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잘못 들어 인적 없는 곳에서 차량이 고장 나 조난신고를 한 뒤 구조자를 만나기 위해 차량 밖에서 기다리며 헤매다 강추위에 동사했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는 지난 2010년 1월 오전 8시경 자신의 화물차를 몰고 광주 광산구 지평동 부근 도로를 진행하다 공사현장으로 길을 잘못 들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났는데, 당시 차량 오른쪽 뒷바퀴 2개에 펑크가 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됐다.
A씨는 차량 보험사에 연락해 사고발생 신고 및 구난요청을 요청했지만 사건 차량 주변을 3~4시간 헤매다 강추위에 체력이 저하돼 동사한 채로 발견됐다. 당일 최저기온은 영하 8.5도였다.
이에 A씨 유족이 차량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하자, 동부화재는 "망인이 차량 주변을 3~4시간 이상 헤매다가 강추위에 체력이 저하돼 사망했으므로, 사고가 차량을 이용 관리하는 동안에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1심인 광주지법 민사12단독 정지선 판사는 2011년 3월 동부화재가 A씨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는 유족에게 92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지선 판사는 "망인은 차량을 운전하다가 조난상태가 돼 구조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구조자를 만나기 위해 차량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강추위에 체력이 저하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바, 비록 망인이 차량을 벗어난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더라도, 사망이라는 결과는 차량의 운송수단으로서의 본질이나 위험범위 내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보험계약상의 자동차상해 사망사고에 해당하므로, 원고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광주지법 제2민사부(재판장 송희호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원고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동부화재)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운전하다 조난상태가 되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구조자를 만나기 위해 차량을 벗어나 주변을 헤매다가 추위에 체력이 저하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망인이 차량을 그 용법에 따라 소유, 사용, 관리하던 중 화물차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은 유족이 상고해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차량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동사한 사망자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동부화재가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자동차보험계약상 자기신체사고로 규정된 '피보험자가 피보험자동차를 소유, 사용, 관리하는 동안에 생긴 피보험자동차의 사고로 인하여 상해를 입었을 때'라고 함은, 피보험자가 피보험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소유, 사용, 관리하던 중 그 자동차에 기인하여 피보험자가 상해를 입은 경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망인은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조난상태가 되자 구조자를 만나기 위해 화물차를 벗어나 약 10시간 이상 주변을 헤매다가 추위에 체력이 저하돼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이므로 망인이 화물차를 그 용법에 따라 소유, 사용, 관리하던 중 화물차에 의해 발생된 사고에 기인해 사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 판결하고, 피고들의 반소청구를 기각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