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린 것이 지난 4월입니다. 어느덧 7개월째 접어드는군요.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때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한여름 열대야 더위와 모기와 싸우는 날, 태풍 블라벤과 산바도 고스란히 길에서 맞는 날들이 이어졌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수시로 분향소를 침탈해 부수던 경찰과도 수없이 맞서야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2012년 추석을 맞이했습니다. 쌍용차 동지들이 그렇더라고요. 어린이날에 자녀가 셋이나 되는 고동민 동지에게 집에 다녀오라고 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고동민 동지는 다른 동지들에게 미안하다며 문화제가 끝날때까지 음향을 담당하며 끝내 버티고 있더군요. 문화제가 끝나고 시간이 되면 잠간 다녀오갰다고 말이지요.
그 뿐이 아닙니다. 김정욱 동지는 그 전에 자기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자기가 남아서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겠다고 자청을 하기도 하더군요. 문기주 지회장이나 김정우 지부장이라고 왜 집에 가서 가족의 얼굴을 보고 아내의 손길이 닿은 따스한 밥 한끼를 먹고 싶은 마음이 없겠어요. 하지만 다른 동지들을 집에 보내려고 무슨 날만 되면 지부장과 지회장이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고 있더군요.
늘 대한문 분향소를 지키던 박정만 동지는 이번 추석 전주 본가에 다니러 간다더니 추석 오후에 보니 벌써 대한문에 와 있지 뭡니까. 대한문에 남은 동지들이 쓸쓸할까봐 팔순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부친 전을 싸들고 부랴부랴 달려 온 것이지요.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오후 6시쯤 대한문 앞에 도착해봤더니 다른 날보다 더 흥겨운 모습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을거리를 나누며 즐거운 대화가 한참이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코끝이 찡해 오더군요.
정혜신 박사 부부, 청년 활동가들, 전태삼님, 추모연대 사람들이 달려와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지회장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더군요. 7시쯤 되자 공지영 작가가 참치김치찌개, 문배주, 김 등을 한보따리를 챙겨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공 작가는 아침에 대한문 앞에서 합동차례를 지낼때도 왔다 갔다고 하더라고요.
공 작가는 아침에 자기와 동행한 활동가 단 둘뿐일 것이라 생각하고 걱정을 하며 대한문을 찾았는데 와서 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더라고 소감을 전해주더군요. 오전에 갈비며 불고기가 있는 것을 보곤 저녁에는 참치 김치찌개를 준비해 가지고 달려 온 것이지요.
대한문 앞을 찾는 시민들의 마음은 어찌 그리 한결 같은 것일까요. 오랜만에 차례를 지내러 갔던 동지는 남아 있는 동지가 쓸쓸할까봐 서둘러 달려오고,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차례를 지내기위해 지방을 찾거나 가족과 함께 하느라 아무도 대한문읋 찾지 않을까봐 서둘러 대한문을 찾았으니 말입니다.시민들은 함께사는 길이 무언지 말이 아니라 몸으로 깨우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던 쌍용차 동지들이 뺏고 빼앗기는 '의자놀이'가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박한 밥상을 나누다가 이웃이 찾아오면 엉덩이를 조금씩 좁히고 수저를 한 벌 더 놓고 십시일반 밥을 덜어내어 함께 먹던 두레반 밥상문화,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 문화. 빼앗기가 아니라 나눠먹기를 실천하며 살던 우리의 두레 정신을 되새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함께 살자'던 외침은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닙니다. 아주 조금씩 이기심을 버리고 아주 조금 욕심을 버리면 함께 사는 일은 가능해 집니다.
대한문 앞을 찾는 시민들이나 추석날 기꺼운 마음으로 아침 저녁 음식을 해 나른 공지영 작가, 추모연대 활동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음료수 상자, 도너츠 상자, 치킨 상자를 살그머니 놓고는 가만히 돌아서 가는 시민들이 바로 '함께 살기'의 가능성을 보여 준 이웃입니다.
고맙습니다. 기꺼이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준 많은 동지 여러분. 당신들이 바로 우리의 선한 이웃이고 사회적 유전자를 나눈 형제, 자매입니다.
김치찌개와 김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에 휘영청 달이 밝았습니다. 대한문 분향소를 비추는 달이 유냔히 밝고 환해 보이는 것은 곁에 앉은 이들의 따뜻하고 환한 마음이 더해진 까닭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