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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이 올바를 때, 역사의 흐름은 퇴보하지 않는다.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들이 출렁이는 2012년, 온 지구를 가로질러 30여 개국에 선거가 있다. 변화의 시기, 한 생각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오마이뉴스>는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통찰력을 빌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지혜를 깨우려 한다.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깨어나자 2012' 인터뷰 시리즈는 그 노력의 하나다. <편집자말>

 피터 싱어 교수
피터 싱어 교수 ⓒ 안희경

<석학을 만나다> 3편에서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사회에 진 부자의 빚을 언급했다. 공공시설을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이윤이다. 부자에겐 그 이익을 되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피터 싱어 교수는 부자 나라가 빼앗아 가는 가난한 나라의 몫에 대해 말한다.

온실가스의 3분의 2를 배출하는 선진국. 그러나 지구 온난화 때문에 애가 타고 실제 피해를 입는 나라는 적도 인근 개발도상국이다. 농사에 매달려 끼니를 잇는 아프리카 말라위 국민은 지구 온난화로 비가 줄어 애가 탄다. 대대로 어부 집안인 세네갈의 청년은 유럽으로 목숨을 건 불법 이민을 감행한다. 유럽과 중국의 어선이 바닥까지 긁어가 물고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물고기는 선진국 가정의 식탁에 놓여있다.

실천적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최근 들어 더욱 절대빈곤 퇴치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에 개인이 나서자고 한다. 세상을 구하는 시작은 개인의 사려 깊은 소비와 습관을 바꾸는 데 있다고 말한다.

 5L 물통에 식수를 담아 맨발로 2시간 산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동티모르 아수마노 마을 아이.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토벌군이 진입하기 어려워 독립군의 은신처였던 산간 오지로 주민 70% 이상이 한 두 시간 떨어진 산간 식수원에서 물을 길어온다. 주로 아이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통티모르는 2011년 국민의 37.4%가 국제빈곤선인 1일 $1.25 이하의 삶을 연명한다.
5L 물통에 식수를 담아 맨발로 2시간 산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동티모르 아수마노 마을 아이.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토벌군이 진입하기 어려워 독립군의 은신처였던 산간 오지로 주민 70% 이상이 한 두 시간 떨어진 산간 식수원에서 물을 길어온다. 주로 아이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통티모르는 2011년 국민의 37.4%가 국제빈곤선인 1일 $1.25 이하의 삶을 연명한다. ⓒ 더프라미스 제공

- 빈곤 지역에 대해 열정적이십니다. 한국도 해외 구호에 대한 지원이 늘어가는 추세인데요. 한편에서는 국내에 먼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네, 한국에도 아직 빈곤이 있죠. 그래도 저는 다른 나라들이 겪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 중에 하루 1달러나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보다는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경우라고 봅니다. 극단적인 상황과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것보다 기아로 고통받는 지역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한국의 가난에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 한국이 절대 빈곤선의 위험에 빠진 이들을 돕는데 우선 나서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죠. 같은 액수의 돈도 빈곤 국가에서는 더 오랜 시간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500달러를 한국에 있는 한 가족에게 줄 경우, 아마 일주일 생활비나 한 달 생활비 정도일 거에요. 이 돈을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 주면 어떨까요?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 500달러는 한 가계의 1년 수입보다 큽니다. 1년에 500달러만 필요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돈이죠. 꼭 돈이 아니어도 그 동네에 깨끗한 물이나 위생시설을 도와 줄 수 있고, 의료 지원이나 학교 짓는데 거들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주 적은 돈으로 가능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 돈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고요."

절대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다

- 우리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속내에는 어떤 방관자 심리 혹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에 앞서 효과를 따져보는 경영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험을 한 예가 있어요. 르완다 난민촌에 1500명의 난민을 살리는데 성금을 모으자고 말하면서 전체 인원수를 계속 바꿨습니다. 결과는 1만명 중에 1500명이라고 했을 때보다, 3000명 중에 1500명이라고 할 때 가장 많은 기금이 만들어졌죠. 저는 우리가 살릴 수 있는 그 생명만 바라봤으면 합니다. 생수 한 병을 줄이면 한 아이가 하루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우리가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면, 세상은 더욱 폭력적이 될 겁니다. 절대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닙니다. 힘의 결핍, 힘 없는 자의 설움이 함께 하죠. 뺏고 빼앗기고, 경찰도 손 쓰기 어렵고, 부패가 함께 합니다. 성폭행이 만연하고요.

