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오후 구미 국가산업단지 4단지 내에 있는 ㈜휴브글로벌에서 불산 가스 누출로 인한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농축산물 등 2차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고업체뿐만 아니라 구미시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난 4일 오전 몸에 이상을 느껴 치료를 받은 주민은 6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부분 호흡기 곤란이나 기침·피부발진 등을 호소하고 있다.
4일 현재 벼와 포도·멜론·자두 등 농작물 피해가 91.2ha에 이르고, 가축 피해도 소 812두를 비롯해 개·말 등 1313두에 이른다. 또 양봉 57통이 폐사됐고, 건물 유리창과 차량 부식 피해도 발생했다.
인근 공장의 피해도 막심하다. 건물 유리창이 깨지거나 외벽이 부식됐다는 신고가 8건이 접수됐고 공단에 있는 직원들의 차량 부식도 88건이나 접수됐다. 하지만 지난 3일까지 추석 연휴를 보내고 조업을 시작한 공장이 상당수라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불산 유출피해 눈덩이, 인근마을 초토화가스유출사고가 난 공장으로부터 불과 200미터 떨어진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일대는 나무가 말라죽고 소가 콧물을 흘리며 기침을 하는 등 불산 가스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입구서부터 논밭의 농작물이 전부 말라죽은 상태였고, 포도·멜론·사과나무 등도 제초제나 고엽제를 맞은 것처럼 이미 말라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집안 마당에 심어놓은 대추나무나 감나무 등 조경수나 과실수는 물론, 고추·파·마늘 등 모든 식물들이 하나같이 말라죽어 있었다. 동물들도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치료를 받거나 추후에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구미시와 산동면사무소가 "초동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분개하고 있었다. 이 마을 이장 박명석씨는 "유독가스가 날아와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는 방송을 하고 대피시켰다"며 "그러나 구미시나 산동면사무소로부터 연락을 받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주민 이우근(72)씨는 "가스유출 사고가 난 후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고 도로에 나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태워주는 차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냥 잤다"고 말했다. 이씨는 "나처럼 대피하지 못하고 집에서 가스를 마시며 잠을 잔 주민도 더러 있을 것"이라며 "공무원들은 주민들이 대피했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이 동네에 사는 김영희씨도 "삼촌과 숙모도 거동이 불편해 대피하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며 "이 마을에는 노인들이 많아 관공서에서 차를 끌고 와 대피시켜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나락을 베어내기도 겁이 난다"며 "전부 불로 태워 없애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불산이 없어지지 않으면 인체에 침투해 심각한 피해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윤영화(74)씨는 "집 앞에 앉아 있으니 연기가 나길래 마을 인근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줄 알았다"며 "불꽃은 보이지 않고 연기가 마을 길을 따라 내려오더니 집안을 가득 덮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씨는 "20분 정도 연기를 마셨는데, 눈이 따갑고 기침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대피했는데,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왜 우리 마을 인근에 이런 위험한 공장을 세웠는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주민 김정준(52)씨는 "그동안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었는데 하나도 못 써먹게 됐다"며 "사람은 그나마 대피했으니 다행이었지만, 소나 개 등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말도 못하고 엄청 괴로웠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소가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려 비타민C와 호흡기 질환 약을 받아 먹이고 있지만 걱정된다"며 "내다 팔아야 할지 아니면 정부에서 사줄 것인지 알려줘야 하는 데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미시와 산동면은 안이한 대처로 비판을 자처하고 있다. 구미시는 지난 27일 종합상황실을 사고 현장에서 멀지 않은 구미코(컨벤션센터)에 설치했다가 28일 오후 폐쇄한 뒤 시청으로 옮겼다.
이후 인명 피해는 구미보건소에서, 농정 피해는 선산출장소 농정과에서, 축산물 피해는 유통축산과에서, 기업체 피해는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 본부에서 따로 접수 받았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까지도 정확한 피해 접수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산동면사무소도 "직접 피해 접수가 들어오면 접수를 받는다"며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 피해를 확인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상황 집계조차 하지않고 있었다.
환경단체, 구미시의 안이한 대처가 피해 키워
경북대 김길수(수의학과) 교수는 "불산은 약산이어서 순간적인 자극은 약하지만 수분하고 결합하면 반응이 빨라진다"며 "호흡기로 노출되든 피부로 접촉이 되면 피부를 잘라내야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불산에 노출된 가축들은 지금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며 "도축해서 유통이 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전량 매입해 폐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산은 저농도에서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며 "워낙 위험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불산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도 아마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한 구미시의 대처는 잘못된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지금은 괜찮아보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집쥐나 들쥐 등 야생동물들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며 "잠자리·나비 같은 곤충들도 사라지고 식물들도 모두 말라죽어 죽음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대구환경운동연합은 "지역 주민들과 인근 공장의 노동자들을 즉시 피신시키고 전면적인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은 '공기 중 불산 함유량이 30ppm 이하면 안전하다'며 사고 다음날 주민들을 귀가시킨 구미시의 조치를 비판하며 "행정당국의 안이한 대처가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해당 공장과 구미시의 총체적 독극물 관리부실 사태가 부른 초대형 인재"라며 " 문제의 공장이 이곳에 들어올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회 한 번 열지 않았고, 추후에도 안전에 대한 어떠한 조처나 안내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맹독성인 불산이 식수원인 낙동강으로 흘러들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며 "즉시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