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북쪽 끝에는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에서 제일 큰 섬이 있다. 지도에서 이 섬을 볼 때면 '저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또는 '저 섬에는 무엇이 있을까'하고 상상하게 된다.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린란드는 동경의 땅일 것이다. 그곳에는 거대한 모피를 두른 불굴의 사나이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도에 남은 하얀 지역을 채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린란드는 썰매를 끌며 짖어대는 개들을 따라가는 긴 여행과, 전설적인 곰 사냥과 바다코끼리 사냥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순진무구한 에스키모들과의 만남,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탐험대원들 사이의 우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문명사회가 주는 온갖 편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린란드에서 살아가기가 힘들 수도 있다. 황량하게 펼쳐진 빙하와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수세식 화장실이나 온수가 펑펑 나오는 샤워실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수도승처럼 지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몇 년씩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핏속에 사막을 지닌 사람이라면 다르다. 황무지는 결코 황량하지 않다. 산 하나하나, 계곡 하나하나, 빙산 하나하나가 놀라운 선물을 감추고 있다. 고독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짓누르는 건 드문 일이고, 대개의 경우 고립은 경이로운 자유의 감정을 가져다 준다. 그린란드에서의 생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북극에 살고있는 괴짜들요른 릴의 <북극 허풍담>은 그린란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931년에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가는 실제로 16년 동안 그린란드 동쪽 해안에서 살며 에스키모 문화를 접했다. 그때의 경험을 글로 써낸 것이 바로 <북극 허풍담>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작품은 소설도, 논픽션도 아니다.
그보다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 그린란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약간의 '허풍'을 덧붙여서 그려낸 것이다. 등장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전직 군인, 귀족, 잠꾸러기,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주정뱅이 등. 이들은 그린란드 원주민이 아니라 대륙의 사냥회사에서 파견한 직원들, 전문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혼자 또는 두세 명씩 팀을 이루어서 자기들만의 기지를 지키며 사냥을 하고 그 결과로 얻은 물건들을 회사로 보낸다. 일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배 한 척을 제외하면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다른 사냥꾼들이 있는 기지와도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기지를 방문하려면 많게는 며칠이 소요된다.
기지라고는 하지만 별다른 편의시설도 없다. 전기는 당연히 없고 상하수도 시설도 없다. 식량을 포함한 많은 것을 자급자족해야하고 물물교환을 통해서 필요한 것을 충당한다. 겨울이 오면 기나긴 밤이 계속된다. 빛이 줄어들면서 모든 것의 속도가 느려져서 먹고 자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렇게 조용할 것 같은 그린란드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총 한 자루로 북극곰과 맞서는 용감한 사냥꾼이 생쥐 한 마리를 보고 공포에 질리는가 하면, 새로 만든 화장실을 타인에게 개방하기 싫어서 말 다툼을 벌인다. 상상 속의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서 남의 기지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전직 군인을 응징하려고 얼음구멍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유쾌한 시트콤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허풍 같은 북극 이야기작가가 그린란드에 살았던 것은 지금부터 몇 십 년 전이다. 지금은 그린란드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덴마크 영토였던 그린란드가 2009년에는 독립을 선언했다. 과거에는 그린란드가 '미지의 땅'이었다면, 지금은 '가기 힘든 여행지' 정도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 섬을 여행한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과 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변했다고 하더라도 도시의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그린란드는 매력적인 일탈의 장소일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도시의 소음과 소란, 무겁고 탁한 공기, 덥고 끈적끈적한 여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노란 태양 아래 눈 덮힌 끝없는 대지가 펼쳐진다. 인간의 자취에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산을 응시하면서, 자기 내면으로부터 절대적 침묵의 메아리를 느낄 수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린란드에 발을 디디면 순박한 사냥꾼들의 웃음소리가 가장 먼저 들릴 것만 같다. 그린란드가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 <북극 허풍담>(전 3권) 요른 릴 씀, 백선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