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째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한창인 6일 오전 11시, 손님들로 꽉 찬 종각역 A패스트푸드점 테이블은 절반 넘는 수가 노인들이었다. 500m 가량 떨어진 B패스트푸드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인 대부분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일부 노인들은 아무 것도 시키지 않은 채 구석 자리에 홀로 앉아 있기도 했다. 밖은 아직 한낮이 오기 전인데도 34도를 웃돌고 있었다.
"할 일이 없어. 직장도 없지, 집에 있으면 답답하지. 친구들 만나서 노는 것밖에 할 게 더 있어? 나이 먹어서 갈 데가 없어. 눈칫밥 먹으면서도 여기 있는 거지. 이렇게 커피라도 한 잔 시켜놓고… 밖은 너무 덥잖아." 정규범(76)씨는 서울 금천구 집에서 종로구까지 매일 출퇴근을 한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주로 탑골공원이나 종묘공원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패스트푸드점으로 장소를 옮겼다. 정씨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네 번 종각역 A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고 했다.
정씨는 "동네에 노인 복지관이 있긴 하지만 시설이 너무 별로라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어컨을 잘 틀어주지 않아서 덥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씨는 2000원 짜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시간을 보낸다. 햄버거는 너무 비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패스트푸드점도 여유있는 사람이나 갈 수 있어"종로 거리 수많은 업체 중 유독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찾는 까닭은 "가장 싸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식들이 용돈을 보태주긴 하지만 9만 원 정도 되는 노령연금으로 생활하기가 빠듯하다"고 말했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C커피전문점에는 상대적으로 노인 손님의 수가 적었다.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패스트푸드점의 두 배에 가까운 3900원이다.
매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씨에게 직원들이 눈치를 주는 일도 더러 있다. 손님이 많을 때에는 "나가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패스트푸드점의 한 직원은 "오전 시간과 런치타임에 노인 손님이 가장 많다"며 "커피나 햄버거 하나를 시켜 놓고 오랫동안 앉아 있어 나가라고 한 적도 몇 번 있다"고 말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자리가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손님들이 많아요.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노인분들에게 나가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도 영업은 해야 하니까요." 그나마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시켜먹는 분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탑골공원 그늘에서 열기를 견디고 있는 김상순(가명·67·서울 마포구)씨는 "다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다르다"면서 "패스트푸드점도 어느 정도 여유있는 사람이나 갈 수 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서 뭘 시킬 수도 없는데 눈치 보이게 앉아 있을 수도 없고…"라고 말했다. 그는 "한낮이면 너무 덥지만 여기밖에 갈 곳이 없다"며 "꼭 복지시설이 아니더라도 노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희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