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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국내외 명작 장·단편 소설들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읽어봤다. 독서를 통해서 문학가가 된다든지 당대의 시대적 모순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과 주변인물, 상황 등에서 나름대로 공감하면서 내 삶의 일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청소년기의 성장통에 연유해서 매달린 측면이 크기는 했지만.

인문·사회과학적 지식과 삶의 두께가 깊어질수록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읽었던 책들 중 몇 권이라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하는데, <변신>을 먼저 선택했다.

책을 보고 총화할 수 있는 독서모임이나 지도교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모임을 통해서 논의와 토론을 해 상호 주관성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존주의 종류의 책을 대학 들어가서 몇 권을 더 접해봤다. 카프카의 작품을 실존주의로 분류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담겨 있어서 꼭 실존주의로 보지 않기도 한다.

실존주의는 1930년대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현상(세계경제공황)이 첨예화된 것과 때를 같이 해 독일에서 처음으로 성립·발전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절망적인 시대에 인간들을 엄습한 전반적인 불안감과 더불어 성립됐다.

실존주의자들은 실존 개념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물질과 의식(객체와 주체)간의 인식론적 구별을 거부한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인간의 인식능력을 평가 절하하고 특히 과학적 인식의 가치를 대폭 깎아 내린다. 객관적 실재란 과학적 방식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단지 개별적으로 체험될 수 있을 뿐이다. 객관적 실재를 체험케 하는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불안'이다.

실존주의는 절대적 비합리주의를 선언한다. 비이성을 위해 이성을 평가절하한다. 이성은 봉건귀족 사회와 그 제도 및 이데올로기에 대항해 투쟁했던 혁명적 부르주아의 무기였으나 실존주의는 한낱 망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실존주의는 현대문명의 위기를 이성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 원인을 이성의 도구화와 타락에서 발견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자기 안의 이성을 발견함으로써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경제적 합리성과 효율성의 노예로 전락시킨 것이다. 위기의 출발점을 본디 하나였던 이성이 도구적 이성과 비판적 이성으로 분화된 것에서 찾는다.

산술적 계산 능력이나 진술의 진위판단 능력과 같은 단순한 지적 능력을 가리킨다. 이것은 주로 과학연구나 기술개발, 개인이나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 수립 등에 쓰인 도구적 이성이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지적 능력을 가리키는 비판적 이성을 통해 허위의식과 그릇된 지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변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난 소외된 노동과 경제적 토대에 의해 형성된 가족의 모습을 비판적 이성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의류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고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갑작스런 일에 당황하면서도, 그는 조금 더 자 보려 하지만, 수면에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없었다. 그는 등껍질을 침대에 대고 누운 상태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여러모로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출장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시간에 늦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하고, 짧은 틈을 이용해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며, 상대할 고객들은 계속 바뀌어 깊이 사귈 수도 없기에 대인 관계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른 기상 역시 불만스런 일이며,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난다는 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단 말이야. 인간은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거든' 그레고르는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님이 사업 실패 때문에 사장에게 거액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빚을 청산할 때까지는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생산물이 교환가치로써 상품화돼 거래되듯 인간 또한 상품으로 교환돼야 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 노동력의 교환가치는 추상적 노동 때문에 가능하다. 추상적 노동은 노동 과정의 유기적 전체를 기계적 요소로 분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분해를 초래한다. 노동자는 지적 불구자가 된다.

어떤 상품 가치는 사회적인 관계의 결과인데 상품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해 상품 상호 간의 관계인 것처럼 여긴다. 인간 노동으로부터 자립한 상품은 소원해진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즐겁고 보람된 노동이 아니라 강제된 노동이기 불쾌하고 의미없이 마지못해서 직장에 나간다.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소외에 기인한다.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와 생산의 사회화로부터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그레고르는 상업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노동자로써 자신과 같이 노동력을 판매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노동자의 노동생산물을 유통시장에 판매하나 그 상품이나 이익을 향유하지도 못함으로써 소외를 느낀다.

또한 놀이처럼 또래들과 함께 처음부터 놀이과정을 숙지해 계획을 세우고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은 매우 세분화·전문화돼서 노동 과정의 전체과정을 알지 못하고 극히 일부분만을 담당하고 있기에 노동자의 의지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재미있고 의미있게 일을 할 수 없게 한다. 여기에서부터 소외가 발생한다. 이런 계획과 운영은 자본가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자본가가 직접 한다. 노동자는 이런 계획 아래 시킨대로 하기에 곤욕을 치른다. 그레고르도 마찬가지로 자본가가 짠 큰 틀 속에서 노동을 하기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유적존재로부터의 소외'는 마르크스가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특성으로 사용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동물과는 다르게 자유롭고 창조적인 생산 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동물의 실천은 생명 활동일 뿐이다. 즉 생명의 생존이 요구하는 것들의 지배 아래에서만 활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육체적 욕구와는 다르게 자유롭게 생산하고, 또 창조적이며 의식적으로 생산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서 노동자의 노동은 오직 그의 생존을 위해서만 실행된다. 노동은 인류의 특징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소외시킨다.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은 오직 인간 생존을 위한 도구고 전락될 뿐이다.

