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텃밭에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올해에는 유난히 대추가 많이 열려 한 말 정도는 충분히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뭄 속에 대추 꽃이 피어나자 나는 가을에 익어갈 붉은 대추를 상상하며 물도 열심히 주고, 퇴비와 복합비료도 뿌려줬다.
대추나무는 나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다락방 창문을 열고 점점 크게 영글어가는 시퍼런 대추열매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다.
볼라벤에 한 대 맞은 대추들
"흐음... 가을이 오면 저 시퍼런 대추가 빨갛게 익어 가겠지. 맛도 좋을 거야." 매일 아침 시퍼런 대추를 바라보며 빨간 대추를 따 먹는 달콤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태풍 볼라벤을 직통으로 맞은 대추는 맥없이 툭툭 떨어졌다.
나는 다락방에 앉아 볼라벤의 위력에 이리저리 떨어져 내리는 대추를 바라보며 대추 한 알 건져내지도 못하는 무기력함에 쓰라린 패배자의 맛을 느꺼야만 했다.
볼라벤이라는 녀석은 처음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더니,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급기야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급선회해 대추나무를 공격했다. 사방에서 볼라벤의 공격을 받은 대추는 몇 알 남지 않고 땅바닥으로 모두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대추나무에는 겨우 몇 알의 대추가 달려 있다. 강풍에 달랑거리는 대추를 바라보자 문득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그렇다! 대추 한 알이 빨갛게 익기 위해서는 수많은 천둥, 번개, 벼락이라는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대추 한 알이 저 혼자 붉었을 리는 없다. 땡볕을 받아 영글어지기는 했지만 태풍과 서리를 이겨내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김칫국부터 마셨던 내가 잘못이었다.
대추 줍던 나... 저 역시 대추였나 봅니다
나는 다락방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시퍼런 대추를 주어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동안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대추가 아닌가? 설 익은 대추를 주워담는 마음은 아팠다. 그러니 이번 태풍으로 사과, 배, 복숭아 등 과일을 그대로 날려 보낸 농부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아마 숯덩이처럼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시퍼런 대추를 한 알 한 알 주워담고 보니 한 말은 족히 될 것 같다. 그 대추를 안고 거실로 들어오니 아내가 입을 벌리며 아연실색하고 만다.
"세상에나! 이 아까운 대추... 이 일을 어쩌지요?""글쎄 말이오. 인터넷을 한 번 뒤져 봐야겠어요. 어디 쓸 때가 없는지."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설익은 시퍼런 대추인가 보다. 대추가 익기도 전에 붉은 대추를 맛볼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은 붉게 잘 익은 대추처럼 쪼글쪼글 해질 때 비로소 희로애락의 진면목을 느끼나 보다.
잘 익은 붉은 대추 겉모습만 보고는 그 대추 한 알 속에 가뭄 몇 개, 천둥 몇 개, 태풍 몇 개를 견뎌냈는지를 사람들은 모른다. 무서리를 이겨내고 초승달도 몇 날이나 들어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붉은 대추의 빛깔과 대추 맛이 이렇네 저렇네 하며 말만 무성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생대추로 효소를 만들 수 있다는 글이 여기저기 올라와 있다. 생대추를 쪼개서 씨를 빼내고, 설탕에 재여 놓으면 대추 효소가 된다는 것. 지금까지 잘 자라준 대추가 아깝지 않은가.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대추 효소라도 담아 봐야겠다. 효소로 발효된 시퍼런 대추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