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에는 두 가지 근원이 있다. 하나는 보수의 정체성 위기. 박근혜 캠프는 선거를 위해 보수당으로서 '정체성'을 포기했다. 거리에 나붙은 새누리당의 붉은색 플래카드는 색깔이나 구호가 진보신당의 그것과 똑같다. 얼마나 우스운가?
둘째, 리더십의 위기다. 박근혜가 대선후보가 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리더십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워낙 인기 없는 정권을 재창출하는 유일한 길은 그나마 계파 갈등 때문에 정권과 거리를 유지했던 그녀를 내세우는 것뿐. 박근혜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보수층의 '마지못한 선택'일 뿐이다. 그러니 내부에서 권력의 배분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
박근혜의 꺾인 두 날개
먼저 첫 번째 요인부터 살펴보자. 대권을 향해 비상하는 박근혜의 양 날개는 '경제개혁'과 '정치쇄신'이었다. 전자를 위해 박 후보는 김종인을 영입했고, 후자를 위해서는 안대희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당무를 거부하고 있다. 한 마디로 양 날개가 꺾일 위기, 장기에 비유하자면 '차' '포'를 떼야 할 상황이다. 현재 김종인은 이한구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안대희는 한광옥의 국민통합위원장 임명에 반대한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이한구와 한광옥을 내쳐야 할 상황이다. 설사 이들을 내친다 하더라도, 박근혜가 던지는 대선 메시지의 진정성은 이미 크게 손상된 상태다.
한광옥을 내칠 경우 박근혜의 '대통합' 행보에는 바로 제동이 걸리게 된다. 삼고초려 끝에 억지로 모셔온 인물(?)마저 제 필요에 따라 내친다면, 누가 기꺼이 그 캠프에 가려고 하겠는가? 이미 정치적 의미를 잃은 인물을 영입한 것 자체가 박근혜판 대통합 행보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잖아도 박 캠프는 외부인사 영입에 난항을 겪어 왔다. 장하준·정태인·김지하·김성녀·김용택·손숙·김재범. 어디 잡음이 일지 않은 적이 있던가? 젊은 세대를 향한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 최불암·이순재·노주현. 이 세 분의 연세를 합치면 무려 200세가 넘는다.
어차피 한광옥은 민주당에서도 버린 카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칠 수도 있을 터이나, 문제는 이한구. 그는 원내대표라는 직함이나 친박 그룹 내에서의 위상 때문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의미에서 '문제적' 개인이다. 그의 뒤에는 재계가 서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이 누차 지적했듯이 그는(실질적이든, 혹은 상징적이든) 새누리당과 한국의 재계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를 퇴진키는 것은 재계와 새누리당의 고리를 쳐냄으로써 새누리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 효과는 조중동과 경제지들의 논설로 당장 나타날 게다.
대통합에서 대봉합으로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거리를 두기 위해 박근혜가 애초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이다. 즉 보수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진보 코스프레'에 들어간 것 자체가 오류였다. 현재 박근혜 캠프는 '김종인의 옷을 입은 이한구'라고 할 수 있다. 이한구의 입장에서는 김종인의 요구가 '몸을 옷에 맞추라'는 소리로 들릴 게다. 이게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선거를 치르려면 여전히 옷이 필요하다. 최선의 방법은 옷이 옷의 주제를 알고 좀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옷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몸'으로 삼을 거라는 약속을 믿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치쇄신도 마찬가지. 현영희·홍사덕·송영선 등 연쇄적으로 터진 비리 사건이 보여줬듯이, 박 캠프는 사실 정치쇄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이렇게 주체와 대상이 일치하다 보니, 자기가 제 몸을 자르는 연쇄 '출당'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이를 가리려 안대희를 내세워 '쇄신 코스프레'를 하려 했으나, 그것으로 친박의 알몸을 가릴 수는 없었다. 캠프가 썩었으니 밖에서라도 데려와야 하는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그래서 억지로 모셔온 것이 고작 비리혐의로 인해 민주당에서 내다 버린 한광옥. 안대희라는 옷은 한광옥이라는 단추가 제 스타일을 구긴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박 캠프는 보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에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한 문제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한다. 도대체 길거리에 나붙은 플래카드를 보라. 재계를 등에 업은 당이 저 '시뻘건' 공약들을 무슨 수로 이행한단 말인가? 게다가 정치쇄신을 외칠 거라면, 애초에 캠프를 구성할 때부터 쇄신을 실현했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안 캠프로 간 김성식 전 의원의 행보다. 그가 새누리당을 떠난 것은 곧 '박근혜 대표 하에서는 새누리당의 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성식 전 의원의 행보가 박 캠프에 뼈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종인이나 이한구, 안대희나 한광옥, 어느 쪽을 내치든 박 캠프는 결정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은 길은 옷과 몸을 적당히 '봉합'하는 길뿐. 밖으로 '대통합'에 나섰던 박근혜 캠프가 이제 안으로 '대봉합'에 나설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이한구를 선대위에서 배제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그가 원내대표로서 새누리당의 정책 브레인으로 남아 있는 한, 김종인이 원하는 경제민주화는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설사 봉합에 성공한다 해도, 박근혜의 두 날개는 밀랍도 아니고 딱풀로 간신히 몸에 붙여 놓은 가짜 날개임이 이미 드러났다. 그 날개로는 하늘을 날 수가 없다.
