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 김석진, 홍원식, 김대지, 지복영, 김법린, 여준, 이만도.
혹시 전철이나 공공도서관 등에서 이 이름을 본 적이 있는가?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2012년 1월부터 8월까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92년 1월부터 매달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왔다. 또한 그들의 생애를 간략히 설명한 포스터를 2만부 가량 제작해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 구립도서관, 그리고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출근길이 바빠서, 혹은 공부를 하느라 포스터를 스쳐 지나치기 일쑤다. 2012년 현재, 지난 20년 동안 선정된 '이달의 독립운동가'만 252명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들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달의 독립운동가 10명 중 1명꼴로 안다
지난 14일, 서울역 등지에서 거리를 지나는 일반 시민 100명에게 직접 물었다. 우리는 아주 단순한 방식을 택했다. 시민들에게 총 252명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명단을 보여주며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질문한 것이다.
최소 7명을 아는 응답자부터 무려 99명을 아는 응답자도 있었다. 100명의 응답자가 평균적으로 알고 있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22.4명이다. 이는 252명 중 10명 당 1명도 안 되는 꼴이다.
연령별 편차는 1~2명으로 거의 없었다. 10대가 21명, 2~30대가 22.49명, 4~50대가 22.47명 그리고 60대 이상이 20.6명이었다. 이 설문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낮은 인지도는 연령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대부분 '이달의 독립운동가'의 숫자에 놀라거나, 아는 이름이 몇 없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13명을 안다고 대답한 김선영(24, 가명)씨는 "너무 모르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얼굴을 붉히며 "교과서에 나왔단 사람들밖에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인석(57, 가명)씨는 51명이나 안다고 대답했지만 "독립운동가를 매달 뽑는 줄 몰랐다"며 놀랐다.
응답자들의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며, 조사를 진행한 두 명의 인턴 기자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52명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기자들이 아는 독립운동가의 수는 평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 25명이었다.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일상에 치여 역사를 돌아보지 못한 탓이 크다고 느꼈다.
"이달엔 우리 조상을..." 선정 과정에서 경쟁도 치열
그렇다면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될까?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에 따르면 각 달마다 4:1 정도의 '경쟁'이 있다고 하니 만만치는 않은 과정이다. 김 관장의 말로는 "매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신청이 수없이 많다"는데, 그 중 선정되는 애국지사는 1년에 12명뿐이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은 크게 2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국가보훈관사, 광복회 등에서 일차적으로 적합한 인물들을 추천한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은 각 분야의 전공자들, 홍보전문가, 광복회 회장 등으로 구성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에서 내린다. 김 관장은 "후손들은 아무래도 자기 조상이 최고라며 지원하지만, 위원회는 객관성을 가장 우선시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공적이 큰 인물부터 선정되는데, 그 기준은 국가 서훈의 '훈격'이다. 훈격은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 순서로 높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대부분 독립장 이상의 서훈을 받은 인물 중에서 선정된다.
또 다른 중요한 선정 기준은 그 해와 그 달에 어울리는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90주기인 1999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공적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분 많다" 광복절에라도 돌아봤으면
비록 유명세는 없을지라도 지금까지 선정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252명의 삶은 모두 각자의 무게와 감동을 갖고 있다.
담당자인 채순희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사무관은 "공적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채 사무관은 그들 개개인의 소명의식과 실천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며 "이런 감동을 모든 국민과 나누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2009년부터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의 만화를 그리는 이수겸 작가 역시 비슷한 마음이다. 이름은 거의 생소한 독립운동가들이지만, 자료를 읽어보면 "(일제 강점기와 같은 일이)만약 다시 일어난다면 과연 나도 그분들처럼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존경심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 누구도 수없이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모두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광복절에라도 스쳐 지나갔던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어떨까. 역대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국가보훈처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2012년 8월의 독립운동가 이만도(李晩燾) (1842. 1. 28 ~ 19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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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경북 봉화군에서 태어나 1866년 과거에 장원 급제했다. 이후 사간원 등의 벼슬을 하다 한미수호조약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쳤다.
1895년 명성왕후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예안선성의진'이라는 의병을 결성하여 이끌었다. 을사늑약 이후 을사5적의 목을 벨 것과 조약을 파기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고, 영양 일월산으로 들어가 은거한다. 그러던 중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죽음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단식 순국'을 결심한다.
1910년 9월 17일 단식을 시작하여 21일째 되던 날, 경찰이 와서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 하자 크게 꾸짖어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이만도는 단식 24일 째 되던 날 순국하였다. 아들, 며느리, 손자 등도 뒤를 이어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정부는 그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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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한슬·이규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