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보면 가끔은 술을 한 잔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긴 요즘처럼 날 덥고 왕짜증이 나는 날이면 저녁에 술이라도 한 잔해야 잠을 편케 잘 수가 있다. 그럴 때면 가끔 찾아가는 곳이 있다. 오늘은 자랑 좀 해야겠다. 내가 가는 술집은 뻔하다. 고급 룸살롱이라는 곳은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질 않았고, 비싼 유흥주점도 나는 별로란 생각이 든다.
하긴 주제도 안 되지만 그런 곳에 가서 목에 힘주고 목소리를 까는 것이 나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찾는 곳은 거의 정해져 있다.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를 마시거나, 두부김치 한 접시에 만 원이면 소주 2병을 해치울 수 있는 곳. 그렇지 않으면 그저 시원하게 소주 몇 병을 비우고 나올 수 있는 포장마차 정도다.
수원의 새 명소 인계동 포장마차 골목
수원시 인계동에 자리한 인계종합상가 인근은 요즘 새로운 명소로 자리를 잡아간다. 한 집씩 늘어나기 시작한 실내포장마차가 어느새 골목골목마다 자리를 하고 있다. 이 포장마차들은 각기 나름대로 내세우고 있는 음식들이 달라, 입맛에 맞는 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술 한 잔 마시는데, 무엇을 그리 까다롭게 구느냐고도 하겠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것저것 먹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작은 행복이다. 이곳을 가면 찾아가는 집이 있다. 새롭게 문을 연 집이라고 하는데, 주인 부부가 참 성실하고, 손님에게 친절하다. 나는 이 집에 갈 때마다 '짜증나게 친절하다'고 표현을 한다.
추기수(남·38)씨와 정진경(여·39)씨가 운영하고 있는 '술집 포차'는 수원시 인계동에 소재한다. 이 집을 찾아가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안주인이 요리해서 내어 놓는 '할매돼지볶음' 때문이다. 별 것 아닌 듯한데, 묘하게 입맛을 다시게 한다. 한 접시에 15000원인 이 할매돼지볶음 한 접시면, 소주 서 너 병 마시는 것은 거뜬하다.
3대째 물려받은 요리 비법 '할매돼지볶음''할매돼지볶음'이란 명칭은 할머니에게서 전수받은 요리라서 불리게 됐단다. 안주인 정진경씨는 부산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먹었던 음식이란다. 양념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할머니가 돼지볶음 요리를 해주면 담백한 맛이 있어 좋았단다. 그래서, 그 요리를 자신들의 주력 상품으로 삼았는데 손님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한 접시에 담긴 이 요리를 보면 특별하지도 않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은 통마늘을 썰어 넣고, 양파와 당근, 고추 등이 보인다. 맛을 보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듯한데, 묘한 감칠맛이 사람을 사로잡는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비법을 물어보았다.
"참 맛있어요. 들어간 재료들은 다 알겠는데, 특별한 양념을 사용하시나요?""그건 비밀인데요. 아마 그걸 말씀드리면 모두 다 따라 하잖아요. 그럼, 단골이 많지 않은 우리는 장사 못해요. 호호호"
하긴 그렇다. 어느 집이나 자신들이 자랑하는 음식은 비법이 비밀이다. 괜히 묻고도 머쓱해진다. 조용하던 홀 안에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왔다. 순식간에 몇 테이블이 채워졌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할매돼지볶음'을 찾는다. 그만큼 이 음식에 대한 마니아가 생겨난 모양이다. 술을 먹고 있는 옆 자리 손님들에게 물어보았다.
"할매돼지볶음, 맛이 어때요?""담백하니 돼지냄새도 나지 않고 정말 좋습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저로서는 최고입니다.""옆에 계신 선생님은요?""이 집은 주인이 요리를 시킬 때 미리 물어봅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느냐고요.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하면, 맵게도 해 주더라고요. 이런 안주라면 언제나 술 마실 수 있죠."
이구동성으로 "담백하다"고 말한다. 하긴 몇 번을 먹었지만, 먹을 때마다 돼지고기 특유의 향이 나지 않는다. 맛집 탐방을 하라고 했더니, 술집 탐방이냐고 눈을 흘겨도 할 수 없다. 어차피 음식점이나 술집이나 요리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기리포트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