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3일 민주통합당에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 후보자를 재추천해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반발하며 애초 추천안대로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최악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법률인 내곡동 사저 특검법을 위반하는 사태도 우려된다.
청와대는 이날 하금열 대통령 실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특별검사 후보자 재추천을 요구키로 했다고 최금락 홍보수석이 전했다. 최 수석은 "참석자들은 여야가 협의해서 특검을 추천하기로 합의해 놓고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특검을 추천한 것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최 홍보수석은 "이는 사람(특검 후보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합의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내곡동 사저 특검법이 통과되기에 앞서 여야가 구두로 특별검사 후보자 선정에 대해선 여야 협의과정을 거치기로 합의했는데, 이 합의가 무시됐다고 새누리당 반발하고 있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특검후보자를 추천하기 어렵다는 것.
최 홍보수석은 "여야가 합의한 대로만 이행해서 특검을 추천하면 당연히 받아들인다"며 "애초에 그렇게 약속한 것을 전제로 특검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특별검사 후보자로 김형태·이광범 변호사를 추천했고, 특검법에 따라 이 대통령은 5일까지 추천후보자 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해야 한다.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일 민주당이 김형태·이광범 변호사를 특검 후보자로 추천한 직후 "민주당은 비공식 협의과정에서 제시된 새누리당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해 발표를 강행했다"며 "여야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깨뜨리고 특검제도를 대통령 선거의 정략적 목적으로 악용하기 위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초법적 발상...새누리당과 협의했지만 결국 무산"청와대의 특검 재추천 요구에 대해 민주당은 "명백한 특검법 위반으로, 민주당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대통령께선 (특검 후보자를 추천한) 3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하게 돼 있는 내곡동 사저 특검법에 따라 2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을 특검으로 임명해 줄 것을 바란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가 무시됐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에게 4명의 특검후보자 추천을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수차례 새누리당과 협의했다"며 "여야가 협의과정에서 공감한 아무개 후보자는 본인의 고사로 추천되지 못했고, 민주당은 법정 기일( 특검 추천 의뢰서를 받은 날부터 5일 이내)에 따라 2명의 후보자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청와대의 특검후보 재추천 요구는 초법적 발상으로 특검법의 위반이자 대통령이 정당한 법집행을 거부한 직무유기행위"라며 "청와대의 이러한 초법적 요구의 목적은 특검의 무력화와 정쟁화를 통한 내곡동 사저매입 관련 의혹의 진상규명 방해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언제부터 '여야 합의' 중시? 특검 결과 비판할 근거 만드나청와대가 '여야 협의가 안됐다'는 이유로 내곡동 사저 특검법 시행에 어깃장을 걸고 나선 형국인데, 청와대가 이 방침을 그대로 밀고 나갈 경우 대통령이 법률을 위반하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특검 후보자를 재추천하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5일까지 특별검사를 임명하지 않으면 이 대통령이 법률을 위반하게 된다.
반대로 민주당이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특별검사를 재추천하면 '특검 추천 의뢰서를 받은 날부터 5일 이내에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정한 법정기일을 초과하게 되므로 이 또한 민주당이 법률을 어기게 된다. 이와 동시에 내곡동 사저 특검은 '법률을 어기며 출범한 특검'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민주당으로선 재추천을 할 법적인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렇게 민주당이 특검을 재추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청와대가 '여야 합의 정신'을 내세운 것이 이 대통령이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특검 임명을 거부하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특검 실시 전부터 절차적 문제를 제기해놓고, 이후 특검 결과에 따라 '특검의 정치편향성' 등을 비판할 근거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론이 청와대의 특검 어깃장을 곱게 볼 것이냐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2009년 미디어법 처리나 4대강 사업 관련 예산안 처리과정 등 새누리당이 여야 합의는 내팽개친 채 날치기로 통과시킨 사안을 문제삼은 바 없다.
한편 이달곤 정무수석은 이날 긴급대책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최 홍보수석은 "특검법의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특검추천과 관련한 여야 합의를 토대로 특검법을 수용했지만, 합의가 결과적으로 무산된 데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