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관여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 일(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고 참여정부의 개혁역량을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우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사과 드리겠습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흔들리고 있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문 후보는 27일 1박2일 일정의 광주·전남 방문 첫날 호남의 민심 앞에 고개를 숙였다. 광주·전남 방문에 나서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 분당, 대북송금 특검 수용 등 호남의 민심 이탈을 가져온 사안들에 대해 '과오'라고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문 후보는 이날 오후 7시 광주 김대중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광주·전남 핵심당직자와 도시락 간담회에서 "참여정부가 호남에 드린 서운함을 잘 알고 있다"며 "참여정부는 지나갔지만 이제 제가 참여정부를 계승해야할 입장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제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강도 높았던 문재인의 사과이날 문 후보의 메시지는 그동안 대선 과정에서 나온 사과 중 구체적이면서도 강도가 높았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금까지 문 후보의 사과 발언 중 가장 진심이 담긴 이야기였던 것 같다"며 "호남이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을 문 후보가 대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호남을 찾아 가장 강도 높은 사과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좀처럼 민주당으로 회귀하지 않고 있는 민심 때문이다. '민주당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호남에서 문 후보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가위 연휴가 지나고서는 역전의 징후가 잡혀야 한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남 민심이 '아직은 안철수'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후보단일화 여론조사(한국갤럽, 24일부터 26일까지) 결과 문 후보는 호남에서 지지율 42%를 기록했다. 안 후보는 51%였다.
이보다 조금 앞선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리얼미터가 실시한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조사결과도 마찬가지. 광주·전남지역 유권자들은 야권단일후보로 안 후보(55.8%)가 문 후보(31.0%)보다 더 적합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전국적인 야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앞서는 문 후보에겐 다소 당혹스런 결과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의 55% 지지를 받아 안 후보(40%)를 크게 앞섰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오차범위 안의 초접전이긴 했지만 전국적으로는 야권단일후보 적합도에서 문 후보(39.6%)가 안 후보(38.5%)에 앞섰다.
정치권 안팎에선 호남의 여론조사 결과는 노무현 정부의 '호남 홀대'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후보도 이 같은 호남의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신을 "호남의 아들"이라고 선언했다.
광주시당위원장인 장병완 의원이 이날 간담회에서 "(문 후보가) 호남의 아들이 돼서 호남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낙후된 지역 발전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인재 등용에 있어서도 가장 우선 배려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시겠습니까"라고 운을 떼자 문 후보는 "광주·전남 경선에서 저를 민주당의 후보로 선택한 순간부터 저는 호남의 아들이 됐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유독 호남에서만 약세... 참여정부 홀대 때문?
문 후보는 또 "반드시 정권교체 이루어서 호남의 한을 풀고 참여정부가 호남에 진 빚을 몇 배로 갚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후보의 호남 지지율 정체에 대해 참여정부의 '호남 홀대'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지적이다. 문 후보는 지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광주전남 경선에서 과반에 가까운 48.46%를 얻으며 압도적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되레 호남 특유의 '전략적 선택'이 문 후보에게 가는 지지를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즉 호남지역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중 어느 후보가 중간층 유권자와 다른 지역 유권자를 더 흡입할 수 있는지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안 후보에게 약간 더 기울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주 지역의 한 핵심당원은 "문 후보가 이 지역에서 (안 후보에게) 뒤지는 것은 호남 사람들이 '박근혜를 이길 사람'이 누구냐를 보기 때문"이라며 "문 후보가 친노를 넘어서는 확장력과 본선 경쟁력을 보여준다면 호남이 민주당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이틀 동안이나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서 1박2일에 걸친 일정을 이어가는 것도 더 이상 안 후보에 대한 쏠림 현상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호남 민심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후보단일화 국면에서 패할 확률이 높다. 문 후보가 여론의 반전 흐름을 만들지 못하면 추석 이후 전략적 선택지로서 안철수의 입지가 더 강화될 수 있다.
문 후보도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그는 "저에게는 승리의 확신이 있다, 제가 민주당 후보가 되고나서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지 않았느냐"며 "(박근혜 후보와) 1:1 가상대결에서도 제가 앞서고 있고 안철수 후보와도 당당히 경쟁해 나가면 결국 뛰어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부터 달라지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그 갈망을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은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선대위에도 김대중 정부 인사 전진 배치... '진심' 받아줄까문 후보는 이날 광주를 찾기 전 발표한 선대위 인사에서도 호남과 김대중 정부 인물들을 전진배치했다.
선대위 내 민주캠프의 본부장으로 호남 출신의 이용섭·우윤근·강기정 의원이 기용됐다. 정책을 만들어 낼 '싱크 탱크'인 미래캠프에도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장은 호남 출신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맡았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끌었던 임동원·정세현·이재정·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각각 고문 및 위원으로 영입했다.
문 후보는 호남에서 강행군을 벌였다. 간담회를 마친 후 밤 늦게 나주를 방문해 태풍 볼라벤 피해를 입은 농민들을 위로하는 '힐링 행보'를 소화했다. 광주·전남 방문 이틀 째인 2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자택을 방문하고 5.18 국립묘지를 참배한다. 또 광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말바우 시장을 찾아 추석인사를 할 예정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김대중 정부 인사들의 선대위 기용, 또 호남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추석 연휴 동안 호남지역의 밥상머리 여론전의 주제가 될 것"이라며 "안철수 후보의 '다운 계약서' 문제와 맞물려 호남 지역 민심에 요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심'을 담은 문 후보의 '구애'를 호남은 받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