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래도 수요집회 현장에서 울려 퍼졌으면… 그 정도만 돼도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항상 집회 때는 <바위처럼>만 트시던데, 할머니들이 그 노래도 부르시고…(웃음). <바위처럼>도 틀고, 우리 음반도 틀었으면 좋겠어요."인디밴드 '소규모 아카시아밴드' 멤버 송은지(34)씨의 작은 소망이다. 그는 최근 동료 여성 음악인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음반 <이야기해주세요>를 발표했다. 송씨는 "할머니들의 문제가 시민단체 활동을 비롯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알려지길 바란다"며 이번 작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6년부터였다. 한창 '나는 여성이다'란 생각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던 때였다. 또 당시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와 대화하며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옛날에 처녀 공출 안 당하려고 결혼 일찍 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자연스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궁금해진 송씨는 같은 해 동료 여성 음악인들과 소모임을 꾸려 활동했다. 한동안 흐지부지됐던 모임은 2011년 7월 그의 제안으로 다시 시작됐다. 그 오랜 논의와 노력 끝에 <이야기해주세요> 음반이 올 8월 세상에 나왔다. 여기에는 송씨뿐 아니라 한희정, 오지은, 소히, 이상은, 시와 등 여러 여성 음악인들이 동참했다. 음원과 음반 수익은 모두 할머니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음반 이름은 송씨가 안해룡(52) 영화감독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안 감독은 1992년 태평양전쟁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 이 문제를 주제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전시회나 사진전 등을 진행해왔다.
안 감독은 여성 음악인들이 모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음반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후원계좌를 개설하는 등 여러모로 지원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사진작가 안세홍씨가 중국에 남겨진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일본 도쿄 니콘살롱에서 개최하려다 니콘 측의 거부로 무산될 뻔한 일이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사진전은 개최되었고, 안해룡 감독은 그 일을 계기로 프로젝트를 키웠다.(관련기사 :
<"위안부 사진전은 안돼" 니콘 사장, 알고 보니>)
안 감독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울시 용산구청에 전시회와 콘서트를 열 장소도 마련했다. 3일 오후 두 사람이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도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를 돕는 용산구청 공무원노조 사무실이었다.
<이야기해주세요> 음반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팀은 송씨와 동료들의 공연으로 음반 제작비의 절반을, 후원금 모금으로 나머지를 충당했다. 송씨는 "음반 제작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문제가 터지면 수습하느라 정신 없었다"며 "이 과정에서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송씨는 "콘서트도 원래 계획이 없었다"며 "공연을 준비하며 한 번 더 할머니들을 생각하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2일 소히, 지현, 정민아, 시와, 투명, 황보령 등과 함께 용산아트홀에서 <이야기해주세요> 콘서트 공연을 한다.
한희정, 오지은, 소히, 이상은, 시와... 여성 음악인 동참한 <이야기해주세요>
음반 이름이기도 한 '이야기해주세요'란 말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송씨는 "'이야기해주세요' 앞에는 여러 사람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들에게 당신의 상처, 고통을 한 번 더 이야기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할머니들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상처들을) 얘기했고, 계속 쌓아오셨어요. 이 음반을 듣는 이들이 그 쌓아온 것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할머니들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이야기하는 사람, '누가'는 열려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일본정부일 수 있고, 할머니들처럼 폭력에 상처 입은 분들에게 '할머니들이 용기 내셨듯이 당신도 누군가에게 (고통을) 이야기해서 치유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뜻도 담겼어요."그는 '성노예'란 표현을 두고 여론이 엇갈리는 상황 역시 '이야기해주길' 바라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일본군이 썼던 '위안부(comfort women)'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쪽에선 강제성이 있다는 점이 드러나도록 '성노예(sexual slave)'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UN 등 국제기구는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 slave)'란 표현을 쓰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경우 우리말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명칭을, 영문으로는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 by Japan)'을 사용한다.
송씨는 "트위터에서 다른 분과 대화한 적도 있는데, '성노예'란 표현이 정확하다고 여긴다"면서도 "아직 공식 합의가 없고, 할머니들의 '성노예'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런 이야기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작은 계기들이 <이야기해주세요> 음반을 시작으로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야기해주세요' 앞에는 여러 사람이 올 수 있다"지난주 음반이 발매된 후 연이은 인터뷰에 콘서트 준비까지 겹쳐 송씨는 최근 몇 달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뵙지 못했다. 그는 조만간 음반을 들고 할머니들을 찾아뵐 예정이다. 할머니들이 음악을 듣고 어떻게 평가하실지, 그는 조금 두근거린다.
"지난해 11월쯤 조슈아 데이비드 필저라는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음악인류학과 교수와 함께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군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쉼터)'에 처음 방문했고요, 그때부터 틈틈이 찾아뵈었습니다. 한 번은 동료가 보라색 앙고라털모자를 쓰고 나눔의 집에 갔어요. 다들 '할머니 모자'같다고 했는데, 나눔의 집에 계신 할머니 한 분이 돈을 줄 테니 팔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또 다른 분이 자신도 같은 모자를 사다달라고 제게 부탁했어요. 알아봤더니 보라색이 없어서 오렌지색으로 사다드렸더니 마음에 안 들어하셨어요(웃음). 그 할머니는 가수 출신이어서 음악에 관심 많고, 연예인들 연기나 옷을 보며 평가도 많이 하십니다. 아마 이번주나 다음주에 음반을 갔다드리면 신랄하게 평가하실 겁니다."송씨는 여전히 공식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를 보면 "일본정부가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실 때까지 버틸 수도 있겠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문화라는 방식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서 힘을 얻었다"며 "정말 늦었고, 할머니들에게 죄송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팀은 오는 10일부터 14일까지 용산아트홀에서 전쟁과 평화, 여성을 주제로 여러 가지 행사를 연다. 행사 기간 동안에는 구본창 작가 등 6명과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사진부가 제공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전이 열리고, 11일에는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상영된다. 전시장 한 쪽에는 일반 시민들이 전쟁 반대, 평화 등의 메시지를 담아 보낸 사진들로 꾸민 '평화의 벽'이 설치된다.
덧붙이는 글 | * 이 행사는 시민들이 스스로 만드는 문화실천행동입니다. 십시일반에 동참해주세요. 후원해주신 분들은 메일 주소와 연락처를 badasaram@gmail.com(안해룡)로 알려주세요. 후원계좌는 국민은행 206002-04-273460 안해룡(이야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