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영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로부터 느닷없는 문자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가족들아, 하늘 좀 봐!"아들의 메시지를 읽고 올려다본 5월의 하늘은 너무나 맑아서 그곳에 눈을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체증이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머리위에 그 청명한 하늘이 있었음에도 아들의 메시지가 아니었으면 그것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아들의 그 명령을 받은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10월의 하늘은 그 오월의 하늘만큼이나 투명하고 깊습니다.
핏빛으로 짙어지는 잎들은 곧 줄기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킬 준비입니다. 제게 그 핏빛의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희생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원색의 열매를 매단 식물들조차도 풍요롭기보다 애잔해 보입니다. 그것은 곧 한 세대의 마감을 포함하고 있기때문일테지요.
지금 헤이리 하늘을 오가는 기러기는 지난 계절 자신들을 살찌웠던 북쪽의 산천을 등졌습니다.
이별은 늘 나의 삶이지만 가을은 유독 그것을 도드라지게 보여줍니다.
좀 더 주체적이지 못했던 여름이 이 가을 후회스럽습니다.
좀 더 깊은 통찰로 시간을 관조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짙어지는 가을입니다.
더 깊이 사랑하지 못했음의 회한이 소슬한 바람으로 불고 반짝이는 이슬로 맺히는 가을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누구나 '철학'하는 계절인가 봅니다.
영어의 철학, philosophy'는 사랑하다(philein)'와 '지혜(sophia)'라는 두 그리스 단어가 만난 'philosophia(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온 말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하는 일, 이 가을이 아니면 언제일까요.
철학은 앞만 보던 시선을 하늘로 두는 것 같은 여유로 시작됩니다.
먼 하늘에 둔 시선은 곧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고 결국 '나 자신'이 그 철학의 대상이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저는 작심한 것이 있습니다.
제 삶의 목표는 '아름답게 사는 것'이며, 적어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이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속에는 모든 가치로운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고상한 인품, 잔잔한 미소, 자상한 돌봄, 다름의 수용, 은은한 솔선, 부드러운 겸손…….
아름다움을 모르고 일상을 사는 것은 '가치'가 빠진 물리적인 시간만 사는 것일 뿐이지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여유, 영롱한 아침 이슬에 눈 맞출 수 있는 여유.
이 가을 철학하는 여유,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