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8일) 저녁 6시 반경, 화성시청을 출발했다. 태풍 '볼라벤'이 세력이 약화되면서 북쪽으로 올라갔다는 일기예보가 나온 직후, 채인석 화성시장은 예정대로 국토대장정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화성시가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채 시장은 29일 오늘 아침, 화성시 관내를 둘러보고 태풍 피해상황을 확인한 뒤 곧바로 국토대장정을 하기 위해 나주시 청소련수련관으로 떠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는 어젯밤, 화성시 공보팀과 먼저 출발했다. 태풍이 지나갔다는 일기예보가 나왔지만, 강한 바람은 여전히 중부지방에 머물러 있었다. 엄청나게 세찬 바람에 신호등들이 흔들렸고, 나무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자동차가 서해대교를 달릴 때 바람 때문에 차체가 흔들거려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서해대교를 달리던 탑차가 바람에 쓰러졌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11시가 임박한 시간에야 도착한 광주시 마륵동 마을회관에는 채 시장과 함께 국토대장정을 하는 이들이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여섯 명 남짓 마을회관에 남아 있었다. 이들은 어제, 비가 내리는데도 영산강 둑길 22km를 걸었다고 했다. 바람이 엄청나게 심하게 불었다면서 나주와 광주 지역의 태풍 피해상황을 알려주었다.
오늘 오후 2시경에 채인석 화성시장은 나주시 청소년수련관 앞에 도착했다. 화성시 관내의 과수원과 농장을 둘러보고 피해상황을 확인한 채 시장은 "하늘이 우리를 도왔는지, 태풍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채 시장, 정해진 구간 522km를 단 1km도 빼지 않고 온전히 걷겠다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가 덮쳤을 때, 화성시의 과수농가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기억을 돌이킨 채 시장은 "현대화 설비가 잘 된 농장이 태풍이나 풍수해 피해를 입지 않는다"며 "과수농가들이 현대화 설비를 갖출 수 있게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중단되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국토대장정. 예정대로라면 국토대장정 6일차가 돼야 하지만, 태풍 때문에 하루를 빼먹은 상황이라 5일차가 되었다. 채 시장은 일정을 하루 늦추지 않고 정해진 기간 내에 걷기로 한 거리를 전부 소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해진 구간 522km를 단 1km도 빼지 않고 온전하게 걸어내겠다는 것이다. 하루에 걸어야 하는 거리가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지금까지도 빡세게 걸었는데 앞으로 더 빡세게 걸어야한다는 결론이다.
평소에는 새벽 5시에 출발했지만, 오늘은 출발시간이 늦었다. 채 시장은 오후 2시 반에 준비체조를 마치고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함께 걷는 인원이 10명으로 늘어났다. 박승권 화성시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은 어제 채 시장이 없을 때 걸었던 구간을 다시 걷겠다면서 채 시장과 함께 출발했다.
채 시장과 함께 국토대장정을 완주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가 바로 박 회장이다. 박 회장은 엿새째 걷는데 피로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을 함께 하기 위해 미리 체력을 다듬는 등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걷는 채 시장 곁에서 여러 사람이 배겨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박 회장만은 조금도 꿀리지 않고 잘 걷고 있는 중이다.
"만일 자연사박물관이 화성시 송산면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화성시가 자연사박물관의 최적지라고 생각하고, 꼭 들어와야 한다고 확신한다. 만일 안 되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할 것이다. 채 시장과 꼭 국토대장정 완주를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오늘은 나주시 청소년수련관에서 출발해 영산강을 따라 나 있는 자전거 길을 따라 걷는다.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는 원래 예정대로라면 22km지만 어제 못 걸었던 길과 오늘 걸어야 하는 길까지 합하면 51km를 걸어야 한다. 아예 밤을 새워서라도 못 걸은 구간을 벌충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당연하지만, 채 시장이 아무리 잘 걷는다고 해도 '무쇠로 만든 사람'이 아니니 오늘은 26km정도만 걷고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 걸어야 할 날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체력을 적당하게 안배해야 무사히 국토대장정을 마칠 수 있지 않겠나. 무리는 금물.
오늘도 채 시장은 무척이나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새롭게 합류한 이들이 100여 미터를 걷기도 전부터 채 시장을 따라가려고 달음박질을 쳤다. 멀어져 가는 채 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오늘도 내 페이스를 유지했다. 꼬박 이틀 동안 걷지 않는 사이 발바닥의 물집은 어느 정도 아문 상태가 되었다. 물론 아직 통증은 남아있지만.
