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지난 16일 문재인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문재인은 파죽의 13연승을 기록하며 결선투표까지 갈 것이라는 일각의 예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마치 문재인의 선출을 기다렸다는 듯이 19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입심 좋은 사람들은 벌써 '문.안.드림(문재인 안철수 Dream)'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고 문재인-안철수의 양자 전국 콘서트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철수가 본격적으로 선거판에 뛰어든 지금, 안철수는 과연 이번 선거판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문재인과의 후보단일화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가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안철수를 선택해도 되는 것일까?
안철수는 '90스타일' 안철수가 제3후보로서 사상 유례 없이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그 핵심은 안철수 패러다임이 박근혜나 문재인의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군복' 걸친 박근혜-문재인, 안철수 못 이긴다 (이하 군복))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보충해서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보는 정치인 박근혜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가 1970년대이고 문재인의 경우 1980년대(문재인은 1980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한 것이 1983년이었다)라면, 안철수의 정체성은 1990년대에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안철수연구소는 1995년에 설립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리하자면, 박근혜는 '70스타일', 문재인은 '80스타일'인 반면 안철수는 '90스타일'인 셈이다.
'90스타일'로서의 안철수는 '70스타일'의 박근혜와 '80스타일'의 문재인과 확연히 다르다. 70스타일이 유신독재로 철권통치를 밀어붙이던 스타일이라면 80스타일은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로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스타일이다. 이는 '군복'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박근혜와 문재인이 여전히 상호배제적인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하지만 90스타일은 여기서 비껴나 있다. 70년대와 80년대가 한국 현대사에서 대단히 독보적인 시기였던 데에 비하면 90년대는 한국사회가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YS의 문민정부와 DJ의 정권교체는 어쩌면 그런 시대적 흐름의 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90년대는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더 이상 이전의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들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났다. 1992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가요의 판도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체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대형 연예 기획사들이 등장해 체계적으로 연예인을 길러낸 것도 이 시기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최고의 연예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 것이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된 1995년이다. 이런 토대 속에서 이른바 팬덤문화가 새롭게 자리잡았다.
서태지가 등장했던 1992년 안방극장에서는 드라마 <질투>가 '트렌디 드라마'의 시대를 열었다. 이와 함께 등장한 X세대 혹은 N세대는 당시 이런 '트렌디'한 경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캠퍼스를 채웠다. 영화계에서는 <쉬리>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한류의 직접적인 물적 토대가 이 시기에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게 된 데에는 정보의 혁명도 큰 몫을 했다. 90년대에는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고 전통적인 PC통신이 웹 환경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던 시기였다. 90년대 초반에는 공중전화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삐삐와 시티폰을 거쳐 개인 휴대전화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데에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90스타일은 폭발적으로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냈으며 그것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조차도 혁신적으로 바꿔버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히 '문화적 빅뱅'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1997>처럼 지금 90년대 복고가 유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뿐더러, 그 문화적 잠재력이 7080시대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지속성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90스타일은 말하자면 지금 21세기 한국문화의 원형 내지는 일차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는 그런 90년대의 한가운데에서 한국형 벤처회사를 차려 성공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안철수의 정체성은 그 시절에 형성되었다. 따라서 안철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저변에 깔린 90스타일과,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를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
30대가 안철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이유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30대라고 한다(관련기사:
1997년 HOT vs 젝스키스, 2012년 문재인 vs 안철수). 지금 30대가 10대와 20대를 보냈던 90년대가 문화적 다양성이 폭발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60,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어르신들에게 박정희가 영웅이었다면, 지금의 30대에게는 안철수가 영웅이었다. 40대가 된 386세대와 90년대 '문화적 빅뱅'의 세례를 받은 지금의 30대가 박근혜-안철수 가상대결에서 안철수에게 가히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쉽게 이해가 된다.
80년대 민주화를 이끌었던 386세대가 거의 본능적으로 새누리당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면, 30대는 안철수를 자신들과 같이 좀 놀았던 사람, 그래서 말이 통하고 이야기가 되는 사람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런 정서적 일체감 혹은 동질감은 설령 정당이나 조직화된 힘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저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안철수가 비교적 안정된 지지층을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적 빅뱅의 세례를 받은 90스타일은 앞서 말했듯이 70,80년대의 민주/반민주라는 (혹은 자본/임노동의 계급모순이라는) 단선적인 사회적 대립구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냈다. 안철수가 계속해서 말해 왔던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는 언명은 90스타일의 이런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의 70스타일이나 기존 386의 80스타일로서는 안철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잣대로 안철수를 재단하는 것도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리고 안철수가 경제민주화나 복지를 말하면서도 '성장동력'의 결합을 강조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군복'에서 지적했듯이 안철수는 '사악하지 않은 성장'의 아이콘이며 그 자체로 통합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다. 이 또한 70, 80스타일로 포섭되지 않는 90스타일의 중요한 특징이다. 예컨대 박근혜가 말하는 복지는 어딘지 모르게 포퓰리즘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만약 문재인이 성장동력을 강조한다면 전통적인 지지자들은 일차적인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90스타일의 안철수 패러다임은 경제민주화와 성장동력을 큰 거부감 없이 결합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문재인이 흡수하지 못하는 중간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안철수가 기자회견에서 성장동력의 결합을 강조한 것은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상당히 감각적인 전략적 포지셔닝으로 보인다.
