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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하면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다. 그러니 누구나 이집트에 가면 이곳은 가야 한다. 이것을 안 보면 이집트를 갔다 왔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 여행단은 이집트 여행의 첫 일정으로 기자의 피라미드를 방문하였다.

기자는 카이로에서 먼 곳이 아니다. 옛날에는 카이로에서 꽤나 멀었던 모양이다. 시내를 한참 지나 피라미드를 먼발치에서 바라다 보면서 사막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카이로 시내를 지나간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동내 한 가운데서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카이로의 도시화가 가져온 우울한 모습이다.

존재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피라미드

 기자 피라미드군, 맨 왼쪽부터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기자 피라미드군, 맨 왼쪽부터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 박찬운

기자의 피라미드는 잘 알려진 대로 3기의 피라미드군이다. 이들 피라미드는 모두 고왕국 시기에 축조된 것이니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제일 큰 규모인 쿠푸왕 피라미드(높이 146미터), 조금 작은 규모의 카프레왕 피라미드(높이 143미터, 현재는 136.4미터), 쌓다 만 미완의 멘카우레왕 피라미드(65미터)가 바로 그것들이다. 멀리서 사진을 찍어가며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앞에 다가갔다. 한마디로 장엄하다. 4500년간 온갖 풍상을 겪어 왔지만 이 인류의 유산은 아직도 우리 앞에 서 있다.

온갖 도굴로 만신창이가 되고, 기독교와 이슬람 교도에 의해 피라미드의 상당 부분이 뜯겨져 나가 그들의 사원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피라미드는 구약 성경 출애굽기에서 요셉이 형제들의 배신에 의해 애굽땅으로 팔려 올 때 이미 완성된 것이었다. 모세가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 때도 물론 건재하였다. 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이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애굽땅으로 피난을 왔을 때도 이 피라미드는 그들 가족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피라미드는 무엇일까. 파라오의 무덤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견도 있다. 그것은 자연의 대재앙이나 전쟁, 전염병 등을 예고하는 예언적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통설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146미터, 밑변이 230미터이고 체적이 무려 250만 세제곱미터나 된다. 이것을 건조하는 데 약 600만 톤의 석재가 사용되었으며 어떤 돌은 무게만 15톤에 달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4500년 전에 이런 엄청난 돌들을 날라 이곳에 이런 대형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피라미드 건설에 사용된 그 모든 기술을 알아내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다만, 피라미드에 사용된 화강석을 1000킬로미터 밖의 아스완에서 나일강에 뗏목을 띄워 이곳으로 옮긴 다음 통나무를 깔아 놓고 사람들이 끌고, 그 다음 모래산을 만들어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렸을 것이라는 정도의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바로는 피라미드에 사용된 화강석이나 석회암이 대단히 정교하게 절단되었다는 사실이다. 석회암이야 무른 돌이나 철기가 아닌 단단한 돌로 절단할 수 있다고 해도 화강석과 같이 단단한 돌은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절단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스완에 가서 보게 되는 미완의 오벨리스크에서 의문이 풀리지만 실로 대단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미드는 노예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예전에는 이러한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피라미드의 건축이 워낙 고도의 기술력이 동원된 것이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 채찍을 당하며 목말라하던 노예들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은 이 건축물이 놀라운 기술력을 가지고, 노동 조직력을 지녔으며 절정의 예술적 재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만든 작품으로 이해한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연중 4개월은 사람들이 실업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파라오들이 이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 이런 대형 국책사업을 벌였다는 해석도 한다. 제법 괜찮은 해석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케인지안 경제이론이 경제정책의 토대였다니 말이다.

도굴범 앞에서 난공불락은 없는 법

 기자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 피라미드
기자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 피라미드 ⓒ 박찬운

기자의 피라미드에 가면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규모가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를 들어가보고 싶어한다. 나도 물론이다. 하지만 이곳은 경쟁이 심하다. 하루에 300명만 들여 보낸다고 한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와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여행사 프로그램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아쉽지만 쿠푸왕 피라미드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입구에서만 서성거리며 사진만 찍었다.

대신 가장 작은 피라미드인 맨카우레왕의 피라미드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몸을 수그린 채 30~40미터를 내려가 미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례실에 도착하였다. 밀실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사실 나도 이것을 순간적으로 경험하였다.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는 도중 갑자기 혈압이 오르며 갑갑함을 느꼈다.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정지한 채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다시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마 이러한 상태가 심해졌더라면 큰 위험에 직면했을 것이다.

