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인카드 내역, 네가 노조에 준 것 맞지?"

지난 2월 말 MBC 노동조합이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폭로한 이후 회사 측이 회계부 조합원들을 상대로 숱하게 던진 질문이다. 회사 측은 이후 자료 유출자를 찾기 위해 말 그대로 혈안이 되었다. 직원들에게 자료유출 사실을 자백하면 해고만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설득을 하기도 했고, 자백하지 않으면 반드시 찾아서 해고하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회계부 직원 3명 심증만으로 보복... 가족까지 사찰

 지난 8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조직개편에 항의의 의미로 삭발한 카메라 기자들과 조합원들이 보복인사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8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조직개편에 항의의 의미로 삭발한 카메라 기자들과 조합원들이 보복인사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김재철 사장은 이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했다. 회계부 직원 3명을 심증만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이 이 3명에 대해 6번에 걸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매번 기각당했다. 그러자 김재철 사장이 어떻게든 조사를 받도록 하겠다며 직접 고소를 한 것이다.

또 회계부 직원 3명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대기발령이 끝나자 1년간 '명령휴직'이라는 정말 들어보지도 못한 징계를 내렸다. '명령휴직'은 임금을 전혀 주지 않기 때문에 해고 다음의 중징계에 해당한다. 중대한 비리혐의로 구속 혹은 불구속 기소되었지만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징벌인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비리와 관련된 자료가 추가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파업기간 중 '트로이컷'이라는 프로그램을 서둘러 설치해, 외부로 나가는 모든 자료를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1600여 명의 본사 직원 중 극소수를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이 프로그램이 깔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상당수 직원들이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안 뒤에도 '설마' 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트북은 물론 집에서 쓰는 컴퓨터에까지 이 프로그램이 깔려 사적인 메일이나 자료가 통째로 회사에 전송된 사실을 안 직원들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직원과 가족들의 컴퓨터에 3천여 개의 도청장치가 일시에 깔린 것이다. 기자나 PD들과 사적인 메신저나 이메일을 주고받던 취재원들은 연락을 끊었다.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업무 복귀 첫날부터 시작된 보복

그래도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자신의 비리가 드러난 데 대한 사적인 앙갚음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70일간의 장기파업을 유도했던 김재철 사장은 업무복귀 첫날부터 대규모 보복인사를 단행했다.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에게 드라마 세트장 관리, 신사옥 건설 업무, 경인 지역 지자체 상대 영업사업, 충북 오송의 중계센터 설립 등의 업무를 하도록 발령을 냈다. 명확한 사유도 없이 대기발령을 냈다가 그 기간이 끝난 직원들은 다시 교육발령을 내 '브런치 만들기'와 '요가 배우기'부터 대학 초년생 상대의 교양강좌를 듣도록 했다. 이 바람에 업무복귀 이후에도 실제 업무에 복귀하지 못한 직원들이 본사에서만 1백 명이 넘는다.

파업이 중단되었지만 방송 불방은 기본이다. 작가들을 무더기 해고해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PD수첩>을 사실상 폐지했고, 기업의 사기 행태를 다루는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불만제로> 역시 8주째 불방 중이다.

비인간적인 노동조합 탄압 행태를 다루려던 <금요와이드>도 불방되었고, 담당 PD들만 졸지에 징계를 받게 되었다. <시사매거진 2580>에서 '안철수편'을 제작하려 하자 기자들에게 '종북좌파'라는 낙인을 찍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전격적으로 교육발령 조치했다.

비판적인 언론정신의 말살이 목적

이 모든 보복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오는 12월 대선까지 언론인으로서 입을 닫고 침묵하라는 것이다. 여권에 비판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시사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뉴스는 철저히 정권의 나팔수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기자 시절에도 기자정신보다는 정치적 행보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향인 삼천포를 방문하며 소위 '지역구'를 다졌고, 수구보수층이 그토록 비난하는 최문순이나 김중배 사장 밑에서도 철저히 고개를 숙이고 살아남았다. 김 사장에게 유일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자신의 생존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김 사장은 공영방송 MBC에서 비판적인 언론정신을 말살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미 언론인이 아니다. 청와대가 "이번 기회에 MBC의 DNA를 확 바꿔버리겠다"라고 공언(公言)했다는 데 그 말이 그저 공언(空言)으로 그치지 않는 건 김 사장 같은 존재 때문이다. 그리고 김 사장을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일부 간신배들 때문이다.

지금 MBC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김재철 침대'를 맞춰놓고, 여기에 맞으면 보직과 자리를 주고, 그렇지 않으면 업무에서 쫓아내는 보복을 가하고 있다. 보복을 당하지 않으려면 비판적인 언론정신을 버려야 한다.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 정신으로 무장하도록 강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도 싫으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김재철과 현 정권이 원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는 MBC를 버리거나 떠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다시 '파업 재개'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용마 MBC 노조홍보국장입니다.



#MBC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