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숙(가명·66)씨의 시간은 2011년 2월 17일에 멈춰있다. 600여 일 전 부산저축은행은 영업정지를 당했다. 처음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했을 때 민씨는 영업정지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도 그는 왜 은행이 자신의 돈을 주지 않는지 모른다.
은행이 문 닫기 두어달 전 은행직원은 그에게 후순위 채권이란 걸 권유했다. 스스로를 '까막눈'이라고 말하는 그는 은행 직원의 말이 고마웠다. 자신같이 못 배운 노인에게 이렇게 좋은 상품을 권해주는 은행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이자를 많이 주는 좋은 상품"에 가입했다.
그렇게 그와 그의 남편이 평생 동안 안 쓰고 안 먹고 모은 돈 1억 원을 은행에 맡겼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남편은 타이어 공장에서 젊은 시절을 쏟아 부었다. 몸이 아프면 죽을 먹어가며 일했다.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와 19살 때 사고로 몸을 다쳐 돈벌이를 못하는 아들을 위해서 두 부부는 죽어라 일을 했다. 그래도 가난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도 부부는 산동네 무허가 주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이 문 닫은 이후로도 그는 간판만 남은 동구 초량동의 부산저축은행을 매일같이 찾는다.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껍데기뿐인 은행 건물 앞에 선 지도 500일이 넘었다. 추석을 사흘 앞둔 27일에도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은행 건물을 지켰다.
주야 돌아가면서 텅 빈 은행건물 지킨지 1년 6개월
휑하게 빈 은행 건물로 매일같이 7~80여 명의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텅 빈 마음을 채우러 찾아온다. 남들은 명절 준비에 바쁘다는데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피해자들은 야간에도 돌아가며 은행에서 밤을 지새운다. 사무실 바닥의 냉기를 막기 위에 깐 스티로폼과 그 위에 덮은 전기장판이 이들의 잠자리다. 지금은 견딜만 하지만 다시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버텨야할지 걱정이다.
그래도 추위는 참아낼 만하다. 추위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한창 자신들을 찾던 정치인과 언론은 이제 더 이상 이들의 일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회에서도, 검찰에서도, 법원에서도 이들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만나고 싶은 '높은 사람' 대신에 경비와 경찰이 이들을 상대한다. 그는 양팔에 시퍼렇게 멍든 팔을 기자에게 내보였다. 며칠전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만나겠다고 했다가 경찰에 끌려나오며 생긴 멍자국이다.
선거철만 되면 찾아와 두 손 꼬옥 잡아주던 국회의원들은 이젠 두 팔에 멍이 들어도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됐다. 서러워서 길바닥에 앉아 펑펑 울었다. 무슨 죄가 그렇게 많아서 손자뻘인 경찰들과 드잡이를 하고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져야 하는지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에 돈을 맡긴 죄 밖에 없는데...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금융당국의 수수방관이 키운 저축은행 부실
하루에 벌면 2~3만 원을 번다는 구포시장 채소 노점상 아주머니도, 평생 부두에서 하역일을 하며 번 돈을 맡긴 남씨 할아버지의 사정도 비슷하다. 민씨 할머니 부부가 평생 모은 1억 원, 노점상 아주머니가 하루하루 벌어 모은 3500만 원을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은 제 집 곳간 쌀 퍼 쓰듯 썼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은 9조 원에 이르는 금융비리로 항소심에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회장뿐만 아니다. 스스로에게 362억 원을 대출해준 은행 대표, 차명으로 관리하던 비자금을 다시 빼돌린 영업이사도 있었다. 곳곳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줄줄 세고 있는데도 감시를 해야 할 정부와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2008년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의 불법대출을 적발하고 이를 금융감독원에 통보했을 때도 금감원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객들이 은행에 맡긴 돈 200여억 원이 임직원 명의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에 부당하게 지급됐지만 감시와 감독은 허술하기만 했다.
지난해 10월 27일에야 대법원은 박연호 회장 등이 불법대출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인정된다며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미리 정부가 손을 썼다면 은행의 부실은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2009년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살펴보면 당시 검찰은 "(경영진이) 자신들의 돈이라면 이런 주먹구구식으로 투자사업을 하였겠느냐"며 부산저축은행의 방만한 경영을 질책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 금융당국은 법까지 뜯어고쳐가며 부산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워갔다. 지난해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에서는 2008년 금융위원회가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부산저축은행이 대전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금융관계법상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개정전 법 시행령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다른 금융기관을 인수 할 수 없었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2004년 증권거래법과 외감법을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어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후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대전저축은행 출자현황을 살펴보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455억 원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결국 이것이 부산저축은행의 몰락에 결정적 영향을 제공했다.
"정부의 관리부실 피해를 서민에게 전가"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자인한 저축은행의 부실을 예금자들이 떠 안아야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되던 저축은행 특별법도 원금의 55%만을 구제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이 법안마저도 정치권의 관심 부족으로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참다못한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490억 원의 국가배상신청을 제기했지만 이 역시도 난항이 예상된다. 서울고검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가배상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무부 배상심의위원회에서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국가를 상대로 정식 소송을 걸어야 한다. 노령의 피해자들이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한 정식 소송을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옥주 전국저축은행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명백한 관리 부실이 드러났음에도 피해를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강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설사 국가 배상 판결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70~80대가 많은 피해자들에게 소송은 너무 긴 시간이 된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권이 서민들을 위한 구제에 노력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