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지인이 작은 화분 2개를 선물해주었습니다. 각기 다른 종류의 다육식물이 심겨진 앙증맞은 화분이었습니다. 다육식물은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속성상 서가 위에 놓인 그 화분은 관리가 소홀해져서 이태 전 뜨거운 여름날 한 화분의 식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저는 나머지 한 화분에 물을 줄때 마다 흙만 남은 그 화분에도 2년째 물을 주고 있습니다. 잘 보살피지 못한 제 탓을 상기하기도 할 겸 그 화분에 다른 식물을 심지 않은 상태로 두고 있지요.
처와 제가 신던 고무신 한 짝씩에 흙을 담아 식물을 심어 기르곤 했습니다. 상추를 심었다가 모두 걷고 나서 흙이 담긴 상태로 두었더니 풀이 돋았습니다.
거실에 또 다른 작은 화분이 있습니다. 6년 전에 수빈뜰의 이명희 여사님께서 꽃을 담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꽃의 수명이 다한 뒤에도 흙이 담긴 상태로 두었습니다. 이듬해 봄에 싹이 절로 돋아 자랐습니다. 좀 더 자라고 보니 무궁화였습니다. 3년째 이 화분의 원래 주인인양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그 후부터 발아래의 흙이 무기질 덩어리로 보이는 대신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그 빈 화분에도 생명이 자랄 것으로 여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씨가 날아들어 우연히 그 흙속에 숨어들고 적절한 환경이 되면 그 씨가 고무신발 속의 풀이나, 다른 화분의 무궁화처럼 발아를 하겠지요.
흙만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뜻은 흙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