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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먹기 좋은 날... 팥 수제비 한 그릇 ^^*
추억...을 먹기 좋은 날...팥 수제비 한 그릇 ^^* ⓒ 이명화

대개 옛 추억은 특정한 장소와 노래, 사람들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먹는 음식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힘이 없고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맥을 못 출 때, 몸과 마음이 허전하고 허기질 때, 이따금 '젠제이' 생각을 한다. 흐리고 비 오는 날에 혹은 책을 읽거나 어떤 일에 골몰해 있다가 심신이 지쳤을 때 나는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젠제이(팥 수제비)가 먹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그 옛날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줬던 팥 수제비 생각이 간절해진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집엔 밀가루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설탕을 사도 큰 부대자루로 샀고 밀가루를 사도 큰 부대로 샀다. 식구가 많아서였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사업을 하실 때 일하는 사람들 밥을 해주던 습관 때문인지 엄마 손은 언제나 넉넉하고 후했다. 음식을 해도 많이 해서 이웃 사람들이 골목길을 지나다가 맛난 음식 냄새 맡고 들어와도 수저만 보태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했고, 비오고 흐린 날엔 엄마는 부침개를 만들어주거나 커다란 찜 솥에 찐빵을 쪄 주거나 혹은 팥 수제비를 만들어 우리 입을 즐겁게 했다.

문득 먹고 싶을 때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팥이나 돔부를 씻어 물에 불려 놓았다가 솥에 넣어 푹 끓인다. 그 다음에 삶은 팥과 팥물이 식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팥을 믹스기에 갈고 팥물과 함께 솥에 넣고 물을 적당량 부어 묽게 만들어 가스 불 위에서 끓인다. 집 안에 팔팔 끓는 달작지근한 팥물냄새가 번지는 것이 참 좋다.

팥물이 끓는 동안 밀가루 반죽을 되게 한 다음 얇고 동글동글하게 펴서 끓는 팥물에 뚝뚝 떼 넣고 국자로 가끔 저어준다. 다 끓였다 싶을 때 소금과 설탕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다. 집안 가득 달작지근하고 기분 좋은 팥 수제비 냄새가 번진다. 고향의 냄새 추억의 냄새다. 기분 좋은 냄새를 맡으며 나는 내가 막 끓인 팥 수제비 한 그릇을 식탁에 앉아 먹는다.

특별한 영양이 풍부한 것도 아니건만 우울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맥 빠져 있던 몸과 마음도 일순간 회복이 되는 것 같다. 허전하고 허기진 마음과 몸이 따뜻하고 조금은 단 팥 수제비가 뱃속에 들어가면서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다행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팥 수제비를 가끔 별미로 만드는 것을 남편도 좋아한다. 저녁에 퇴근해 와서 달짝지근한 팥 수제비 냄새가 나면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함께 별미로 먹는다.

내 입맛에 길들여진 음식이라 행여 손님접대 하거나 남 앞에 내놓거나 하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도 아니다. 촌스럽고 별 특징이 없는 옛 추억의 음식일 뿐이다. 고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호미>에도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 '강된장과 맞는 호박잎쌈' 얘기가 나오는데 눈앞에서 강된장을 보글보글 끓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막 쪄낸 따뜻한 호박잎으로 강된장에 싸서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수한 냄새가 번지는 듯 맛깔스럽게 글로 빚었다. 작가가 어릴 적에 먹었던 음식은 반세기도 더 넘은 고향의 소박한 밥상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람이 태어난 고장의 문화와 그 집안만의 독특한 음식 맛이 있고 음식 이야기가 있나보다. 그 집의 음식은 식구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신호다. 온종일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하루의 생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고 환대하는 자리이다. 음식은 몸과 몸을 가깝게, 마음과 마음 간격을 가깝게 해 주고 맘 덥혀준다.

나는 요즘 가끔 추억의 팥 수제비를 먹는다. 왠지 힘없고 맥 빠지는 날, 우울한 날, 흐리고 비오는 날에는 추억의 맛, 어릴 적에 엄마가 만들어주던 추억을 먹는다. 팥 수제비를 먹는다. 행복한 추억 속의 음식 맛은 지금 해 먹어도 행복한 기억과 함께 훈훈하고 따뜻한 풍경을 함께 추억하며 먹기에 행복한 것 같다. 좁은 집 안에 팥 수제비 냄새가 달작지근하게 번진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팥수제비#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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