사람들이 가난할 때, 아이를 많이 낳아요. 그리고 교육하지 않죠. 왜냐면 아이가 교육되기 전에 죽을 거라 짐작하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아이를 많이 원합니다. 적어도 하나 둘은 살려서 늙었을 때 보호받겠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이러면 또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에는 문제로 대두할 겁니다."

- 선생께서는 개인의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시는데, 쓰나미가 휩쓴 아이티를 보면 자연재해가 오기 훨씬 전부터 다국적 자본에 의해 경제 구조가 자급력을 잃었습니다. 산업화 속에서 농사를 포기하고 결국은 경제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식량난까지 겪는 빈한한 처지로 떨어졌습니다. 아이티 수도 가난한 지역에선 강간 등 범죄가 일상이 되었고요. 이런 구조적 모순에 빠진 곳에 문제점을 들추기보다 돈을 보내는 일은 오히려 부자에게 위로를 주고 경제 시스템이 갖는 이익을 보장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티는 매우 가난하고 오랜 시간 그래 왔어요.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진단 내려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나쁜 정부가 (그런 문제점을) 되물려왔고요. 개발도상국의 부패한 정부와 엮이는 다국적 기업들은 제겐 장물아비로 보입니다. 다른 점은 국제법과 정치적 역학 관계가 이들을 소유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좌파들이 제게 부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난도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하지만 각자 바라는 혁명적 방식이 성공하기 어렵다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현실적 방법을 더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그래도 긍정적이에요. 세계은행이 절대빈곤 기준으로 내놓은 액수가 하루 1달러25센트입니다. 이 이하의 수입을 버는 사람의 수가 14억명이구요. 1981년에는 19억명이었어요. 열 명 중 네 명이 절대빈곤선 아래 있었는데, 지금은 네 명 중 한 명으로 줄었습니다."

기부 문화, 부자에게 주는 위로인가?

 5L 물통에 식수를 담아 맨발로 2시간 산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동티모르 아수마노 마을 아이.
5L 물통에 식수를 담아 맨발로 2시간 산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동티모르 아수마노 마을 아이. ⓒ 더프라미스 제공

- 조금씩 자기 몫을 내놓는다면 또 다른 사람을 더 살릴 수 있겠네요.
"우리에게는 끔찍한 비극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전쟁을 치렀고, 나치 치하 유럽에서 인종 청소를 했었요. 그렇지만, 장기 추세 속에서 전쟁과 폭력의 시기는 가라앉는 경향입니다. 1945년 이후, 강대국이 집접 충돌한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매년 피할 수 없는 가난 속에 죽어가는 아이들의 수는 1960년대에 2000만 명이 넘었는데 오늘날은 약 800만 명으로 떨어졌고, 인구는 1960년대에 비해 두 배가 넘습니다. 비율로 보면 과거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거죠. 가난 속에서 신생아들이 피할 수 없었던 말라리아·홍역·설사로 죽는 일도, 지금까지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는 지구적 빈곤을 막으려는 우리들의 노력이 계속 성과를 만들어 나갈 거라는 예시라고 봅니다."

- 선생은 국제 바이오 윤리 협회를 만들었고, 이끌고 있습니다. 10년 전 미국의 대선에서는 매우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온 미국인들이 토론하였습니다.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내용이 대선 주요 이슈가 되었죠. 한국의 경우는 복제양 성공과 관련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바이오 연구를 미래 주요 산업이라고 내세웠지만, 생명 윤리적 논쟁은 국민적 안건으로까지 퍼지진 못했습니다. 올해는 세계적으로 선거 시기입니다. 새로운 비전을 전망하고 진단하는 이때라도 바이오 윤리에 대한 논의가 한 축으로 진행됐으면 합니다.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든 나라가 반드시 토론하고 짚어봐야 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토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논쟁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접근합니다. 그러니까 초기 배아의 지위를 염두에 두고, 줄기세포를 취하는 실험을 초기 배아를 파괴한다는 데 집중해서 바라봅니다. 저는 이 부분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고 여깁니다.

