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이기는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누구랑 경쟁이 되어서 공부해 본 적이 없고, 라이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누구 누구 잘한다." 그냥 이렇게 끝난다.
특히 체육을 할 때, "꼭 이겨야지, 우리 편이 잘 해야지"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운동회 할 때도,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서 대결하는 구조가 늘 껄끄럽고, 그냥 축제처럼 너도 나도 즐겁고 신나게 놀다가 끝나는 파티를 항상 꿈꾸고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주변 학교 교사들도 모여서 체육대회를 하는데, 여자는 발야구나 티볼(투수가 없고 봉에 공을 놓고 치는 야구게임)을 하고 남자들은 배구를 한다. 그날은 공이 제일 안 오는 곳에서 수비수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가 경기 끝나고 오는데, "이런 거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하면서 투덜대는 몇 명 선생님들과 음료수 몇 잔 마시는 게 전부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불타는 승부욕으로 가득 찬 우리 반 현빈이 같이 "너 때문에 우리 편이 졌어" "공을 봤으면 끝까지 달려가서 잡아야지, 왜 그렇게 서 있어?" 하면서 운동 못 하는 아이에게 핀잔을 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냥 즐겨!" "목숨 걸지 마"라고 하면서 응징한다.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옥동! 옥동! 옥동! 파이팅!" 운동장에 깔린 잔디가 들썩들썩해 질 정도로 으르렁 대며 티볼 연습에 열을 올리던 우리 학교 5, 6학년 아이들이 9월 21일 속초가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날 있을 학교 스포츠클럽 전국대회를 치르기 위해 전날 가서 짐을 풀고 잠을 잔 후 22일 오전에 영랑초등학교랑 경기를 할 예정이다.
전투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이런 걸까. "잘 다녀와" 하면서 담백하게 건넨 나의 인사에 "꼭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우승 트럭피를 가슴에 안아드리겠습니다" 씩씩하고 장엄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들은 먼 길을 떠나기 전 교감선생님께 인사를 하기 위해 한 줄로 늘어섰다.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면서 모자까지 벗고 배꼽 인사를 하는 아이들. 또 "싸워라, 이겨라, 쫄지 마라" 이런 말씀하시겠지. 아니면 "학교의 명예를 높여라" "옥동인임을 잊지 말고 행동하라" 이런 거.
하지만 교감선생님의 묵직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달랐다.
"너무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어라, 신선하다.
"재미있게 즐겁게 놀다 오세요. 여러분은 앞으로 평생을 스포츠와 함께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하세요." 불타는 아이들에게 찬물을 쏴악 끼얹어 중화를 시키신다. "아하~" 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지는 게 이기는 거야" 하면서 장난스럽게 공을 치고 히쭉거리며 뛰는 우리 반 민주를 보는 듯했다. 역설적이지만 참다운 진리가 담겨 있다. 진정한 스포츠 정신.
토요일 저녁, 밥을 두 공기 먹고 두둑한 배를 감싸며 피아노를 쳤다. 악보 위로 날라 다니는 8분 음표,16분 음표를 따라 손가락도 열심히 비상한다. 그 손가락이 어느덧 핸드폰의 카카오톡에서 6학년 최중일 선생님 주소를 꾹 누르고 있다.
"선생님, 경기 어떻게 되었어요? 이겼어요?" 너무 궁금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 엉덩이가 들썩들썩 20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저질렀다.
다행히 전송이 되지 않았다. 서버 연결이 불안정하다는 메시지가 순간 돌아버린 나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음, 다행이다. 너무 다행이다. 고맙다. 전송이 어려운 거. 월요일 승패에는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 우아하게 물어봐야지.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까지만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