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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산 비 안개 속을 걷다.
▲ 승학산 비 안개 속을 걷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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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나보다. 여름내 뜨겁게 달구었던 대지를 잦은 비로 식히고 식히며 오나보다. 때로는 천둥번개를 동반하고 비를 뿌리고 때로는 태풍을 몰고 오며 한바탕 몸살을 앓으며 오나보다. 가을, 그 청신한 얼굴보기가 그리 쉽지 않은가보다. 깊은 가을을 선사하기 위해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울고 비가 오며 그렇게 자박자박 한 걸음씩 애쓴 발걸음으로 오나보다.

사전답사 산행 땐 그토록 화창하고 맑았던 날이 기대하고 기다리던 승학산 9월 정기산행엔 우중산행이 되었다. 지난해 이맘때에도 승학산을 만나러 가려했다가 비 소식에 취소했던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 가을 역시 승학산 등산 날에 마침 비가 내린다.

승학산 가는 길 비가 와도 좋아라. 승학산 우중산행.
▲ 승학산 가는 길 비가 와도 좋아라. 승학산 우중산행.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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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엔 비 소식에 정기산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모두들 아쉬워했었다. 그 아쉬움 때문에 그 뒤에 창원 천주산 등산 때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우중산행을 감행했었다. 그날 우중산행에서 맑은 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에 모두들에게 인상적인 날로 마음에 새겨졌다. 해서 앞으로는 비가와도 웬만하면 무조건 산행을 하기로 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정기산행을 신청한 사람들은 거의 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 우중산행을 기대하며 우리는 목적지로 향했다.

교회에서 모여 출발, 승합차 3대에 28명의 사람들이 나눠 타고 부산 서구 꽃마을로 향했다. 오늘 산행은 하단 동아대학교 캠퍼스 기점 반대편인 구덕문화공원이 있는 서구 꽃마을을 등산기점으로 삼고 승학산에 올랐다가 다시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사전 답사 때와 다른 길로 가 본다니 새로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동아대캠퍼스 기점 등산로는 꽤 가파르고 버거운 등정길이지만 꽃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별로 힘들지 않고 호젓이 걸을 수 있는 코스라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좋을 것 같다.

승학산 우중산행 승학산 정상에서...
▲ 승학산 우중산행 승학산 정상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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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화창한 날에도 흐리고 비 오는 날에도 산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다. 비가와도 좋고 맑아도 좋다. 산은 언제나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으로 늘 반긴다. 홀로, 혹은 둘이서 산행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여럿이서 하는 산행도 즐겁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이 몰려다니듯 산을 오르는 것을 보면 저렇게 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산행을 할까 생각했었다. 막상 남편과 둘이서 다니다가 등산선교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다보니 또 다른 좋은 점도 많았다.

등산선교회원이 된 지 어느덧 일 년이 됐다. 즐겁고 행복한 동행 속에서 산을 만났고 성도들과 기꺼운 동행과 연합 속에서 세월 가는 것도 잊었다. 함께하며 어색한 동행이 행복한 동행이 되었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공감과 유대감을 느꼈다.

승학산 우리들의 행복한 우중산행.
▲ 승학산 우리들의 행복한 우중산행.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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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 역시 늘 고정적으로 동행하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다시 보는 얼굴 새로운 얼굴들이 함께 했다. 꽃마을 구덕문화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서 분수대 앞에서 사진도 찍고 준비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오는 듯 마는 듯 내리는 비가 숲을 적셔놓았고 길은 젖어 미끄러웠다. 비안개마저 자욱했다. 하지만 흐리고 비안개에 싸인 빗길에도 형형색색의 비옷 입은 회원들 모습에 길도 밝았다.

길은 처음부터 조금 비탈진 언덕길이었지만 곧 임도가 나타났고 기상청 앞 삼거리(60초소 앞)에서 이어지는 자갈길은 승학산 쪽으로 향했다. 정자가 있는 쉼터에서 승학산으로 접어들었다. 꽤 가파른 나무계단 길로 한동안 이어지다가 억새평원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걸었다. 좁은 흙길은 비에 젖어 있었고 비와 안개에 싸인 억새평원은 호젓하고 아련했다. 맑은 날엔 볼 수 없는 또 다른 운치였다. 아직 억새꽃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이따금 피어난 억새꽃들이 안개에 휩싸여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았다. 젖은 능선 길 사이사이마다 야생화들이 피어 비를 머금고 있었다.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했고 안개는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밀려왔다.

승학산 정상에서...
▲ 승학산 정상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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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안개 속을 걸어 낙동강 하구의 멋진 풍광과 억새로 유명한 사하구의 명소 승학산(496m)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배낭을 내려놓고 길게 호흡하며 산길 오른 수고 끝에 쉼을 즐겼다. 여기서도 간식을 내놓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화기애애한 시간.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의 즐거움이 이런 것이었다. 오가는 대화 속에 오가는 인정어린 손길과 미소 속에 마음 거리가 좁아지고 연합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 자연의 품에서 마음껏 쉼을 얻어 또 다시 일상으로 힘 있게 걸어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얻는 것.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이제 비는 거의 그치고 안개만 자욱했다. 오늘 점심은 전에 없이 식당에서 씨락국밥을 먹었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산에 올라 긴 호흡하며 쉼을 얻은 우리는 우중에도 불구하고 얼굴들이 모두 환했다. 이 비 그치고 난 뒤 가을은 더 그윽해지겠다. 이래저래 즐거운 우중산행이었다.

승학산 우중산행 안개속을 걷다.
▲ 승학산 우중산행 안개속을 걷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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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랴
......
한낮에도 밤하늘처럼 별들로 가득찬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미인의 눈길에 돌아서서 그 아름다운
발걸음을 지켜 볼 시간이 없다면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가련한 인생이 아니라 근심으로 가득차
멈춰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 '멈춰서서 바라 볼 수 없다면',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

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1.일시: 2012. 9. 15(토) 흐리고 비
2. 산행: 부산 포도원교회등산선교회 9월 정기산행 28명
3. 산행기점: 부산 서구 꽃마을
4. 산행시간: 3시간 50분
5. 진행: 꽃마을 구덕문화 공원(10:15)-삼거리(공터 10:55)-억새평원 입구 정자(11:15)
-전망대(11:30)-승학산정상(11:55)-히신(12:20)-억새평원입구 정자(12:50)
_삼거리(공터 1:15)-목석원예관(1:40)-민속생활관(1:55)-구덕문화공원 주차장(2:10)



#승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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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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