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7월 24일)만주지방의 여름 날씨를 단원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양 태양의 작렬한 햇빛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신흥무관학교의 옛터 3군데를 보기로 하다. 우리가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온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근대민족국가가 성립되고 이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최후의 물리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적 군대가 필요했다. 근대 민족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국민과 영토는 있으나 주권이 일제에 의해 침탈당해서 유린당하고 노예상태로 전락했다. 이 주권을 찾기 위해서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지게 됐다.
맨 먼저 간 곳이 전성기의 본부 역할을 한 유하현의 고산자 터였다(1919.5~1920.7). 3.1운동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찾는 청년들이 부쩍 늘어 천혜의 요새이기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한 합니하는 본부로서 불충분했다. 이에 한국인이 많이 살고 교통이 편리한 고산자 부근으로 본부를 이전하고 합니하는 쾌대무자 무관학교와 더불어 분교로 삼아 독립의 열망을 들떠 있던 젊은이들을 전사로 키워냈다고 한다.
실제 고산자에 가보니 그곳은 옥수수 밭으로 되어 있어서 땅주인의 허락을 겨우 받아내서 옛터를 겨우 답사할 수 있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고가 아니라 산천도 인걸도 간데없고 오직 당시의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만을 오늘에 계승할 책무를 결의하는 자리였다.
1911년 6월 10일(음력 5월 14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 마을의 한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감격적인 신흥강습소의 개교식이 있었다. 현지인인 중국인과 일제의 의혹을 피하기 위해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이 추가가(1911.6~1912)에 가려고 하니 중국 공안이 저지해 못가게 했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한참 이야기하고 오더니 그 곳에는 공군기지와 미사일기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불편한 한중 관계에 기인한 것 같았다. 안타까웠다.
다음은 천혜의 요새 지역인 '합니하'인데 이 곳은 아예 갈 시도도 하지 않고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이 합니하(1912~1920는) 학교 주위를 거의 360도 휘돌아 흘러 마치 해자(垓字)처럼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학교 다닐 때 감동있게 읽었던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도 이 무관학교를 찾았던 젊은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학생과 관계자들은 일본제국주의가 중국과 전쟁이나 여타 제국주의 세력들과 전쟁을 하는 틈을 타서 민족해방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고 노력했단다. 그러던 중 혈기왕성한 이 학교 졸업생들이 다른 분출구가 없기에 현지 주민들과 마찰이나 의도치 않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무장 독립 투쟁을 더 강고히 준비하기 위해서 통화현 쏘배차(백두산의 서편)에 군사기지인 백서농장을 만들었다.
백서농장은 정예 군사를 기르기 위해서 매우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자신들의 먹을거리 등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언제나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렸단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 앞서서 운동하는 자는 물고기에 비유하고 민중은 물에 비유하는데 두 관계는 비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는 변증법적 관계이다. 따라서 한반도를 벗어난 중국의 만주지방에서 10년 가까이 신흥 무관 학교을 통해서 무장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와 있는 많은 한민족을 토대로 가능했다. 이주한 동포를 묶어세우는 조직인 경학사-부민단-한족회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신흥무관학교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가야할 곳을 외부적 환경 때문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방학진 사무국장님이 이도백하를 가는 도중 우리 버스(버스가 1호차 중장년층 단원 중심으로, 2호차는 어른신들과 중고대학생들 중심으로 탔다) 뒷좌석에서 여흥의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뱃속이 편치 않아서 동참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 좋아서 같이 앞좌석 내자리에서 가락에 맞추어서 흥을 돋구고 있는데 방 국장님이 노래 한가락하라고 하여 나갔다. 대학 다닐 때 축제 마지막 저녁 때인가 전대 운동장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짝을 바꾸어 돌아가면서 그 특유의 춤을 추던 농민가도 흘러나왔다. 그래서 나도 당시에 언제인가 운동장 한켠의 뒷풀이 자리에서 공대생이 멋들어지게 불러서 감동을 받았던 '불나비'를 부르고 싶었다. 그 노래를 부르고 싶다 하니 한 단원이 가사와 곡을 완전히 소화하여 나도 엉겁결에 재미있게 따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