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인간으로서 어떤 의미의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점점 경제 동물로 전락하고 있어요. 전인적 인간이 아니라 경제적 동물로 축소되니 관심사나 평가 기준이 '얼마를 버느냐'로 한정되죠."(43쪽)
한홍구 외 6인이 쓴 <내가 나일 때 가장 빛난다>에 나오는 한 꼭지 내용입니다. 이른바 학벌주의와 엘리트의식에 찌들어 있는 한국사회와 청년세대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고 있는 홍세화씨의 이야기죠. 그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남과 비교하는 열등감에 잠식돼 있는 데 대해 많은 염려를 하죠.
어찌 보면 그게 틀린 것은 아니겠죠? 계층이 고착화된 피라미드 구소 속에서는 누구든지 최고의 탑이 되기 위해 죽을 똥을 싸며 달려들기 때문이죠. 명문대 학벌이니 좋은 스펙이니 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그 틀 속에서 놀아나는 것이죠. 그걸 깨트리고, 모두가 인간답게, 각자의 가치관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며 사는 사회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이겠죠.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홍세화씨가 여행을 주문한 것 말이죠. 그는 국제관계학과에 재학 중인 박희은씨와 대화하면서, 그녀에게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가리지 말고 여행을 떠나라고 종용합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할 때에만 진정으로 자기 인생의 의미를 건져올릴 수 있다고 하죠. 그 속에서 퍼올린 '자기 존엄성'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학벌이나 물질적인 것에 비교당하지 않는 척도라고 하죠.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 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각자의 개성을 만들면 자연스레 자본주의는 붕괴됩니다. 우리를 획일화할 수 없으니까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전체주의나 독재 같은 지배 체제는 모두를 획일화시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떠한 경우라도 내가 나로 서 있는 거예요."(118쪽)철학자 강신주씨가 사진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임승현씨에게 전한 이야기입니다. 뭐랄까요? 외모만 중시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내면주의자'들을 향해 꼬집는 부분이죠. 그는 다른 사람의 내면과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도 나의 외모부터 열어 놓아야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곧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시간이 지나면서 갖추게 되는 자기만의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죠.
듣고 보니, 나 자신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외모에 신경도 쓰지 않고, 나 편할 대로만 살아온 것 말이죠. 어떤 모임에 나가더라도 그저 수수한 옷차림으로 편하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옷매무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없었을뿐더러, 나 자신을 강조하는 포인트조차 없는 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바였죠. '너답고 멋있다'라고 칭찬받기까지는 10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지금부터라도 외모에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강신주씨가 그토록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라고 하는 이유는 구조사회와 연관된 이유 때문입니다. 이른바 과거의 구조가 새로운 구조로 바뀌면 사람들은 또 다시 다른 구조에 눈을 뜬다는 것이죠.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군부독재에서 민주사회로 옷을 갈아입었어도 그에 걸맞은 외모가 필요하다는 것 말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입사 때문에 청년들이 성형에 뛰어들고 있는 꼴도 똑같다는 것이죠. 그걸 나쁘다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강점 포인트를 찾도록 조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가치관, 자기 존엄섬, 자기만의 색깔과 강점 포인트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걸까요? 과연 그 근원은 무엇일까요? 리자이나 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오강남씨가 그에 대한 해답을 적절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종교가 그 자리에 있다고 말이죠. 삶의 이유, 방향성, 궁극성 등을 찾는 길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이죠. 물론 표층종교보다는 심층종교에 그 깊이가 농축돼 있다고 전합니다.
"표층 종교에 머물러 있으면 여러 부작용이 생깁니다. 자신이나 자기 집단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것과 부딪히게 되죠. 십자군 전쟁도 그러한 것입니다. 마녀사냥도 그렇고요. 마녀사냥이 무엇입니까? 표층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 심층종교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다 없앤 것이 마녀사냥입니다. 표층종교에 머물게 되면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212쪽)사실이 그렇죠. 종교가 필요한 이유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밝혀주기 때문이죠. 그것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자기 방향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다들 표층종교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신의 이름과 힘을 빌려 자기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려는 게 모두 표층종교가 갖고 있는 특성이라고 하죠. 하지만 심층종교는 돈과 권력과 욕망과는 거리가 먼 '생명'과 '평화'에 그 지향점이 있다고 하죠.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의 개성과 강점 포인트도 종교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심층종교를 지향하는 이들은 자기 정체성과 지향점들을 이미 꿰차고 있는 이들이고, 또한 자기 존엄성 안에서 자기만의 색깔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죠. 이미 자기 방향성을 확실하게 확립해 놓은 청년들은 그 어떤 외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고 성실하게 자기생을 살아가겠죠.
인생에 절대적인 기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70억 인구 중에 똑같은 사람은 감히 한 사람도 없죠. 심지어 쌍둥이라도 다들 다른 구석이 있기 마련이죠. 그 인생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길은 열등감에 주눅들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을 때입니다. 그렇다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도 지양해야 할 바임을 깨닫습니다. 아무쪼록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방향성을 확실하게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