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안녕하세요. 이혼을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는 정초희(가명·40대)라고 합니다. 스무 살 무렵에 결혼해서 20년 넘게 지금의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렇지 않나 봐요. 남편은 끊임없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둡니다. 물론 잠자리까지 함께합니다. 처음 외도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고, 많이 싸우기도 했죠.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하면서 여태껏 지내왔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용서도 해줬고, 남편의 사과와 다짐도 받았습니다. 정신을 차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바람기는 여전합니다. 최근에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더라고요. 저 혼자만 신경쇠약에 걸리고 불면증에 시달릴 지경입니다. 이번에도 용서를 해야 할지, 남편은 이혼할 생각도 없다는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안녕하십니까. 이혼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이혼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남자, '이도남'(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입니다. 오늘도 우울한 소식을 소개할 수밖에 없네요.
제게 메일을 보내주시는 내용 중에 정초희님과 비슷한 하소연이 너무 많았습니다. 반대로 남편이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됐는데, 아이들을 생각해서 참고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부부는 성적 교섭을 독점할 권리와 의무 있다"
참 어려운 문제지요. 복습 차원에서 이혼과 관련된 법률상식부터 다시 말씀드립니다. 부부가 갈라서기로 합의했다면 협의 이혼을 하면 됩니다. 합의가 안 된다면 이혼소송(재판상 이혼)을 청구해야 합니다. 재판상 이혼은 법에 나오는 이혼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배우자의 외도·부정행위는 명백한 이혼 사유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부정행위란 이성과의 성관계뿐만 아니라 부부 간의 동거·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일체의 행위를 뜻한다는 점도 지난 기사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정조'라는 말이 고리타분하거나 고지식해 보인다고요? 어쨌거나 대한민국 법과 판례는 부부에게 서로 성적인 교섭을 독점할 수 있는 배타적인 권리와 의무를 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정조 의무를 어긴 부정행위는 어느 정도를 의미할까요. 성관계나 그에 버금가는 행위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외간 남성(여성)과 애무 등을 하거나, 은밀한 문자·사진을 주고받았거나, 모텔에서 나오거나,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거나 한다면 이혼 사유가 되고도 남습니다. 부정행위는 꼭 상습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단 한 번만으로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부정행위는 반드시 '성적 능력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대법원은 "정교(성행위) 능력이 없어서 실제로 정교를 갖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배우자 아닌 자와 동거한 행위는 배우자로서의 정조 의무에 충실치 못한 것으로서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부부 아닌 이성과 술을 마셨다거나 차를 함께 탔다는 것만으로 모조리 부정행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전후 사정을 따져서 만남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른 동행인이 있었는지에 따라 이혼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외도해도 이혼 청구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관련법규 |
민법 제840조(재판상 이혼원인) :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6. 생략)
민법 제841조(부정으로 인한 이혼청구권의 소멸) : 전조 제1호의 사유는 다른 일방이 사전동의나 사후용서를 한 때 또는 이를 안 날로부터 6월, 그 사유있은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한 때에는 이혼을 청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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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대방에게 외도 사실이 있어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상대방이 바람피우는 것을 미리 동의했거나 나중에 용서해 준 경우입니다. 즉 사전 동의나 사후 용서를 해준 다음에는 이혼 청구권이 소멸됩니다. 서류상 부부라도 아예 갈라서기로 작정해 더 이상 혼인 의사가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면 사전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물론 동의나 용서 여부는 이를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또 부정행위를 안 날을 기준으로 6개월, 사유가 있는 날을 기준으로 2년이 경과하면 더 이상 이혼 사유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혼인 전에 일어난 '스캔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까요.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동거·정조 의무는 애인이 아닌 부부 사이에만 발생하기 때문이죠. 대법원도 "약혼 단계에서 부정한 행위를 했을 때에는 이혼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니까 배우자의 화려한 과거는 가슴 아프더라도 잊어야 합니다.
정초희님의 사연으로 돌아갑니다. 만일 사연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혼 사유가 되기엔 충분합니다. 다만 예전의 외도는 이미 용서해줬기 때문에, 현재 바람을 피운 부분만 해당이 되겠지요. 이같은 사실을 안 지 6개월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밝혀야 하죠. 다만 예전의 외도 사실도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
또한 정초희님은 이혼 소송과 함께 남편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위자료'란 부부 한쪽의 잘못으로 혼인관계가 깨짐으로써 상대방이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을 위로하는 성격의 금전입니다. 위자료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재를 통해 자세히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재판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판사를 납득시켜야 하는 절차입니다. 당사자의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따라서 증거 확보를 해야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람 난 남편, 용서할까... 칼자루는 당신이 쥐었다
다만 그 전에 선결 과제가 있습니다.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할지, 이혼해야 할지. 제가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군요.
한 잡지(<우먼센스> 2월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아내들을 대상으로 남편을 용서했는지를 묻는 조사였습니다. 이 질문에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했다'는 대답은 18%에 그쳤습니다. 오히려 용서했다(30%)고 답변한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용서하지 못했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다(52%)는 답변은 절반이 넘었습니다.
남편을 용서한 가장 큰 이유로는 ①자녀의 교육 및 미래 ②그동안 쌓아온 정 ③남편의 경제적인 능력 등의 순이었습니다. 물론 이 조사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지만 배우자의 외도 때문에 실제로 이혼을 감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법륜 스님은 결혼 생활을 위한 조언을 담은 책 <스님의 주례사>에서 정초희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① 라면 끓여 먹고 막노동을 하고 살더라도 이런 사람하고는 못 살겠다.② 이만한 남자 구하기 힘드니까 그래도 같이 살아야겠다.스님은 상대가 바람을 피우더라도 '그래도 내 권리가 제일 크다'고 생각하라고 조언을 하는데요.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결혼 20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잖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할지 고민해보십시오. 필요하다면 남편분과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해보시고,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칼자루는 당신이 쥐고 있으니 결코 우울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다음 기사에서 다룰 사건도 또 다른 외도 이야기입니다. 외도 때문에 이혼 소송과 간통죄 고소로 이어지는 아픈 사연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혼 없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지만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 슬픈 남자, 이도남은 다음 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연재와 관련해 알려드립니다 |
1.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 여러분의 의견을 받습니다. 현재 이혼 문제로 고민 중이거나 부부생활과 관련된 궁금한 점, 그 밖에 부부문제, 자녀양육의 법적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연락주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연애중이거나 결혼을 앞둔 남녀의 고민도 환영합니다. 단 소송중이거나 개인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은 사양하며 전화나 면담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보내주신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연재기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보내실 곳 : jundorap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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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상식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