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의 단어가 현재까지 이어지다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지는 유행어들은 대부분 시의적절하며 함축적이다. 한 개그맨이 만든 '안습'은 '안구에 습기가 찼다'는 것을 줄인 것이며, '쩌리짱'같이 '별볼일 없는 사람들의 대장'이라는 뜻을 함축한 단어도 있다. 이것은 주로 긴 단어나 문장을 줄임으로서 편의를 도모하기도 하지만, 그 뜻을 아는 사람들끼리의 은밀한 정서공유의 힘도 가진다. 그러나 때로는 반세기가 넘게 그 뜻이 유지되며 폭력성을 드러내는 단어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도 '좌빨(좌익 빨갱이의 준말)'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것의 의미는 매우 배타적이며, 내용은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많은 유행어들이 돌고 도는 요즘이지만 '좌빨'은 몇십년을 이어 내려온 무논리단어의 전형이다. 군사독재시절, 반대파 압박의 빌미를 삼기위해 만들어낸 단어가 현재까지도 마녀사냥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무논리의 폭력성'좌빨'은 반공시대의 산물로 현재의 다변화된 사회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번 '좌익빨갱이'로 찍히면 여지없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시대에나 어울리는 단어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을 때, 함축적 비난의 뜻이 담긴 저 말을 내뱉어 더 이상의 어떤 논리도 먹히지 않게 만드는 광경은 지금도 너무나 흔하다.
우려되는 것은, 시대상황을 겪은 사람들뿐 아니라 현대의 젊은이들조차 흔히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현대사 교육이 현저히 부족한 작금의 교육형태에 더하여, 인터넷상에서 원색적 언어로 상대방을 성토하는 것이 일상이 된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일부 고등교육의 수혜자들조차도 무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그저 함축된 의미의 한 단어로 상대를 정의해버리는 것이 상대를 무력화시키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이 무척 빠른 우리나라는 TV나 종이신문보다는 인터넷상의 기사들에 더욱 광범위한 의견개진이 일어난다. 익명의, 때론 실명이라 하더라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네티즌들의 설전은 각종 기사들에서 불꽃을 튀긴다. 그러나 합리적 의견은 때로는 무논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논리로 야만을 넘어서라애초에 그 어떤 논리도 없이 특정한 용도만을 위해 탄생된 단어는 무서운 파급력을 지닌다. '좌빨'같은 단어의 경우, 단순히 상대탄압의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쓰임새도 단순하거니와, 상대를 뭉뚱그려 비난하기에도 적합하다. '좌빨'과 더불어 많이 쓰이는 '수구꼴통'에 비교해 보면 전자는 이념에 기대어 있기에 더욱 무게를 가진다.
분단상황이 계속되며 이어지는 볼썽사나운 대립관계는 우리나라의 내부에서 더욱 심각한 양상이다. 의견이 다르면 그저 "너 좌빨이지?" 내뱉는 것이 논리의 끝이 된 야만의 작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야만에 맞서려면 더욱 더 논리가 중요하다. 그 야만적 단어의 희생양이 엄청났던 시대의 비극을 널리 알리고, '현실'을 가르치지 않고 '지식'만을 주입하는 우리네 교육에 대한 가열찬 토론, 그리고 논리의 개진을 두려워하는 일부 젊은 세대에 대한 포용이 필요하다. 그들도 그 교육의 희생양일 수 있으니 말이다.
야만에 야만으로 맞설 수는 없다. 지배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반대편 탄압의 수단으로 쓰이던, 구시대의 유물로 남아야 할 단어가 지금까지도 망령처럼 떠도는 것은 이 시대의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