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이맘때 영장실질심사가 기각되고 서울구치소로 들어가시던 날 교육감님께 편지를 썼던 중학교 교사입니다. 작년 구속 직후 편지를 쓸 때만 해도 이렇게 꼭 1년 뒤에 제가 이런 편지를 다시 쓰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이라 교육감의 직을 유지하고 계셨지요.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은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교육감직을 상실하고 또 다시 1년 전 그곳인 서울구치소로 들어가 계시는군요.
지난달 29일에는 학교를 중퇴한 한 고등학생이 강남의 소위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어린 학생들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미국처럼 총기소지의 자유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 같은 더 큰 비극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이 사건을 일으킨 학생은 우울증에 걸려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학생이라고 합니다. 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그가 썼다는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성공한다 해도 제겐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메모는 우리 청소년들의 절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교육, 경쟁과 서열의 논리로 학생들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이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죽음으로 스스로 뛰어들거나 다른 이들을 향해 분노의 공격을 해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장교사로 직접 겪은 '서울교육 2년', 참 고마웠습니다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교육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교육의 이런 현실에 절망과 자책감을 동시에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교육감님이 서울 교육을 이끌어 오셨던 지난 2년 동안 저는 우리 교육에 희망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을 고통의 나락에서 건져 올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슴 벅찬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친구보다 앞에 서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자신이 존중받는 것을 통해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한 학생인권조례,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라 협동과 토론을 통해 함께 배워나가도록 하는 수업혁신 지원, 아이들을 단지 지도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 주어 민주주의를 몸소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준 학생참여위원회, 국영수 편식에 시달려 지적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문예체 교육 강화 정책 등. 이는 교무실 액자에나 걸려있는 '전인교육'이라는 구호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학교현장에 현실화시킨 것들이었습니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해결에도 전력을 다해 애써주셨지요. 교사들이 떠안고 있는 행정 업무의 부담을 줄여 교사들이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고, 학교의 관료적이고 행정 중심적 문화를 없애기 위해 교원업무정상화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21세기에 걸맞은 민주적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육청부터 솔선수범하여 수십 년간 비대해진 조직과 사업을 과감하게 줄이고 학교의 자율성을 높여주고 예산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며, 무엇보다 청탁과 비리가 끼어들 여지를 없애 아이들 앞에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제대로 된 공교육의 모범을 만들기 위한 혁신학교 정책을 펴 우리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을 요구할 정도로 교육혁신을 위한 정책들이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육감님의 교육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지역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교육소외계층에 대해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새로운 예산 분배 기준을 만들며, 서울교육이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과 함께하는 교육적 시도를 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20년이 넘게 교직생활을 하면서 단지 머릿속에서만 꿈꿔 보았던 일들이지 그것이 현실에서 시도되고 가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 교육감님의 지난 2년이 현장교사로서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집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더 넓은 길... 길은 다시 시작됩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있고 난 후 몇몇 신문들에는 '혼란만 야기시킨 곽노현의 교육실험'이라는 논조의 기사들이 실리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기사를 쓰는 이들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성적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제 일상의 일이 되고 있고 경쟁의 논리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자기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해야만 하는 이 비극에서 벗어날 출구가 '곽노현 식'의 교육혁신 외에 어떤 것이 있는가 말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저는 교육감님이 그 교육혁신을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고 이렇게 중도에서 물러나게 된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서울의 1300여 개 학교에서 매일 생활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비극이 더욱 확대·강화되고 다시 되풀이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워지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가라는 것이 가장 큰 징계가 될 정도로 학교가 소중한 곳이 되며, 아이들 사이에 폭력과 충돌이 줄어드는 일들이 계속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행정이 아니라 수업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아이들과 상담하고 대화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교사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제 이런 소망이 어쩌면 현실에서 영원히 묻히고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 개혁을 중단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교육 혁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의 교육 혁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비록 이제 교육감님의 역할은 계속될 수 없게 되었지만 경쟁과 수월성의 논리로 강고해진 오랜 제도와 관행의 장벽에 맞서 아이들과 교육을 살리려 애썼던 교육감님의 노력은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준 것입니다.
수모와 치욕의 장소이긴 하지만 이제 그동안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좀 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길이 끝난 듯 보이지만 거기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되는 것을 믿고 밖에서 우리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더 넓은 길을 만들고자 애쓰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