안철수의 공식 출마선언으로 야권은 이제 후보단일화라는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인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당연히 자신으로 단일화되기를 원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90스타일로서의 안철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문재인의 화법에는 그 주어가 '나'가 아니라 '박근혜'인 경우가 많다. 이는 반독재 투쟁을 하던 80년대식 화법이다. 상대를 배제해야 내가 살아남던 제로섬 게임의 시대, 특히 절대악이 군림하던 시대에는 이런 화법이 적절할 수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런 배제의 패러다임보다 통합의 패러다임이 더욱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의 시대정신이 '박근혜 타도'는 아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안철수는 19일 출마선언문에서 박근혜-문재인에게 3자 회동을 제안하며 선의의 정책경쟁과 결과승복을 확약할 것을 주문했다. 만약 문재인이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을 때 이와 비슷한 제안(박근혜와의 양자회담이라도)을 했더라면 그의 80스타일 이미지를 벗어나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안철수는 아마 앞으로도 자신만의 '90스타일'로 정국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70, 80스타일로 점철된 기존의 정치권만 보아왔던 국민들에게는 90스타일의 안철수가 참신하고 새롭게 비칠 것이다. 물론 그런 이미지가 콘텐츠와 세력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안철수 본인이 해결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기존의 콘텐츠나 세력, 혹은 경험이 얼마나 유효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MB의 사람들은 대부분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를 일삼았다. 친인척과 측근들은 지금 줄줄이 감옥에 가 있다. 이런 잣대로 콘텐츠와 세력과 경험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준과 잣대다.
안철수에 대한 고강도 검증 예고... 5년 전 MB 제대로 검증했나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공식 출마선언한 안철수에 대한 고강도 검증을 예고했다. 물론 대선후보의 검증은 철저해야 하고 그 강도는 높을수록 좋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에서 얼마나 대선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했는지도 한번 '검증'해 봐야 한다. 5년 전 대선만 돌아보더라도 우리의 검증 자체에 허점이 많았다. MB자신이 BBK를 설립했다는 동영상이 나왔음에도 검찰과 언론은 별 문제없이 넘어갔다
. 설령 검찰의 주장대로 그 말이 실언이었다 하더라도, MB는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투자자를 모아 결과적으로 주가조작의 피해를 입게 한 셈이므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잘 아는 젊은 사업가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그런 사람의 도덕성과 능력을 우리는 5년 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검증했던가.
지난 5년 내내 우리는 그 후과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자동차회사 노동자나 미국의 축산업자를 더 챙겼고 재벌만을 위한 정책으로 서민경제는 무너졌다. 누구보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사욕을 탐했고 청와대 핵심조직을 동원해 민간인을 사찰했으며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증거까지 인멸했다. 임기 내내 무려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4대강 사업에 들어갔지만 과연 이 사업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오히려 재앙은 아닌지도 의문이거니와, 정말로 그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해 후보를 검증하기에 앞서, 지금 우리의 후보검증시스템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8일 MBC의 <백분토론>은 그런 우려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날 패널로 나온 고성국 시사평론가는 박근혜의 역사관을 따지는 것만큼이나 문재인과 안철수의 역사관도 따져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뜻 보기엔 무척 공정해 보이는 발언이지만, 지금 우리가 박근혜의 역사관을 묻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보면 고성국의 발언은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근혜를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박근혜의 역사관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그가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역사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역사관을 더욱 혹독하게 검증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고성국의 발언은 마치 일본이 우리더러 과거사를 되돌아보라고 윽박지르는 격이다. 한일관계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이런 주장이 공평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렇듯 형식적인 형평성이 오히려 실제적인 형평성을 위협하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후보검증을 할 수가 없다.
문재인이 80스타일을 벗어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불합리한 관행들부터 타파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치인은 다름 아닌 노무현이었다. 한국 정치인들 중에서 이른바 '조중동'과 정면으로 맞붙은 정치인은 그가 거의 유일무이하다. '노무현의 남자'라는 정체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문재인에게는 노무현을 넘어서는 일이 물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항거했던 노무현의 정신마저 포기하려 한다면 이는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다.
문재인이 국민에게 내보일 수 있는, 다른 후보로서는 대체불가능한 정체성은 오히려 '진짜 노무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문재인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자 강점이다. 아마도 안철수는 이 점에 있어서 문재인을 따라가기 힘들 것이다. 지금 문재인의 모습은 '탈노무현'의 강박관념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80스타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빨리 야권단일화? 3자구도가 더 이롭다 안철수의 출마선언으로 한동안 대선국면은 박근혜라는 여당 원톱과 문재인-안철수라는 야권 투톱의 대결국면으로 진행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하루빨리 야권후보단일화를 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각 선거캠프의 이해타산이 깔린 희망일 뿐이다. 3자대결국면에서의 후보 간 경쟁이 2자대결국면에서보다 훨씬 더 치열할 것이고 또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 국민의 입장에서는 당분간 3자구도로 가는 것이 훨씬 이롭다.
물론 여기에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얼마나 상호신뢰를 구축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인가라는 대단히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다. 후보단일화는 그런 과정이 누적된 최종적인 결과로 도출되어야 서로가 승복할 수 있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벌써부터 후보단일화에만 매달리는 것은 야권으로서는 오히려 굴러 온 복덩이를 내동댕이치는 어리석은 짓이다. 민주당이든 안철수 캠프든 문재인-안철수가 사실상의 러닝메이트로 선거운동을 펼치는 것이 서로에게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와 함께 문.안.드림에 맞서는 박근혜가 어떻게 반전의 실마리를 잡을 것인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과거사 문제가 터지면서 박근혜의 지지율은 양자대결에서 문재인에게 밀리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사실 과거사 문제는 박근혜가 주도적으로 털고 나가면 오히려 박근혜에게 엄청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사안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획기적인 대북정책이나 노무현의 수도이전 같은 핵폭탄급 공약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초반의 여론이 전국적으로 뒤섞이는 추석연휴가 코앞이라, 그 전에 박근혜가 어떤 반전의 카드를 던질지, 그리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추석 귀향객들 손에 또 어떤 이야깃거리를 쥐어주려고 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