그레고르 또한 동물과 달리 노동과정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생산 활동을 하기 보다는 동물처럼 생존을 위한 도구로써만 기능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출장 갈 시간이 이미 지났다. 그의 몸 상태를 두고 걱정하는 가족들과 방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 하다가, 몸을 움직여서 침대에서 빠져 나오려고 할 때 그레고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배인이 온다. 근무 태만이라고 비난하는 지배인에게, 그레고르는 방 안에서 변명하지만, 아무래도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인간이 자신의 유적 본질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그리고 그들 쌍방이 인간적 본질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소외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는, 그가 다른 인간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현실화되고 표현된다. 노동과정으로부터 소외를 느끼면서 자신의 자아와 대립하게 되고 이는 타인에게 전가해 타인과 경쟁하면서 타인으로부터 소외를 느끼고 자신은 소외는 것이다. 여기서 그레고르는 지배인과 경쟁과 대립을 하면서 소외를 느낀다.

다음은 헤겔이 사회 공동체 중 가장 원초적이면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한 가족에 대해서 살펴보자.

마르셀이 말한 것처럼 가정은 존재를 드러나는 장소여야 한다. 가정이란 사람이 그 어떠함, 곧 외모나 성격, 재능 또는 재산 등등 때문에 인정받고 사랑받는 장소가 아니라 그의 있음 그 자체, 곧 존재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여기에서 가족이 사랑조차 경제적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농업혁명으로 인해 식량이 풍부해지고 먹고 남은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이 잉여 생산물의 분배를 놓고 드디어 인간 사회에 체계적인 불평등이 시작됐다. 개인이나 특정 가족이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게 되면서 빈부 격차가 생기고 신분 지위의 고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사에 처음으로 계급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농경과 목축을 담당하던 남성이 잉여생산물을 사유하고 축적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상속의 개념이 형성됐다. 만약 상속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축적과 사적 소유는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상속을 위해서는 자기 아들임을 확신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모계사회의 특징이었던 난혼은 금지되고 하나의 남성을 중심으로 한 일부일처제 가족관계가 형성된다.

아버지의 혈통을 확인할 수 있는 일부일처제는 사유재산 형성과 상속의 문제가 발생한 특정한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고, 개별성에 기초한 일부일처제 가족은 인류 역사 전체를 볼 때 아주 뒤늦게 생겨난 것이 된다.

드디어 부계제 사회가 출현한 것이었다. 소유의식은 지배의식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계급사회의 탄생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의식,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식을 만들어내었다. 또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소유와 지배는 처음에는 주로 폭력에 의존했다.

여기에 더해서 자본주의 경제활동이 생활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게 됐다. 마라크스는 이런 폐단을 <공산당 선언>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부르주아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적나라한 이해관계, 냉정한 현금 계산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인격의 가치를 교환의 가치로 해소시켜버렸고,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했던 무수한 자유를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업적 자유로 바꾸어버렸다.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 위에 드리워진 그 감동적인 감상의 포장을 찢어버리고, 그것을 순전히 금전관계로 만들어버렸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이전의 경제활동이 그 사회·정치·문화에 종속돼 있어서 필요한 욕구충족에 필요한 생산물인 사용가치가 주를 이뤘으나 이제는 경제활동에 그 외 사회의 모든 활동이 종속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경제활동이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교환가치를 위해서 생산돼야 했다. 이런 교환가치를 위한 생산은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양적개념으로 만들고 인간의 도구적 이성은 이를 위해서 충실한 개념이 됐다.

인간의 사랑·우정·행복 등도 계산가능한 양적 개념으로 경제적 개념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여기서도 가정의 사랑과 행복이 경제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음은 다음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죽은 그레고를 향해 가족들이 "옆방의 물건을 치워야 한다"라는 외침에서 가족들의 경제적 가치가 없어짐으로 해서 생기는 비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문학동네(2005)


태그:#광주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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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 몸담으면서 교사.교육활동은 현장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서도 변혁이 되어야만 참교육에 이른다고 봅니다.그래서 짧은 소견을 대중적인 전자공간을 담보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합니다. 저서로 [자본론노트],[청소년을위한백두선생경제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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