멀어져 가는 채 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오늘도 내 페이스 유지
나주시 청소년수련관에서 나주목사 전통장이 서는 곳까지 걸어가다가 그만 일행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어느 사이엔가 채 시장 일행은 내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고, 나는 장이 선 곳에 홀로 남아 버리고 말았다. 도보여행을 나섰다가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홀로 나선 길이 아니니 일행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영산강 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가 있나. 시장 안에서 두리번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윤통일 한국농업경영인화성시연합회장이다. 그의 곁에는 화성시민인 한진안씨와 홍예선씨가 같이 있었다. 이들은 저녁 찬거리를 사는 중이었다.
윤 회장은 채 시장의 국토대장정을 적극 찬성하면서 지원하고 있다. 자신 소유 냉동탑차에 개인비용을 들여 자연사박물관 유치 홍보를 위한 그림을 그려 넣었으며, 그 차에 쌀과 부식거리, 물 등을 싣고 와서 국토대장정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해주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그것도 신이 나서 한다.
오늘 아침과 점심에도 윤 회장은 식사준비를 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였고, 김치를 비롯한 반찬을 준비해서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그가 지은 밥을 나 역시도 얻어먹었는데, 그의 음식솜씨는 일품이었다. 그가 직접 재배했다는 검정 쌀을 섞은 밥은 찰지고 맛이 좋았다. 벼농사를 짓고, 포도도 재배한다는 윤 회장은 화성시의 대표 농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녁 찬거리를 사는 윤 회장 일행과 만나서 오늘 걸어야 하는 영산강 길의 승천보까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길을 찾아서 걷다가는 채 시장이 걷기를 마친 뒤에도 서너 시간은 족히 길 위에 있어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승천보에서 채 시장 일행과 다시 만났다. 채 시장은 오늘도 여전히 속보로 걸었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조금 피곤한 기색이 그의 얼굴에 서렸다. 이틀 동안 쉬었다가 다시 걸으려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채 시장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채 시장은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고, 그와 함께 어우러져 걷는 이들 역시 채 시장을 따라가기 위해 속도를 낸다.
남부지방에 태풍 피해가 크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영산강 자전거 길을 걸으면서 길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의 비닐들이 죄다 날아간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논의 벼 일부는 쓰러져 있기도 했다. 어떤 비닐하우스는 뼈대를 만든 파이프들이 주저앉거나 휘어져 있기도 했다.
부지런한 농부들 몇이 비닐하우스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태풍이 심한 피해를 입혔어도 삶은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겠지, 싶었다.
식당에서 다시 만난 채 시장은 여전히 밝았지만, 피로가 누적된 티가 역력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4호 태풍 '덴빈'이 올라오면서 내일부터 남부지방에 비를 쏟아 부을 것이라고 하더니 그 전조인가 보다. 비는 촉촉이 대지를 적시면서 내렸다. 이 정도 비만 와주면 큰 피해는 입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비옷을 꺼내 입었다. 비가 내리는 영산강 길을 자전거들이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 길을 생기더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나 보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빠르게 질주하는 자전거들은 경쾌해 보였다.
영산강은 이틀 전 태풍 '볼라벤'이 올 때만 해도 홍수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지금은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길게 직선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 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윤 회장이 탑차를 몰고 가다가 나를 보고 너무 많이 뒤로 처졌다면서 차를 타고 가라고 권했지만, 거절했다. 오늘만은 길게 뻗은 저 길을 비 맞으면서 타박타박 나만의 속도로 즐기면서 걷고 싶었다.
극락교가 있는 지점까지 걸었고, 나는 지원차량을 타고 철수했다. 대략 3시간가량 걸은 것 같다. 비가 내리는데다 그 지점에서 앞서나간 채 시장을 따라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들이 어느 길을 걸어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채 시장은 26km를 걸은 뒤, 철수했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찾은 식당에서 다시 만난 채 시장은 표정은 여전히 밝았지만, 피로가 누적된 티가 역력했다. 식당 바닥에 엉거주춤 앉는 모습에서 다리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태가 그 정도인데도 그는 거의 달리듯이 걸었다고 한다.
그와 오늘 처음 합류해서 걸은 이들은 채 시장을 따라 걷느라 고생했다는 말들은 연이어 쏟아냈다. 천천히 걷는다면 하루에 30km 이상이라고 너끈히 걸을 수 있지만, 채 시장을 따라 걷는 건 너무 힘들다, 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나는 채 시장의 입장과 함께 걷는 이들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현안 해결을 내걸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국토대장정을 마치겠다는 각오를 다진 채인석 시장은 그만큼 내딛는 걸음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이들은 각오가 그에 미칠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