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 경북 포항의 구룡포 일대를 걸어서 탐방하는 코스를 개발하고자 구룡포의 역사 유적과 걷기길을 연계하여 한번 사전 답사길에 나섰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0번 구룡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구룡포 읍사무소에 내려 본격적인 걷기 투어를 시작한다.
한때 화려했던 고래잡이의 명성을 되새기는 고래총과 포경선을 보고 병포 교차로에서 벚나무길을 통과한다. 오징어·과메기 덕장을 거쳐 이 시대의 마지막 목재조선소의 폐선장과 용왕신당산을 들러 마라톤쉼터-트롤어선부두-어판장을 지난다. 구룡포항을 굽어보고 구룡포 시장 내에 위치한 낡은 국수들이 노래하는 제일국수공장과 50년의 전통을 자랑하지만 결코 녹녹치 않는 철규분식 그리고 장기목장성의 관문이었던 석문터를 지난다.
구룡포에 있었다는 영화관 터에 일제시대에는 자동차 정비소가 있었다고 한다. 극장이 폐쇄되면서 누드춤이 유행하던 한 시절 나이트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슈퍼마켓(마트형)으로 변해버린 거리로 계속 가면 아직도 잠자고 있는 일본인 가옥거리를 걸어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 신사터였던 구룡포 공원을 배회하다가 구룡포 방파제를 들러 구룡포 용주리 해녀들의 집합소인 어촌계를 지나 마지막으로 구룡포중고등학교 앞 등대에서 걷기를 마칠 계획이다.
고래는 1986년부터 사실상 포경이 전면 금지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많이 잡힌 어종이다. 한말까지 방치되었던 동해의 풍부한 고래자원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각축을 벌이다 1890년대 일본이 동해의 포경업을 독점하면서 구룡포에도 고래를 잡는 포경선이 자주 입항하였다.
구룡포는 일제시대인 1926년 1차 방파제가 만들어진 후부터 정어리와 청어잡이는 물론이고 고래잡이 전초기지로도 명성을 얻기 시작한 포구이다. 역사적으로도 구룡포를 비롯한 영일만 앞바다는 '동남제도개척사겸관포경사(東南諸島開拓使兼管捕鯨事)'라는 직함을 가졌던 김옥균이 고종 때 포경업을 추진할 정도로 고래가 들끓었던 곳이다.
구룡포 읍사무소 내에는 구룡포 개발자문위원인 김재환씨의 도움을 받아 김재섭 전 읍장이 고래총을 설치했다. 이후 지역 사랑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고 김건호씨의 유지를 받들어 장남 태균씨가 출자한 3000만 원과 구룡포 개발자문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감척된 어선을 개조해 2010년 7월 20일 이 자리에 배가 자리하게 됐다. 기부자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어선명은 '동건호'로 했지만 과거 꽁치잡이 어선으로 이름을 날리던 선박이어서 구룡포와 이미지가 맞는 이름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룡포읍사무소에서 얕은 오르막인 병포교차로로 길을 잡으면 용두산 언저리에 장승 2기가 서 있다.
"과메기 특구", "오징어 대게 고장"대게의 경우 전국 생산량 약 60%를 점유하지만 그 명성은 영덕·강구만 못하다. 게다가 오징어도 예전보다 생산량이 엄청 줄어버렸다.
장승과 마주한 이 재는 구룡포에서 외지로 일보러 가거나 단체로 여행을 떠날 때 잠시 인사를 하고 가는 곳으로 간단히 막걸리 한 병 놓고 무사안녕을 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서낭당 같은 곳이다.
병포리교차로에서 감포 가는 지방도로 접어들면 좌우로 가로수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데, 이 나무들은 벚나무이다. 양 옆으로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는데, 영포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찰토마토를 생산하는 곳이다.
조금 더 길을 걸으면 크고 웅장한 천태종 소속의 용주사가 있다. 화려한 대웅전의 현판 글씨는 금색인데 '대웅보전' 이 아니고 '대불보전'이다.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나 큰 규모에 비하여 건물의 단청은 아주 멋스럽게 잘된 절이다.
구룡포 들목에 우뚝 솟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자래골, 웃자래골, 남포동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용의 머리 같이 생겼다 하는 용두산에는 고려 때 수군검사진기로 사용되던, 성벽의 둘레는 1000여 척, 높이 10여 척이었으며 우물을 구비한 토성이 있었다 하나 고려 말에 폐지되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병포3리 동네 중간 지점 바다 쪽으로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는 포고나무로 마을 끝 바다 앞에 위치한다.
시멘트와 굵은 돌을 섞은 담장이 높이 세워져 있고, 양 옆으로 길이 있다. 바다로 난 길은 새로 만들었으며 원래의 길은 좁은 길이다.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음습한 기운이 확 밀려와 소름이 돋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동제를 올렸다 하나 지금은 중단된 것 같다.
1983년 당시 국내 최대 인공바다 목장으로 명성을 떨친 해원 바다목장 낚시터를 지나 병포리 방파제에서 구룡포 항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발길을 돌린다.
덧붙이는 글 | * 구룡포 읍내의 역사 유적 길 걷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 현장 답사 및 도움말: 이상령(포항 역사문화문화길라잡이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