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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그리스도를 본받아〉
▲ 책겉그림 〈그리스도를 본받아〉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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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크리스천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는 세상입니다. 입바른 소리는 곧잘 하지만 그 행함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죠. 섬김의 자리를 강조하지만 스스로 그 자리로 내려오는 이들이 많지 않는 까닭이죠. 내적인 성찰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외적인 화려함을 좇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죠.

순전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건 과연 무얼 뜻하는 걸까요?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삶이겠죠. 출세와 성공을 위한 길보다 비움과 십자가의 길을 걷는 모습 말이죠. 스승으로 대접받기보다 제자들을 몸소 섬기는  모습 말이죠. 장사치들처럼 교회당을 이용하기보다 제 몸을 성전처럼 가꾸는데 이들 말이죠. 불교식에서 말하는 '이판승'(理判僧)이 그에 해당될까요?

순전한 크리스천은 환경이 어려울 때 그 가치가 돋보이기 마련이죠. 편할 때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일제 치하에 순전한 크리스천을 꼽으라면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을 꼽을 수 있겠죠. 그분들만큼 우리나라와 그 말을 사랑한 크리스천도 드물죠. 물론 그들은 일본인 우치무라 간조에게 영향을 받았죠.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이때에 일본을 언급하는 게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우치무라 선생만큼 일제의 침략전쟁에 반대한 사람도 드물며,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에 우호적인 사람도 없었죠.

순전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 길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걸까요?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겠죠. 바로 묵상의 세계를 확보하는 것 말이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게을리하면 세상 잡다한 소리에 묻혀 살기 마련이죠. 물론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들은 좋은 지침서죠. 성경 다음으로 읽어야 할 '불멸의 고전'들은 두 말하면 잔소리고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도 그런 뜻에서 크리스천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책이죠. 물론 이 책은, 13세기 전후로 유럽 전역에서 대학들이 세워지기 전, 당대의 수도사들이 모든 학문적인 주도권을 쥐기 전, 신학이나 교리나 학문과는 상관없이 오직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묵상한 것이죠. 얼핏 보면 삶의 실제에서 빗겨난 신비서적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세속화된 크리스천들에게 자발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보다 더 좋은 지침서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면, 분명히 그 분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자기를 찾으려고 하면 그대 자신을 찾게 되겠지만, 이는 그대에게 해(害)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찾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온 세상과 모든 대적보다 자신에게 더 해를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116쪽)

"나는 양심의 가책을 앗아가는 위로를 원치 않으며, 마음을 오만하게 하는 묵상을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높다고 다 거룩한 것은 아니며, 향기로운 것이라고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모든 소원이 다 순수한 것은 아니며,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거룩한 경외감을 품게, 좀 더 나 자신을 포기하게 만드는 은혜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126쪽)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는 묻지만 얼마나 덕을 베풀며 살았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용감한지, 부유한지, 멋있는지, 능숙한지, 좋은 작가인지, 좋은 가수인지, 또는 좋은 일꾼인지는 물어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마음이 가난한지, 얼마나 참을성이 있고 온유한지, 얼마나 믿음이 있고 영적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본성은 사람의 외적인 면을 살피지만, 은혜는 내면을 주시합니다."(239쪽)

모두 네 개의 얼개로 짜여 있는 이 책은 제 1장이 '영적 생활에 유익한 권면', 제 2장이 '내면 생활에 유익한 권면', 제 3장이 '내적 위로에 관하여', 제 4장이 '성찬에 관한 관면'으로 엮여 있습니다. 이 책이 좋은 것은 이전까지도 이미 여러 번역본들이 나왔고, 또 축소판들도 많이 출간됐지만, 이번만큼 유려한 번역과 묵상을 돕는 사진들이 살린 책도 못 봤다는 점이겠죠. 영적 생수를 찾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묵상집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완역본도 없을 것 같습니다.

1380년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켐펜에서 태어난 토마스. 그는 네덜란드의 데벤터르에 있는 학교의 '공동생활형제단'(The Brethren of the Common Life)에서 기도와 노동과 검소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그 학교를 졸업한 뒤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제가 되었지만, 홀로 기도하고 노동하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죠.  특별히 성경필사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데,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필사훈련은 그 자체가 영적훈련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1420년부터 1427년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바로 이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라고 하죠. 아무쪼록 이 묵상집을 통해 이 땅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전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덧붙이는 글 | 그리스도를 본받아 ㅣ 포이에마 고전 시리즈 (Poiema Christian Classics) 2 ㅣ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은이), 홍병룡 (옮긴이) | 포이에마 | 2012년 8월



그리스도를 본받아 (10주년 기념판) - 라틴어 원문을 가장 충실히 번역한 최신 완역본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유재덕 옮김, 브니엘출판사(2018)


#공동생활형제단#토마스 아 켐피스#홍병룡 옮김#김교신 선생#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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