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앞. 인근 전통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접고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8월 말로 예정된 홈플러스 합정점(이하 합정점) 개점을 온 몸으로 막겠다며 지난 10일부터 이곳에서 상주하기 시작했다.
돈벌이를 중단하고 거리로 나설 정도로 합정점 개점은 상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합정점이 들어서면 마포구 안에만 홈플러스(대형마트․SSM 포함)가 5개나 생기게 된다.
망원시장 인근에 홈플러스 3개... "마포구가 홈플러스구인가"특히 망원·월드컵시장 반경 2.3킬로미터(km) 안에는 상암동 홈플러스, 망원동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합해 홈플러스가 모두 3개다. 새로 들어올 합정점과 망원시장의 거리는 불과 670미터, 버스 1~2정거장 차이다. 홈플러스에 '포위'되는 셈이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마포구가 홈플러스구인가"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기도 한다.
상인들은 합정점 마저 들어서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초토화될 것이라고 반발한다. 실제로 합정점 입점 이후 인근 중소상점의 매출이 하락하고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이란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서울시의 의뢰로 진행된 한누리창업연구소의 상권영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합정점 입점 이후 반경 500미터 이내 슈퍼·편의점 등 140개 점포와 가공식품·농축수산 식품 판매점 69개 점포의 평균 영업이익 감소율이 66.8%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우려한 마포구와 서울시의회는 그동안 지역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왔다. 마포구는 올 1월 '유통기업 상생발전회'를 열어 합정점 입점 철회 권고를 의결했다. 서울시의회는 7월 합정점 입점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놨다. 그러나 홈플러스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2010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는 전통시장으로부터 1킬로미터(km)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마포구의회도 2011년 4월 관련 조례제정을 공포했다.
그러나 홈플러스 측은 2011년 1월에 영업 허가를 받았다. 조례 제정 3개월 전에 허가를 받았으므로 시장으로부터 1킬로미터(km) 이내에 위치할 합정점 입점은 합법이라는 뜻이다. 상인들은 "(홈플러스가) 마포구의회에서 조례가 통과되기 직전에 재빨리 등록을 신청하는 꼼수를 부렸다"고 비판한다.
"덥고 비오면 손님들 대형마트 가게 마련, 법적으로 영업규제 해야"
중소기업청도 중소상인 보호 문제에 직접 나섰다. 지난 4월 홈플러스 측에 사업개시일시정지를 권고하고, 3차례 자율조정회의를 주재했다. 그러나 양측의 의견조율 없이 끝났다. 홈플러스 측이 전혀 미동을 보이지 않자, 상인 측에서는 지난 7월 마지막 자율조정회의 이후 중소기업청에 타협안을 통보했다.
상인들이 내놓은 타협안은 두 가지다. 합정점의 면적 50%를 IT 업체 등으로 업종을 전환하거나, 매장 면적 100% 전체를 사용하되 식료품·생선·정육 등의 1차 식품을 판매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홈플러스 측에서는 수용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정점 입점저지 마포주민 대책위원회 소속 서정래 실무팀장은 "입점철회에서 한 걸음 물러나 타협안을 제시했는데도 홈플러스 측은 이를 묵살하고 있다"며 "중소상인들에게 전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망원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 중인 채아무개(44)씨는 "합정점 입점을 앞두고 시장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상인들 걱정들이 대단하다"며 "가게에 목숨을 걸고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데 장사 이익이 줄어들어 생활이 버거워질까봐 걱정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구·시·국회의원이 다 나서도 홈플러스는 계속 '무반응'일 뿐"이라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사측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채씨는 "상인들이 시장 문화 개선을 위해 아케이드 설치 등의 노력을 해도 법적 규제 없이는 소용없다"며 "덥고 비오면 손님들은 장보기 편한 대형마트로 가게 마련이다, 법적으로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해줘야만 손님들의 발길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합정점, 정상적인 절차 밟았다"
홈플러스 측은 지금 당장은 문을 열지 않겠다며 한 발짝 물러난 상태지만, 합법적으로 사업을 승인받은 만큼 입점을 무산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17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7년부터 합정점 입점을 위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며 "입정 예정일은 잠정적으로 연기된 상황이다, 내부적으로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 상인들은 오는 19일 메세나폴리스 앞에서 대규모집회를 열고 삭발투쟁 등을 진행, 합정점 입점 철회를 다시 한 번 촉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