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NYPD(뉴욕 경찰국)가 창설된 것은 1845년이다. 지금은 NYPD가 번쩍이는 경찰차를 몰고 다니고 각종 최신무기로 무장했지만, 처음 창설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에는 경찰 제복도 없었고, 경찰 신분증도 없었다. 경찰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지급된 구리 배지 하나가 전부였다. 경찰에 지원한 사람들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나 지역 토박이가 아니라 이민자들이 많았다.
이렇게 허술해 보이는 경찰 조직이 탄생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 뉴욕은 파리나 런던, 보스턴 같은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서 상당히 늦게 경찰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뉴욕 시민이 규제받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자유와 독립의 혁명정신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인구와 그에 따른 각종 사건 사고 때문에 사람들의 반대에도 경찰국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이 된 바텐더린지 페이의 2012년 작품 <고담의 신>은 바로 1845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에서 뉴욕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1800년 6만 명에 불과했던 뉴욕 인구는 1850년에 50만 명으로 불어난다. 이런 인구증가에는 아일랜드에서 온 이민자들이 커다란 몫을 했다.
이민자들과 미국인들은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교도들이 많았는데 미국인들은 개신교를 믿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가톨릭교도들을 가리켜서 '무식하고 미신에 사로잡힌 타락한 주민들'이라고 말한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에게 대놓고 욕을 해대는 사람들도 많다. 당연히 사회의 분위기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주인공 티모시 와일드는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지원하게 된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과 함께 생활해온 티모시는 그전까지 술집에서 바텐더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형의 권유를 못 이겨서 새로 창설된 경찰국에 창립 멤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티모시의 일터는 술집에서 거리로 변한다. 그는 하루 16시간을 근무하면서 거리를 순찰하고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체포한다. 폭력배와 사기꾼들을 추적하고 거리의 매춘부들을 단속한다. 화재감시도 경찰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경찰 생활이 시작되고 3개월 후, 티모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한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나이는 열 살에 몸무게는 30kg이 채 되지 않는 여자아이다. 티모시가 가출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그 아이가 와서 티모시에게 부딪쳤다.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 아이는 티모시에게 "사람들이 걔를 갈갈이 찢을 거에요!"라고 말한다.
격변기 뉴욕의 모습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서 티모시는 뉴욕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비참함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는 뉴욕, 그 안에서 많은 주민은 생존이 하루하루 이어지는 의지의 훈련과도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다.
티모시의 눈에 비친 뉴욕도 혼란 그 자체다. 사람들은 경찰제도를 놓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서로 목청을 높였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찰청 앞에 모여서 '짭새들의 폭압 행위 타도하자!', '경찰 너희들은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이런 곳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행복할 리는 없다. 많은 아이들이 구걸과 도둑질로 삶을 이어 갔고, 강제로 성매매에 동원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적발되면 고아원으로 실려가지만, 그곳에 간다고 해서 특별히 좋아질 것도 없다.
150년 전의 뉴욕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역사 미스터리답게 작가는 <고담의 신>에 실존 인물들도 등장시키고 있다. 작품에 나오는 사건도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잔인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경찰이 필요악이건 뭐건 간에 경찰국의 탄생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담의 신> 린지 페이 지음 / 안재권 옮김. 문학수첩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