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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어느 날,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 한 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가난한 학생들이 힘에 겨운 삶의 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던 고등공민학교가 있었기에 마음 붙일 곳 없는 우리들은 시멘트 자국에 슬레이트 지붕만 얹은 교실에서도 배움의 갈증을 풀었습니다.

나의 선생님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시골에 오셔서 봉사활동에 가까운 가르침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봉급이랄 것도 없는 적은 보수로는 생활도 힘드셨을 선생님은 책과 칠판이 교수 자료의 전부였던 우리들을 위해 사회 시간마다 신문 스크랩 자료를 보여주시며 열심히 강의하시곤 했습니다.

반듯한 선생님의 글씨를 배우고 연습한 덕분에 지금의 제 글씨는 선생님의 글씨체를 닮았습니다. 김선배 선생님! 잘 생긴 외모만큼이나 완벽한 교수법과 정갈한 말솜씨로 사춘기를 지나던 우리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셨지요. 그런 선생님을 특별히 기억하는 건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여름날의 한 조각 추억 때문입니다.

방황하던 그때 온 선생님의 편지 한 통

 선생님이 보내신 편지 한 통에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선생님이 보내신 편지 한 통에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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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가난한 가족 사정으로 세 식구가 뿔뿔이 흩어진 채 고등공민학교 중학교 졸업마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검정고시를 치러서 전 과목 합격을 해야 3년 동안 공부한 과정을 중학교 졸업 자격으로 얻을 수 있었던 우리들. 그때 저는 흩어진 가족을 뒤로하고 혼자서 고향에 남아 친척집에 얹혀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은 꿈조차 꿀 수 없었기에 시작된 방황으로 학교 공부를 놓아버리고 절망하며 슬픈 시간을 보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나신 선생님께서는 제 소식을 알고 장문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의 간곡한 말씀과 진정성이 담긴 편지를 읽고 저는 한없이 울었고 방황을 끝내고 검정고시를 위해 다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는 비록 고등학교를 갈 수 없을지라도 후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고 운명에 맞서서 당당하게 도전하라는, 절실한 충고의 말씀이 가득했습니다. 언제 없어진 지도 몰랐던 그 귀한 편지는 지금은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가난하고 아픈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 더 급했던 저는 검정고시를 위해 3년 동안 공부한 것을 한순간에 포기하고 일터로 나가려 했던 그때. 선생님의 편지 한 통은 제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으셨습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믿어주고 격려해 주며 바라보며 나를 위해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서울로 떠나신 선생님께서 그렇게 챙겨주셨다는 따스함이 얼어붙은 제 가슴을 녹인 것입니다.

김선배 선생님! 중학교 3학년짜리, 가난한 소녀를 위해 마음을 다해 정성 들여 쓰신 편지 한 통은 내 인생을 이끄는 희망의 등불이 됐던 것을 세상에 내놓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 편지는 오래도록 힘들 때마다 꺼내보며 나를 다독이며 주경야독의 길로 가게 하며 용기를 줬습니다.

사모의 마음을 가을바람에 담아 보냅니다

40년도 넘은 시간들이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가슴에 남아 아직도 따스하게 저를 감싸줍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선생님을 다시 만나뵙게 된지 벌써 몇 년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멋진 모자를 쓰시고 예술인의 향기를 지니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불쌍한 아이들과 부모들을 울리는 소식이 슬픔을 너머 분노를 일으키게 할수록 선생님의 배려와 사랑이 넘쳤던 그 편지를 생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열여섯 살 소녀가 가난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쉴 수 없어 삶의 끈을 놓고 슬픔과 좌절로 공부 대신 일터에 가고자 할 때, 멀리서 비춰주신 그 희망의 불빛 한 가닥에 저는 입술을 깨물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다시 공부를 해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주경야독을 하며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도 합격했습니다.

절실한 시기에 한 땀의 바느질로 제 인생의 옷을 기워주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저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먼 길 돌아와 내 인생의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로 큰 절을 올립니다. 올가을엔 선생님을 꼭 봬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만 남은 삼동고등공민학교와 김선배 선생님은 내 인생의 샘물이자 보물입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입니다. 선생님! 부디 강건하셔서 제 자식들과 같이 올리는 큰절을 받아주소서! 이제야 철든 부끄러운 제자가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을바람 우체부에게 그리움을 실어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교닷컴, 북랩, 부모 2.0, 너에게 가는 길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가난#검정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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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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