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잘 쇠셨습니까.
올 추석은 연휴가 길어 집집마다 올 대선 '누가 대통령 감으로 좋은가'를 두고 밥상머리 논쟁이 꽤 진지하게 펼쳐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척끼리도 세대별로 성별로 지역별로 나뉘어 저마다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하려 노력했던 연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요.
제 가까운 친척은 올 대선 자신의 목표를 하나 정했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상대후보를 찍겠다고 선언한 식구의 '투표저지운동'을 하겠다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생각을? ㅋㅋㅋ. 이런 경우, 선거법 위반사례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하간 재밌는 풍광이 펼쳐질 게 분명한 대선 판입니다.
여론조사 지표상으로 드러난 추석 민심에도 변화가 느껴집니다. 오차범위 안에서 혹은 오차범위 밖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민주당의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누르는 양상입니다. 세 후보가 동시에 겨룰 때는 어떨까요? 박근혜 후보가 앞섭니다. 양자대결에서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다자대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우세하다는 얘기지요.
야권이 단일화를 제대로 성사시키면 이번 대선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쓸 후보는 여권이 아닌 바로 야권의 후보가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역 민심은 어떨까요?
PK 민심의 40%가 야권 지지...여권에선 '판 흔들어야' 주문도최근 무소속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적을 바꾼 김한표 의원(거제)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끝까지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박근혜 후보는 2007년 대선 당시 부산경남(PK)지역에서 이명박 후보가 얻은 표만큼 얻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그의 지역구가 거제인데, 거제는 부산에서 가까워 소위 PK발 민심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4일 열린 새누리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후보만 빼놓고 다 바꾸자"며 '당과 캠프의 대수술론'을 제안했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도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PK지역이 과거와 같지 않다"며 "현재 야권의지지 40%가 고착화 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판을 흔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지요.
새누리당에 이런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홍사덕, 송영선 전 의원 등 소위 친박계 의원들의 공천비리 금품수수 사건 등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저분한 일 때문에 박근혜 후보가 아무리 개혁과 변화를 강조해도 국민들 의식 속엔 새누리당 하면 역시 '구태와 구악이야'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지요.
그러니 박 후보 진영은 산토끼는커녕 집토끼 단속이라도 제대로 해야 올 대선에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투표율을 최대한 끌어내려 고정 지지층만으로 치르고 싶다는 생각도 할 법할 듯합니다. 속마음에 왜 그런 마음이 없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의 격랑 속에 야권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민주당은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안 후보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단일화의 조건을 '세게' 걸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치의) 변화가 있기 전까지 단일화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안 후보가 이 말을 할 때 정치권 전반을 통칭했지만, 행간의 핵심엔 '민주당의 성의 있는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까놓고 말하면, 안 후보는 민주당의 변화를 정조준 한 게 아닐까요?
그런데, 민주당이 안 원장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은 것일까요? 아니면 안 원장이 40년 민주당 역사의 자존심에 '기스'를 낸 것일까요?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재인 대 안철수의 '숙명이 걸린 한 판 승부'는 10월 들어 본격화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2010년 경기지사,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주요 정치의 변곡점마다 후보를 못내 '불임정당' 비판을 받았던 민주당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해서 안철수 후보와 '진검승부'를 해보자고 벼르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 안철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박원순이라는 시민사회 출신의 걸출한 인물 대 중견급 여성 정치인 박영선의 대결에서 맥없이 후보 자리를 시민사회 쪽에 내주었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갖고 충분히 싸우면 '역전의 드라마'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엿보입니다.
민주당이 좋은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지면 안철수 후보를 충분히 꺾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다년간 선거로 단련된 수많은 전략가들이 포진돼 있는 민주당 대 정당도 없는 정치신예 안철수 후보가 붙는다면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재인캠프도 안철수캠프도 '10월은 전략의 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문재인 후보는 4일 10명의 선대위원장단을 선임했습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이날 "상임선대위원장 없이 10명의 선대위원장이 수평적 네트워크 형태로 이번 대선을 지휘한다"고 밝혔습니다.