들어가면서 피라미드의 벽감을 보니 단단한 화강석과 무른 석회암이 번갈아 나타났다. 그리고 장례실은 화강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화강석을 사용한 것은 무엇보다 도굴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아마도 도굴범이 이 피라미드의 설계도면 없이 도굴을 한다면 필시 장례실로 추정되는 부분을 예측하고 돌을 깨 나가면서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번갈아 나타나는 화강석은 난공불락과 같은 존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3기의 피라미드 전체가 도굴되었으니 도굴범 앞에서 난공불락은 없는 법이다. 그런 이유로 고왕국 이후 파라오의 무덤방식은 다른 방법으로 바뀐다.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파라오가 살아 있을 때 암굴을 파기 시작해 죽으면 시신을 미라로 만든 다음 암굴묘에 넣고 입구를 봉하는 방식이다. 석회암 동굴의 입구가 막히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입구를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양식이 바로 신왕국 시절에 볼 수 있는 테베(룩소르) 서안의 지하 암굴묘이다.

도굴범과의 숨바꼭질에서 택한 방법이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 역시 도굴범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제까지 유일한 예외가 바로 투탕카문(투탕카멘)의 묘다. 1922년 11월 4일 하워드 카터는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파라오 묘를 발굴하였다. 이집트 고고학 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스핑크스의 코는 왜 문드러져 있을까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앞에 스핑크스가 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앞에 스핑크스가 있다. ⓒ 박찬운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앞에 서 있는 스핑크스다. 이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많은 스핑크스 중 가장 큰 것이다. 길이 57미터에 높이가 20미터나 되는 이 초대형 조각상은 석회암 언덕을 깎아 만든 것이다. 그 역할이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세 피라미드를 보호하고 매일 아침 태양을 다시 탄생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즉, 이것은 사자를 부활시키는 의미가 있다. 탄생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순환의 비밀이 스핑크스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스핑크스에 다가가 보면 코가 문드러져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설이 제기된다. 나폴레옹이 이곳에 와서 대포를 쏘아 코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대포를 쏘았으면 코만 문드러졌겠는가. 그리고 나폴레옹이 이집트 고대문명에 대하여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수많은 학자들을 데리고 원정 길을 떠났는데 설마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

한가지는 분명하다. 스핑크스의 다른 곳은 비교적 성한 것을 보면 사람들이 코를 일부러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정설은 후대의 기독교도나 이슬람 교도들이 스핑크스의 코를 파괴함으로써 그것의 생기를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만행은 이집트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디를 가도 다른 곳은 멀쩡한데 코만 다친 조각상이 너무나 즐비하다.

ⓒ 위키피디아

라(RA) 라는 태양으로 화신하는 신성한 빛이다. 종종 그는 머리 위에 태양을 인 매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무트(MOUT) 아몬의 아내로서 그녀의 이름은 어머니와 죽음을 동시에 의미한다. 암사자의 몸으로 화신하는 이 여신은 종종 독수리 유골 형태의 머리 모양에 횐 색의 관이나 이중 관으로 쓴 여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베크(SEBEK) 악어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약탈자이자 홍수의 신이다. 이 신은 콤옴보 신전에서 볼 수 있다.

세트(SETH) 폭풍과 폭우 그리고 사막의 신인 세트는 불특정 동물 머리를 갖고 나타난다. 그는 형제인 오시리스를 살해한 살인자로서 모든 것을 쳐부수고 파괴하여 무질서를 낳는다. 악의 화신이기도 하다.

아몬(AMON) 아몬은 '숨어있는 자'라는 뜻이다. 신왕국 시기에 테베의 수호신이었다. 한 쌍의 높은 깃을 세운 관을 쓴 머리 모양으로 나타난다. 아몬은 생명을 주는 대기의 주신으로 몸 색깔이 푸른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아툼(ATOUM): 아툼은 '총체적이고 완전한 것' 또는 '존재하는 것이자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의미가 있다. 이 신은 태초의 에너지의 바다에서 깨어난 창조자로 종종 이중관을 쓴 파라오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프타(PTAH) 프타는 '건립자'라는 뜻인데 멤피스의 지배자이자 말씀의 신, 장인들의 신이었다. 그는 권력의 상징물을 들고 작은 모자를 쓴 미라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하토르(HATHOR) 이 신은 '호루스 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여신은 종종 암소의 귀를 가진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머리에는 뿔이 두 개 나 있고 두 뿔 사이에는 태양이 있다. 기쁨과 사랑, 그리고 하늘의 여왕으로 간주된다.


#나일문명기행#피라미드#스핑크스#카이로 기자#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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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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