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교사가 있다. 선이 고운 여교사다. 그를 보고 있으면 동양화 한 폭이 떠오른다. 목소리도 생김새만큼이나 조용하고 차분하다. 한 번 보면 '참 여려 보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난해 5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기간제교사 세 명과 함께 말이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기간제교사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지난 6월 25일, 기간제교사들은 해당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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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교직사회에서 벌어진 일치고는 상당히 놀라웠다. 게다가 소송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교직사회의 비정규직, 기간제교사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라 더 놀라웠다. 그런 놀라운 일에 선이 고와 여려 보이는 이 여교사, 김민정씨가 참여했다.
지난 6월 25일의 판결에 교과부가 항소했기 때문에 아직 소송은 끝난 게 아니다. 그래도 김민정 교사는 거대한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 1라운드에서 일단 '승리'했다. 그 사실은 다른 기간제교사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그가 제기한 소송은 현재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전기협)가 준비하고 있는 '성과급 집단 소송'의 불씨를 당긴 셈이다. 전기협에는 현재까지 약 400명의 기간제교사들이 가입했으며 매일 회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김민정 교사는 대체 왜 이런 거친 싸움에 발을 내디딘 것일까. 자칫 교단에서 '찍힐'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난 7월 26일, 그녀가 소송의 원고로 나섰던 이유와 기간제교사의 현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래는 김민정 교사와의 일문일답.
"기간제교사 성과급 배제는 명백한 차별"
- 교직 경력은?"2008년 8월부터 2010년 12월 말까지 대전의 한 인문계 공립고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다. 정교사의 육아휴직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는 역할이었다."
- 기간제교사 성과급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기간제교사 성과급 지급 배제는 법적 근거가 없는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일반 회사가 연말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처럼 2001년부터 학교도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방식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교과부의 성과급 지급 방식이 교사들을 세 등급으로 나눠 차등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판사들을 경쟁시켜 평가하면 재판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며 오래도록 성과상여금을 반대하다가 결국 직급, 즉 근무 연수에 따른 직무성과금으로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판과 교육은 비슷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교직사회 역시 시장의 논리가 무조건적으로 파고들 수는 없는 곳이다. 판사들의 등급을 매기는 일이 독립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듯이 교사들을 줄 세워 등급을 매기는 일은 소신 있는 교육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기간제교사에게도 성과급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성과급 지급 제도도 문제지만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기간제교사들 자체를 성과급에서 배제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간제교사들은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정교사들과 똑같이 업무를 배정받고, 정교사들과 똑같이 근무한다. 또 연말이면 정교사들과 똑같이 교원평가를 받는다. 또 국공립 기간제교사들은 계약직 공무원으로 품위유지의 의무 등 교육 공무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동일노동, 동일평가, 동일의무를 요구받는 기간제교사들이 동일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차별이다. 기간제교사들도 계약직이긴 해도 교육 공무원인 이상 공무원 수당에 관한 규정에서 정한 상여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교과부가 성과급 지급서 배제한 이유가 단지 계약직이라는 '신분'에 근거한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 성과급 지급 소송을 제기한 과정을 설명해달라."교단에서 처음 성과급에 대해 알게 됐을 때, 곧장 교육청에 전화해 '왜 기간제교사에게는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지' 문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교육청 담당자들은 이 부서, 저 부서로 전화를 돌리며 회피할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답답했지만 호소할 곳도 없었다. 더 이상 어찌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1년 초, 근무 중이던 학교를 그만둘 때쯤 '전국기간제교사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기간제교사 성과급 소송 원고를 모집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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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 성과급 미지급을 포함해 교직사회의 숨어 있는 차별 문제들을 세상에 알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어떻게든, 행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후배들, 내 제자들에게 내가 겪은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돈 한 푼 못 받고 일한 겨울방학, 억울했다
- 성과급 미지급 문제뿐 아니라 다른 차별 문제들도 많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좀 더 설명해달라."성과급 미지급 문제는 다른 차별과 부당함에 비하면 약과다. 기간제교사 근무 기간 동안 부당한 일들을 너무도 많이 겪고 또 목격했다.
2009년, 여름방학 때에는 교장선생님이 기간제교사들만 매일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정교사들도 함께 출근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나는 기간제교사들만 출근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교장선생님께, 다음에는 시교육청에 항의했다.
하지만 내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기간제교사의 근무에 대한 권한은 교장선생님에게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기간제교사 둘은 매일같이 학교에 나와 도서관을 지키며 일했다. 억울했다. 비정규직은 아무리 부당해도 다음 계약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억울함은 더 커졌다.
그보다 더 상처가 된 것은 '쪼개기 계약'이었다. 2009년 당시 내 업무는 '방과후학교 기획'이었는데, 학교는 다음 해에도 나와 재계약을 해 이 업무를 또 맡긴다고 했다. 그런데 재계약 기간이 2010년 3월부터 12월 말까지였다. 이렇게 되면 1, 2월 월급과 명절보너스,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없고 호봉에도 문제가 생긴다. 또한 당시 맡은 부서가 방학 중 업무가 많은 곳이었기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학교는 계속해서 '2010년 12월까지만 계약하고 다시 2011년 3월부터 계약을 하자'고 했다.