또 하나의 뇌관
또 하나의 뇌관은 권력 다툼이다. 경선이 끝났지만, 박근혜 후보는 경쟁자였던 이재오와 정몽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재오는 애초에 '박근혜 필패론'이 소신이기에 대권보다는 개헌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이다. 정몽준의 경우 박근혜를 만났으나 선대위 참여에 확답을 주지 않았다. 대선에서 박 후보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유력한 두 주자가 캠프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것은 당연히 박근혜 캠프가 자신들이 몸담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리라. 사실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사당(私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거기에 친이계와 친박계의 오랜 갈등이 존재한다. 정권의 실정으로 민심이 땅에 떨어지자, 새누리당은 박근혜에게 전권을 줄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는 정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뒀고, 그만큼은 실정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심지어 항간에는 '박근혜가 돼도 정권교체로 간주하겠다'는 분위기가 존재할 정도였다).
친이와 친박은 같은 당이면서도 준(準) 여당과 준 야당만큼의 거리가 존재한다. 비박계로서는 박근혜가 '우리 후보'가 아니라 마지못해 선택할 차악일 뿐. 당내에서 지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녀와 거리를 두는 게 차차기를 위해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친박 내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만 기용한다는 박근혜의 용인술은 친박 내에서도 산삼-장뇌삼-도라지라는 해괴한 골품제를 낳았다. 비박과 친박의 갈등에 맞물려, 이른바 '근박'(近朴)과 '원박'(遠朴)의 갈등이 존재한다. 거기에 '월박'과 '복박'이라는 귀순용사들, '주이야박'이라는 빨치산 용사까지 가세해 어지러운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어지러운 '잡박'(雜朴)들의 싸움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아드 상크툼(ad sanctum). 한 마디로 성스러운 것에 더욱더 가까이 가기 위한 경쟁이다. 성녀에 가까울수록 권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친박 성골이 박근혜 후보의 귀를 막았다는 새누리당 쇄신파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들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경직된 태도를 보여 후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자신들의 손에 권력을 독점하여 당의 단합을 깨뜨렸다. 하지만 새누리당 쇄신파들의 문제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그들을 2선으로 물려봤자, 결국 자질과 도덕에 비슷한 문제를 가진 이들이 그 자리를 채울 테니까. 다만 '앞으로 권력을 분점하겠다'는 후보의 의사를 확인하는 성과 정도랄까? 사실 문제의 근원은 박근혜 후보 자신이다. 하지만 후보를 갈 수는 없는 일. 그것이 새누리당의 실존적 딜레마다.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
선거를 앞두고 캠프가 이런 대혼란의 상태에 빠져든 것은 박근혜의 리더십이 정상적으로 얻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에게서 검증된 것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점뿐이다. 그녀는 하다못해 구청장을 해본 경험도 없다. 그녀는 자신의 오랜 정치적 경험을 자랑하나 의원으로서 그녀의 입법 실적은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참담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경제적 활동을 해 본 경험도 없다. 정수장학회, 영남대 이사장 등 주로 부모의 유산으로 그동안 먹고 살아왔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 역시 아버지 후광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의 리더십이 당내에서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다. 선거형 리더십과 통치형 리더십은 전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과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통치도 아버지·어머니 후광으로 할 것인가? 생각해 보라. 역대 대선에 그 어떤 캠프가 슬로건 자체를 놓고 논란을 벌였던가. 역대 대선에서 어떤 캠프가 선거 전부터 저런 권력 투쟁을 겪었던가. 역대 대선에서 그 어떤 캠프가 몇 달 만에 집권 몇 년치의 비리 실적을 올렸던가. 박근혜를 바라보는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박근혜 후보는 쇄신요구를 일축했다. 선거를 앞두고 더 이상 혼란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설사 그녀가 쇄신의 요구를 수용한다 해도, 애초에 인적 대안이 없기에, 그 조치는 '정치쇄신'보다는 '이익조정'에 가까울 게다. 옛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박근혜의 리더십은 '제가'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그동안 박 캠프의 일정은 거의 재난사고의 기록이었다. 캠프를 그 지경으로 끌어온 후보에게 과연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맡겨도 될까? 저 후보에 저 캠프라면 국가를 총체적 파국으로 이끄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대한민국을 "궤도를 벗어난 아폴로 13호"에 비유했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우주선은 지구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 박근혜의 리더십이 그런 것이라면, 그녀가 선장이 될 경우 아폴로 13호는 화성을 지나치고, 목성을 지나치고, 토성을 지나쳐서 영원히 우주의 유령선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