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의 지식 가이드를 통해 건물 밖에서만 구경을 했던 웨스트 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의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역으로 향했다. 출근시간이 조금 지난 지하철 안은 사람이 붐비지 않아 책을 읽으며 차분히 이동했다. 우리는 역 밖으로 나와 템스 강(Thames River)과 빅벤(Big Ben)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런던에서의 아쉬움을 사진에 담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들어가는 입구는 세인트 마가렛 교회(Saint Margaret's Church) 쪽에 있다. 이른 아침부터 사원에 입장하려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줄이 뱀의 꼬리 같이 길게 이어져 있다. 성당 입구에서 왼쪽 줄은 입장료를 현금 결제하는 줄이고 오른쪽 줄은 신용카드 결제로 입장하는 줄이다. 나는 줄이 더 짧고 입장료 지불 속도가 빠른 현금결제 줄에 섰다. 긴 줄이지만 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줄에 서서 앞을 보니 고딕 양식의 성당 외벽 석재들이 중후한 성당의 역사를 닮았다. 색상이 누런 대리석 사이로 사원을 보수할 때에 끼워놓은 하얀 대리석들이 마치 옥수수 알이 맞물리듯이 차곡차곡 연결되어 있다. 사원 출입문 바로 위에는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인물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등 20세기 각국 순교자들의 조각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순교자상 바로 위에는 영국의 각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들이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그 문장들 중에는 현재 영국의 왕실인 윈저 왕가(House of Windsor)의 문장도 있다.
사원의 어른 입장료는 무려 16파운드다. 대부분 무료인 런던 시내의 박물관들과 달리 왜 이리 비싼 입장료를 받는지 알 수 없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싼 입장료 때문인지 사원 내부로 입장하면 각국의 언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오디오 설명 번호가 기재된 지도를 나눠준다. 왠일인지 한국어 가이드가 없어서 영어로 된 가이드를 받았다. 나는 우리의 뒤를 이어 들어올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왜 한국어 가이드가 없느냐고 사원 안내인에게 물었다.
"아니, 왜 한국어 가이드가 없죠? 이렇게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데""한국어 가이드가 진짜 있어야겠네요. 다음에는 꼭"사원 지도를 보면서 구경하니 동선을 잡고 이동하기는 편하다. 오디오 가이드 설명은 알차게 잘 만들어져 있는데 유물에 적힌 번호 앞에서 오디오의 번호만 맞추면 유물의 설명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다. 넓은 사원 안의 여러 장소에 번호가 빼곡이 적혀 있어서 신영이와 유물의 번호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유물 전체를 번호대로 둘러보려니 시간도 꽤 걸린다. 사원 내부는 관광객의 물결이지만 오디오 가이드가 관광객들을 한 방향으로 안내하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부딪치지 않고 질서 있게 이동하고 있다.
이 웅장한 사원 안에는 영국을 통치했던 영국의 왕과 여왕, 시인, 과학자 등 영국의 위대했던 인물들의 묘가 총망라 되어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성공회 사원이자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원의 기능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 수많은 성당과 교회가 있고 그 규모 면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큰 곳들도 많지만 사원이 품고 있는 국왕묘와 기념비 등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비교해보면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따라올 곳은 유럽 내에 없다. 책에서만 보던 영국 역사와 영웅들이 눈앞의 석관과 바닥 대리석 아래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얼떨떨하다.
성단 뒤에 자리한 세인트 에드워드 예배당(St. Edward's Chapel)에는 헨리 3세(Henry III), 에드워드 1세(Edward I)와 엘리노어 왕비(Queen Elinor)의 묘가 있다. 이름들이 비슷하여 외우기 힘든 게 영국왕의 이름인데, 한곳에 묘가 모여 있으니 이름이 더 헷갈린다.
눈앞에 잘 정돈된 묘로 남아 있는 묘가 바로 13세기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고딕식으로 개축한 헨리 3세의 무덤이다. 그 옆에 자리한 에드워드 1세(Edward I)는 헨리 3세의 아들로서 강력한 왕권을 회복하고 여러 입법을 단행한 왕이다.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드워드 3세(Edward III), 아일랜드 원정 중 왕위를 뺏긴 리처드 2세(Richard Ⅱ)의 묘가 모두 한곳에 있는 이곳은 바로 영국역사 1번지이다.
영국의 국왕들은 모두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는 것이 자신에게 최고의 안식이 되고 종교적인 구원이 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 국왕들은 통치기간 내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관리하고 보수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였다. 헨리3세가 이 사원을 대대적으로 개축한 이래 당시의 천장과 대들보 등 웅장한 구조물들이 800년 동안이나 유지되고 있는 것도 바로 여러 국왕들의 노력 덕분이다.