저는 초기 배아를 지각있는 존재인 유정물로 보지 않습니다. 초기 배아에는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배아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미국의 논쟁은 기독교 관점에서 조정되어 왔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그 관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논쟁 폭이 덜 대중적이었다고 해도 미국 사람들보다 현명하게 접근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오 산업에서 나오는 성과를 의료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토론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혜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공공 보건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바이오 연구 윤리, 공개하고 토론하자

- 불교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입장은 "의식이 깃드는 시기를 '연기'가 일어나는 생명의 시작으로 보기에 초기 배아를 유정중생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초기 배아를 지각있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선생의 입장과 통한다고 봅니다.
"바이오 윤리 협회에서는 공식적인 의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주제와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데 목적을 두죠. 매우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고, 앞으로도 어떤 공식적인 의견을 갖지 않을 겁니다. 생명 윤리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늘려나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일부 나라에서는 바이오 윤리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자의 생명 윤리에 관한 견해를 검열하고 삭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줄기세포 연구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그런 입장을 밝히지 않아요. 보다 다양하게 접근하는 대중과 함께하는 토론을 해야 합니다."

- 고통을 느끼는 여부를 중시하는 선생의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에 대해 차별 없이 접근하는 태도를 다시 확인합니다. 윤리, 도덕성 이런 덕목은 주로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부분입니다. 누가 윤리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모두입니다. 저는 우리가 단 한 명의 위대한 윤리적 지도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윤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알아차리며 사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자고요. 이해가 싹틉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에서 하루 1달러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 치는 일이 어떤 건지 궁금증을 가져봅시다. 너무 가난해서 아이가 죽는 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요? 조금만 형편이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죽진 않을 겁니다. 공장식 축사에 갇혀있는 동물이라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런 질문을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따로 윤리적인 지도자가 있을 필요가 없죠. 모두 다 그렇게 물어볼 능력이 있으니까요."

-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가난한 나라에게 주는 도움의 양을 엄청나게 늘릴 겁니다. 지구의 빈곤을 줄일 거에요. 나는 공장식 축사를 없앨 겁니다. 그래서 동물이 비록 도살돼 고깃덩이가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짐승다운 생을 살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나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겁니다. 미국을 포함해서 의료 서비스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 삶을 이어가고 싶은 절박한 이들에게 사용되어지는 것을 볼 겁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는 피터 싱어 교수는 마치 소년 같았다. 또박또박 지긋이 이야기 하는 그의 '나는'이란 표현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내 꿈은(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그 연설처럼 절박하게 다가왔다.

 피터 싱어 교수와 안희경 시민기자
피터 싱어 교수와 안희경 시민기자 ⓒ 안희경

인터뷰이(interviewee)
피터 싱어(1946년~)는 유태계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로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생명윤리학과 교수이다. 그는 공리주의와 무신론적 관점으로 세상에 다가서는 실천윤리학자다. 1975년, 동물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대상이 아닌 자연을 이루는 공생의 파트너로 껴안는, 동물권을 제기한 책 <동물 해방>을 펴냈다.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실천 활동까지 동물의 복지를 통한 인류의 웰빙을 이뤄나가는데 큰 몫을 해냈다.

그가 접근하는 이슈들은 빈곤과 기아, 생명 공학의 윤리적 접근, 인간의 죽음과 삶에 대한 선택, 낙태,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좌파의 헛점 등 다양하다. 끊임없이 학문적 발표와 사회적 이슈를 제기해왔다. 피터싱어는 윤리학계의 거장이며, 환경, 빈곤, 평화 운동가들로부터 존경받는 시대의 상징이다. 그의 삶은 말과 행동은 한결같다. 40년 전 옥스포드 학생일 때, 공장식 축사에서 고통받는 가축을 본 후 삶의 습관을 바꿔 채식주의자가 됐고, 공장식 닭장과 젖 짜는 기계가 된 젖소를 보며 유제품을 비롯한 동물성 식품 섭취를 줄여왔다. 또한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 수입의 30%을 기부한다. 최근에는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이라는 국제 구호 웹사이트인 thelifeyoucansave.com 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어(interviewer)
안희경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할 당시,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 이주후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명상 트랜드를 다양하게 소개해왔다. 또한, 세계의 석학 및 현대미술 거장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뒷받침하는 근원적 삶의 자세를 드러내 진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을 번역했다.


#피터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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