비정규직 교사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장기적으로 '정교사 확보' 노력과 함께 '기간제교사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죠. 성과급 미지급뿐 아니라 '교직원복지포인트 미지급' '방학 기간을 제외한 계약' 등 차별적인 처우들이 아직도 산재해 있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말 많이 쓰지요? 교직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동을 한다면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안 교사의 답변은 놀라웠다. 그가 기간제교사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장기적·근본적 대안과 당면 과제를 나눠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의 저녁식사비는 안 교사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는 "전교조 기획 소송 덕에 통장에 모아놨던 성과급 소송비가 고스란히 남았다"라며 "그러니 오늘 밥값이라도 내야 덜 미안하다"고 우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꼭 이긴다"며 크게 웃는 안 교사를 보며 기자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단순히 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6월 28일의 1심 승소는 단순한 금전적 보상을 넘어 '권리의 보장'이자 '정의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 더, 기자가 기뻤던 이유가 있다. 십여 년 전 "그건 그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자신들의 성과급 배분에 연연하는 정교사들보다 '상대적 약자를 위해 싸우는 정교사'의 실천이 결실을 거둔 날이기 때문이다.
기사를 탈고할 때쯤, 안 교사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다. 그는 "현재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가 정부를 상대로 '기간제교사 성과급 지급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기간제교사들이 한 데 모여 꼭 이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교사들 역시 기간제교사들의 권리 찾기에 지지를 보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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