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삼남길'의 해남구간이다. 농게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선다. 그러고선 자신의 몸뚱아리만큼 큰 집게발을 치켜세운다. 반갑다며 악수라도 하자는 걸까. 나의 손이 움직이자 재빠르게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길섶 갈대숲에선 실잠자리 한 쌍이 날갯짓을 하며 하늘거린다. 갈대숲 너머 갯벌에선 어린이들이 뛰놀며 신명나는 한마당이 펼쳐졌다. "짱뚱어다, 짱뚱어가 물 위를 달리네" 하는 한 어린이의 목소리가 드높다. 그 모습에 다른 아이들도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참이 지난 것 같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가자 눈앞에 있던 작은 섬이 마을과 하나가 된다. 바닷물이 지나간 갯고랑이 마을과 섬의 경계를 짓고 있을 뿐이다. 드넓은 갯벌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진다.
어촌체험이 한창인 전남 해남군 북평면 오산마을 앞 갯벌 풍경이다. 마을의 생김새가 까마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오산마을이다. 마을이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바다 건너 보이는 마을이 '빙그레 웃는 섬' 완도다.
마을 앞 바다두고, 농사를 주업으로 삼은 '오산마을'
으레 어촌이라고 하면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곳으로 생각하기 마련. 주업은 고기잡이요, 바다에 나가지 못할 땐 손바닥만 한 산비탈의 밭농사에 기대 숨을 고르는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산마을은 다르다. 들판이 넓다.
마을 주민 대다수가 논밭을 일군다. 바다는 뒷전이다. 농사일이 비교적 없는 겨울에 굴을 따고, 낙지를 잡는다. 때 묻지 않은 갯벌을 보유하고 있고 어족자원도 풍부하다. 갯벌에 들어가면서 주민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겉보기에 오산마을은 한적하고 평범한 농촌마을이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숨겨진 매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을 앞으로 펼쳐진 해변과 갯벌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나다. 수산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갯벌은 갯것들의 마당이다.
짱뚱어와 농게는 갯벌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닌다. 갯벌의 지킴이로 알려진 칠게와 모래사장의 마술사 엽낭게, 앞으로 걷는 방게도 갯벌에 기대 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사는 멸종위기종 대추귀고둥도 볼 수 있다.
마을 서편으로 펼쳐진 갯벌은 면적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드넓다. 갯벌체험도 여기서 진행된다. 바지락 캐기, 가무락조개 잡기, 자연산굴 따기, 말뚝망둥어 잡기, 뻘배 타기 등이 그것. 갯벌체험의 진수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개를 잡고 갯벌에서 뛰놀다 보면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올해만 해도 벌써 4000여 명이 체험을 했다. 갯벌자원을 보기 드문 경상도와 제주지역 학생들과 가족단위 체험객이 주류를 이뤘다. 대학생들도 많이 와서 체험을 했다.
"이렇게 갯벌이 넓은지 몰랐어요. 목재 탐방로를 따라 갯벌생물을 살피는 재미가 좋습니다. 아이들도 갯벌에서 뛰어다니며 재밌어 하구요. 옷을 충분히 챙겨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걱정이네요."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보내러 왔다는 이성혜(42, 대구)씨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넓은 운동장 된 갯벌... 주변 여행지도 다양
오산마을의 자랑은 갯벌뿐 아니다. 앞바다에서 얻은 해산물과 주민들이 직접 가꾼 농산물을 재료로 해서 차려내는 시골밥상도 맛깔스럽다. 투박한 듯해도 마음 다사로운 정도 넘쳐난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곳도 많다. 두륜산·달마산 산행과 함께 절집까지 둘러볼 수 있는 대흥사와 미황사가 지척이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새로운 다짐을 하는 땅끝 관광지와 우항리 공룡박물관, 청해진 장보고 유적지도 30여 분이면 거뜬히 닿는다.
단체로 찾을 경우 갯벌체험관에서 묵을 수도 있다. 숙박시설 외에도 교육실과 족구장,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갯벌 체험용 해변 데크도 설치돼 있다.
오승환(47) 오산어촌체험마을 사무장은 "아이들이 갯벌에서 뛰놀며 자연생태를 배우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즐기고, 마을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