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감에 따라 나무와 숲이 우거진 도시의 공원이 동네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공원 가운데 땅거미 지는 저녁무렵에 가면 더욱 좋은 공원이 있는데 바로 '노을공원'이다. 서울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진다는 공원. 산도 강도 아닌 도심에서 보는 노을이 멋지면 얼마나 멋지기에 떡 하니 이름으로 쓰나 싶은 곳이다.
종종 조용히 노을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관망하는 도심 속 여유를 느껴볼 수 있는 드문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스카이라운지보다 자연적이고 고즈넉한 서울 속 녹지공간이기도 하다.
노을공원에 가는 동네 주민들은 걷거나 혹은 자전거를 타고 찾아 가는데 자전거는 평일에만 공원에 출입할 수 있다. 다른 동네에서 오는 사람들은 6호선 지하철 월드컵경기장역 1번이나 3번 출구로 나와 하늘공원 입구 주차장에 가면 귀여운 맹꽁이 전동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노을공원 입구 주차장에서도 탈 수 있다. (차비는 왕복 3000원)
열차 이름을 맹꽁이라고 지은 이유는 공원 부근에 맹꽁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다. 오후 8시 일몰 풍경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노을공원까지 20분마다 운행을 한다. 해가 저무는 저녁나절 이 열차를 타고 공원을 오르면 마치 황혼열차를 탄 기분이겠다.
귀여운 맹꽁이 열차타고 공원으로 미니열차를 타고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오르락 내리락 달리는 재미가 쏠쏠한지 열차 탄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들 아이처럼 해맑다. 나는 애마 자전거를 타고 노을공원을 찾았는데 공원 가는 길고 수목으로 울창한 산책로에 고라니, 멧돼지, 꿩을 주의하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노을공원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생태보고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야생동물들은 못보고 자전거가 휙 지나가자 후두두 날아가는 산비둘기만 만났다.
노을공원의 원래 이름은 난지도였다. 1978년 쓰레기를 매립하기 전, 난지도는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던 밭이 있던 평지였으며, 지대가 낮아 홍수 때면 집이 물에 잠기는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소풍장소나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았으며 애정영화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던 아름다웠던 섬이었다고 한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꽃으로 가득했고, 먼길을 날아온 새들이 쉬어갈 정도로 아름다웠던 이름마저도 향기로운 섬이 악취가 풍기고 오물이 넘쳐나는 쓰레기 산이 되었다가 다시 이렇게 노을이 고운 공원으로 태어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난지도의 과거를 모르고 왔다면 평범했을 풍경에 자꾸 눈길이 간다.
아스팔트길, 흙길에 이어 너른 잔디밭이 한눈에 펼쳐지면 노을공원에 도착한 것이다. 잔디밭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니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푹신푹신하다. 도시에선 보통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만 이곳에선 마음껏 뛰거나 거닐어 볼 수 있다. 생태공원으로 만들어지기 전 골프장이기도 했던 덕택에 잔디밭이 융단마냥 잘 깔렸다.
부는 바람에 손 흔들어 환영하는 갈대들과 쉼터용으로 곳곳에 세워진 아담한 나무 원두막들에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가져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 식구들, 한 숨 주무시는 아저씨,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까지 원두막의 용도는 오래된 전통만큼이나 참 다양하기도 하다. 강변쪽의 나무데크 전망대에 서니 산에 오른 것도 아닌데 하늘문이 열리고 도시와 너른 한강이 환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사색의 계절 가을과 잘 어울리는 노을 노을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자 다양한 조각작품, 전망데크, 쉼터인 원두막 등이 있는 문화예술공원이기도 하다. 더불어 요즘 유행하는 캠핑족에게 잘 알려진 캠핑장이 있다는 것도 이채롭다. 거대한 사람 조각상이 쳐다보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면 수도권의 명산 북한산의 산등성이들이 우뚝 솟아있다.
공원 건너편엔 이맘때면 열리는 가을의 전령사 억새꽃 축제로 유명한 하늘공원이 펼쳐져 있다. 노을공원이 하늘공원보다 1.5배 정도 크다니 형제로 치면 형격이다. 어깨를 나란히 한 이웃 공원이지만 느껴지는 가을 분위기는 완연히 다르다. 동생 하늘공원과 달리 노을공원은 따로 축제를 안한다. 하긴 강을 비추고 산을 물들이는 붉은 저녁놀이 매일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무슨 축제가 필요하리.
오후 8시가 되도 끄떡없던 해가 이젠 6시가 되도 기운을 잃고 슬그머니 저 멀리 산 너머로 사라지려 한다. 2층까지 있는 노을 전망대에 벌써 사람들이 가득 모여 한폭의 그림같이 멋들어진 노을을 감상하고 있다. 황혼, 석양 같은 다른 표현들도 있지만 가을엔 역시 노을이란 우리말이 친근하고 잘 어울린다. 사색의 계절이라 그런지 눈앞에서 황금빛에서 붉은빛으로 천천히 펼쳐지는 노을이 한 권의 좋은 책을 읽는 것만 같다.
폰카에서부터 둔중한 삼각대를 설치한 사진가들까지 저마다 갖춘 것은 다르지만 하늘과 보는 사람의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노을에 감동하는 표정은 똑같다. 특히나 일몰의 절정일 땐 감탄과 아쉬움의 한숨소리가 약속이나 한 듯이 터져 나온다. 감상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울에서 저녁노을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공원이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 맹꽁이 전동 열차 타는 곳 : 하늘공원 입구 주차장, 노을공원 입구 주차장
- 문의 : 서부푸른도시사업소 02-300-5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