매일 수만 명의 여행객들이 이 사원에 모이는 것도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경지를 이룬 이 사원의 이러한 역사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수많은 영국 국왕들의 이야기들을 사전에 공부하고 방문하면 너무나 가슴이 뛰는 곳이다.
위대하고 성공적인 군주였던 두 여왕의 묘 배치도 인상적이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와 앤 여왕(Queen Anne)의 묘의 배치는 라이벌 의식이 느껴질 정도로 규모와 구조가 비슷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를 지나 앤 여왕의 시대를 열었던 앤 여왕은 자신의 묘를 엘리자베스 1세의 묘보다 더 거대하고 화려하게 지으라고 했다고 한다. 위대한 여왕은 경쟁심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들의 무덤 앞에서 여왕의 시대의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책에서만 보던 먼 시대의 여왕들이 바로 앞의 묘 안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나는 여왕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긋이 나를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 본다.
나는 고래 등뼈같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천장을 잠시 올려보고 다시 걸었다. 국왕들 묘를 지나니 영시의 아버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세계적인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등 영국의 대문호들이 나를 반긴다. 영국의 대문호들을 기념하는 기념비들을 만나면 영국이 자국의 위대한 문학가들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한손으로는 원고를 든 채 시인 기념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조각상은 바로 셰익스피어다. 두 요절 시인 존 키츠(John Keats)와 퍼시 셸리(Percy Shelley)는 대문호 기념비의 가장 위쪽에 짧은 생몰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두 시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나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회랑 뜰을 바라보며 잠시 가족과 함께 숨을 돌렸다. 아직 사원 안에는 더 둘러봐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사원 박물관도 볼 만하지만 그보다도 이 대사원에는 한줄기 햇빛처럼 세계의 과학계를 이끌었던 영국 과학자들의 묘가 있다. 세계 물리학과 수학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고리를 연결한 대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서문 쪽에 있다는 아이작 뉴턴의 무덤을 열심히 찾았다. 나와 신영이는 성당의 마지막 출구 부근에서 아이작 뉴턴의 묘를 겨우 찾았다.
내가 뉴턴을 찾아가는 이유는 최근 이 사원의 스토리텔링에 추가된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 때문이다.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로버트 랭던(Robert Langdon) 역으로 나온 톰 행크스(Tom Hanks) 가 비밀문서를 봉안하는 장치인 클립텍스의 암호를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면이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아이작 뉴턴 묘 앞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사원 내에서 영화촬영을 허가하지 않아서 다른 성당에 뉴턴의 무덤을 가짜로 만들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뉴턴 묘 위에는 실제로 갈색의 커다란 구가 책에 팔을 괴고 있는 뉴턴 석상 위에 박혀 있다. 구를 자세히 보니 사람, 새, 뱀 등 온갖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영화 속 작가는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와서 뉴턴 묘의 구를 보면서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하였다는 일화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 이 사과 이야기를 두고 진위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야기의 당사자인 뉴턴은 말년에 이 일화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과이야기는 300년이 지난 현대에 영화 속 소재로 재탄생하였다.
영화에서는 비밀기사단의 기사로서 뉴턴이 교황청의 권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런던에 교황이 묻은 기사가 누워 있고 그의 무덤 위에 있어야 할 구(球)를 찾고 있다. 교황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은 기사는 다름 아닌 아이작 뉴턴이고 뉴턴의 묘 위에 있어야 할 구의 정답은 바로 장밋빛 살과 씨를 품은 '사과(apple)'였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황당한 내용의 영화지만 영화 속의 영상은 내 머리 속에 각인되었고 나는 뉴턴의 묘를 찾아가고 있었다.
영화가 남긴 영상의 기억은 책으로 읽었던 위대한 영국 왕들의 스토리보다 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영화는 현실 속의 사원과 영화 속의 사원을 혼동하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허구라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영화가 비현실의 세계라지만 인간이 지구 위에서 살고 있는 사실 자체도 신비로운 비현실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원의 역사 속에는 영화 속 스토리도 계속 추가되고 있었다. 영국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스토리텔링의 보고, 웨스트민스터 사원. 나는 다시 한 번 내 지식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내가 아는 지식과 영화 속에서 즐거운 사원 답사를 마쳤다.
기념품 가게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 모형을 사고 싶어하는 신영이를 억지로 데리고 사원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찌푸렸지만 가끔 푸른 하늘이 보였다. 나는 우리 여행 중의 영국 날씨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