더 기막힌 것은 (계약기간이 12월 말까지인데도) 학교는 내게 그다음 해 1, 2월에도 계속 업무를 이어서 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방학 때 돈 한 푼 받지 못하면서 방과후학교 기획 업무를 해야 했다."
- 기간제교사인데 방과후학교 기획을 했다는 것인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방과후학교 업무와 기획에 대해 설명해달라. "방과후학교 업무란 학교에서 하는 정규 수업 외의 모든 보충수업, 동아리활동 관련 업무를 말한다. 방과후학교 시간표를 짜고, 수강신청을 받고, 수업료와 강의료를 계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방과후학교 수업료 지원, 방학 중 대학생 멘토링제 운영, 학습 동아리 지원 업무 등을 담당하게 된다.
마치 작은 학교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 또한, 돈과 관련된 민감한 업무라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업무로 손꼽히는 분야다. 나는 기간제교사인데도 이 업무를 혼자 처리해야만 했다. 업무가 너무 많아 수업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늦은 밤까지 야근하는 날도 많았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교단에서 아이들과 생활한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 '쪼개기 계약'이란 이야기를 했는데... 그럼 1, 2월 겨울방학 때는 계약기간이 아님에도 나와 일을 했다는 말인가."앞서 이야기했듯, 2010년 재계약 당시 겨울방학을 제외하고 계약했다. 방학 중 월급을 주지 않기 위한 계약으로 기간제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쪼개기 계약'이라 부른다. 그런데 학교는 내 계약기간이 아닌 1, 2월 겨울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 방과후학교 업무를 처리하라고 했다.
겨울방학 때는 방과후학교 관련 업무가 학기 중보다 더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 해의 수업을 정리하고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고, 보충수업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겨울방학 동안 나에게 방과후학교 업무와 멘토링, 동아리 지도 등의 일을 하도록 했다. 1, 2월 월급도 주지 않으면서...
설상가상으로 그해 12월 말 빙판에서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졌다. 겨울방학 내내 왼손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방과후학교 업무를 처리했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지만,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았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지만, 그래도 1년 동안 내가 맡은 업무이니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리고 다음 해 재계약을 하지 않고 나는 그 학교를 나와 대안학교로 갔다."
"교직 사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것도 교사의 도리"
- 듣고 보니 마음이 참 아프고 오죽하면 소송을 했을까 싶다. 하지만 학교 바닥에서 소위 '찍힐 수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나진 않았나?"이미 많이 찍혀서(웃음) 소송 거는 게 두렵지는 않았다. 기간제교사로 근무할 당시 시간강사 선생님이 그 학교에서 3년이나 근무했는데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항의한 적이 있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왜 다른 사람 일에 당신이 나서냐'고 따졌지만, 난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강사든 기간제교사든 정교사든 모두가 교사고, 당연히 내가 대신 알아보고 항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항의하곤 했다.
덕분에 사실상 '찍힌 몸'이 됐기 때문에 겁이 별로 나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그런 경험들 때문인지 공교육에 회의가 들어 대안학교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오히려 이미 '찍혀' 다음 계약을 생각하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먼저 시작해야 다른 사람들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소송에 참여하고 성과급을 받게 되면 또 다른 편법 계약이 생길까 두려웠다. '쪼개기 계약' '10개월 계약'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3월 2일 계약' 등 현재도 수많은 편법 계약이 있다. 교육청이 시정명령이나 권고를 내리는 지역도 있다지만 그런 편법 계약들을 체결하는 일선 학교들을 막을 수 있는 강제력이 없어 최근에도 피해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성과급 소송이 있고 나면 이와 관련한 또 다른 편법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한 것이다."
-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은?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도 여전히 교사를 꿈꾸나?"지난 한 해 동안 대안학교에 있었다. 그곳에서 평등한 교사 문화를 경험했고,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춰 수업하는 행복도 느꼈다. 내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상담 프로그램을 연구해 볼 계획이다. 공교육에서 받은 상처 때문인지 내게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생들, 내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눈길이 간다. 나는 여전히 교사를 꿈꾼다. 다만 앞으로 내 꿈을 실현하는 곳이 공교육 기관은 아닐 것 같다.
또 최근 뜻을 함께하는 교사들과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를 발족했다. 나는 이미 소송을 제기했지만, 다른 기간제교사들의 집단 소송을 돕고 싶고 또 다른 차별들도 하나둘씩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교직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것도 '교사의 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후배들과 제자들이 또 내가 나중에 낳을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조금 더 공정하길, 그리고 조금 더 신나길 바란다. 내가 던지는 계란으로 바위가 깨질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 그렇다면 내 뒤의 누군가가 다시 계란을 던지고 던져 결국 바위를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기자의 머릿속에 있던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여린 이 사람, 인터뷰하다 울어버리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한없이 가냘파 보였지만, 누구보다 굳세고 평평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흔적이라도 남기길 바란다"며 행동하는 김민정 교사. 얼마 전 그녀와 SNS 친구가 됐을 때 본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새삼 떠올랐다. 프로필 사진에는 무한도전을 패러디한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무한민정'이라는 글귀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무모해 보일 만큼 무한한 도전을 하는 김민정 교사. 지금, 그녀가 던진 계란 하나가 불평등한 교직사회를 깨트릴 작은 균열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