우 단장은 "이런 대선캠프는 역사상 처음"이라며 "계파와 선수 중심의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나 정당과 시민정치를 접목하는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계급장을 떼고 서열과 선수를 파괴한 채 정당개혁과 정치혁신을 위해 뛰겠다고 했습니다.
우 단장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도 과연 그렇게(계파와 선수 무시한 채로)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았다"면서 "그러나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정치혁신을 할 수 있겠나 싶어 계급장 떼고 서열 없이 수평적 네트워크로 정치혁신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공동선대위원장단에는 김부겸 전 최고위원과 박영선·이인영·이학영 의원, 시인 안도현씨,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영경 전 청년유니온 위원장,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등이 참여합니다. 당내 인사로는 호남 출신의 4선 이낙연 의원과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의원이 함께 합니다.
오케스트라에 비유하자면, 이 10명의 공동선대위원장들이 훌륭한 하모니를 낼 수 있을까요? 10명의 선대위원장들이 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이번 대선을 지휘하기로 했다는데 과연 이들에게 실권이 쥐어질까요?
고위전략회의 관계자 "나를 밟고 가라"이날 브리핑을 마친 우상호 단장과 몇몇 기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습니다. 기자들은 우 단장을 향해 "과연 제대로 되겠는가"라는 의문부호를 날렸고, 우 단장은 기자들에게 "너무 삐딱하게만 보지 말아라,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와야 세상을 만나듯이 우리도 여러 위험이 있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이번에는 정말 정치개혁을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 단장은 이날 공동선대위원장단과 별도로 후보의 직속 자문기구로 '고위전략회의'를 신설한 점도 주목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함께 뛰었던 대선후보들이 올 대선에서 각자 자신들이 할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손학규 고문은 강원도에서, 정세균 고문은 호남에서, 한명숙 전 대표는 해외와 그 밖의 지역에서 등등 각자 정권교체를 위해 뛸 것이라면서, 고위전략회의 관계자 중에는 "나를 밟고 가라"고 한 인물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누가 '나를 밟고 가라'고 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 말 속에는 큰 뼈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관위에 등록조차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정치자금법상 정당에 배부되는 국고보조금 150억원도 받지 못하고, 이 돈이 없으면 당을 유지할 기력을 잃게 되지요. 딱히 돈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선후보도 못내는 상황이 되면 과연 이 정당을 유지할 이유가 있냐는 일종의 '민주당 무용론'이 일 수 있겠지요.
이 위기감이 민주당의 개혁파에게 명분과 자리를 준 것 같습니다. 공동선대위원장단에 친노 인사들이 빠진 이유 같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선 "친노 인사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평이 나돕니다. 그래도 빼고, 밟고, 타고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당이 살고 후보가 살고 정치가 살려면, 계파의 이익은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본 것일까요?
선대위원장단 명단에는 친노가 없지만 비서실을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모든 의사결정의 핵심에 '비서실'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우 단장은 "일체 권한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모든 권한은 선대위원장단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10명의 선대위원장단에 정말 핵심그룹이 없을까요? 당내인사와 시민사회 인사간 권한과 역할의 배분이 정말 1/N로 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위 전략가로 알려진 이인영, 박영선, 김부겸 전 최고위원들이 일종의 핵심그룹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혁신을 향한 민주당의 몸부림은 성공할 수 있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새로운 정치혁신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평가할만합니다. 이참에 제대로 된 개혁을 해낸다면 민주정당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자부심이 생기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콘텐츠입니다.
말로만 정당개혁, 정치혁신을 말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당개혁과 정치혁신의 콘텐츠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후보의 말대로 국민이 납득할 만한 혁신의 결과물을 내놓을 때 국민이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민주당은 계파의 이익 앞에서 늘 무너지는 정당이었습니다. 나눠 먹을 게 생기면 양심도 체면도 없이 무작정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허겁지겁 해치웠지요. 그러나 이번에 민주당이 잘 해낸다면 국민들에게 박수 받는 정당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 반대가 된다면? 끝내 제로섬 게임으로 간다면? 그 끔찍한 상황은 우리 국민 모두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바일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