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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6일 한·미 미사일 지침의 개정으로, 한국군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300킬로미터에서 800킬로미터로 늘어났다. 이로써 경기도 평택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중국 북경, 일본 서남부, 러시아 국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 만약 부산에서 발사하면 일본 도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

한국군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주권강화?

사진은 지난 4월 국방부가 공개한, 우리기술로 개발한 탄도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사진은 지난 4월 국방부가 공개한, 우리기술로 개발한 탄도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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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러시아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1만 킬로미터를 훨씬 상회한다. 북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거리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사거리 800킬로미터가 그리 자랑스러울 것도 없을 듯한데, 정부 일각에서는 우리의 군사 주권 혹은 미사일 주권이 그만큼 강화된 것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사거리가 1천 킬로미터를 넘고 1만 킬로미터를 넘어 지구 둘레인 4만 120킬로미터를 초과한다 해도, 이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를 정해준다는 것 자체가 '미사일 주권의 강화를 운운할 정도로 한국이 과연 주권국가인가?'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천자국(황제국)이 제후국의 군사력에 대해 지침을 정해준 고대 중국의 사례를 보면, 한국의 국격(國格)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한층 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

고대 중국왕조인 주나라의 행정체제를 정리한 <주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하관' 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군대 규모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군대를 조직할 때는 1만 2500명을 하나의 군(軍)으로 한다. 왕(천자)은 6군을, 대국(가장 큰 제후국)은 3군을, 다음 나라는 2군을, 소국은 1군을 갖는다."

이 숫자가 정확히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주나라에서는 제후가 마음대로 군대를 증강시키지 못하도록 했다. 

<춘추>는 공자의 작품으로 보이는 고대 중국의 역사서다. 공자와 같은 노나라 사람인 좌구명은 <춘추>에 대해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을 <춘추좌씨전>이라 한다. 이 <춘추좌씨전>의 '은공' 편에 따르면, 제후들은 도성의 축조와 관련해서도 제약을 받았다. 

이에 의하면, 각급 제후가 사는 도성의 규모는 최상위 군주의 도성을 기준으로 3분의 1 혹은 5분의 1 또는 9분의 1을 넘을 수 없었다. 도성의 규모를 제한했다는 것은 도성의 넓이나 성벽의 길이 혹은 높이를 제한했다는 뜻이다. 3분의 1이냐, 5분의 1이냐, 9분의 1이냐는 제후의 위상에 따라 결정됐다.

도성은 제후의 정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제후들이 도성을 넓게 만들거나 도성 성벽을 길거나 높게 쌓으면, 경우에 따라 상급 제후나 천자를 상대로 끈질기게 대항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제후들이 도성의 규모를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 MD 참여 의혹... 제후국 1차 방어선 역할과 유사

이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대 중국의 제후국들은 군사력 규모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제후국들은 천자국의 지시를 받아, 혹은 천자국과의 협의 하에 그것을 결정하곤 했다. 제후국이 천자국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면, 명목이 어떻든 간에 그 나라는 더 이상 제후국이 아니었다.

거란족(요나라) 기마대의 모습. 중국 내몽골자치구 파림좌기의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
 거란족(요나라) 기마대의 모습. 중국 내몽골자치구 파림좌기의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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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국은 군사력을 마음대로 확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의 해설서인 <서경집전>을 보면, 제후국의 군사력이 제후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용될 수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제3국의 침략을 당했을 경우에 천자는 제후에게 방어를 맡길 수 있었다고 했다. 제후국이 천자국을 위한 1차 방어선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제후국의 군사력이 제후국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던 셈이다.

미국이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킬로미터로 연장해주는 대신, 한국을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끌어들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를 위한 MD에 참여할 경우,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미사일 전쟁에서 한국이 1차 방어선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천자국을 지키기 위해 제후국이 1차 방어선 역할을 했다는 <서경집전>의 기록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고대 중국의 제후국들은 자기 문제를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청나라 당소의가 고종 제안을 거부한 이유

자기 스스로 군사 문제를 결정할 수 없는 나라는 결코 자주국이 될 수 없다는, 이 당연한 이치를 조선 정부에 일깨워준 청나라 관리가 있다. 1894년 청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에서 청나라를 대표한 외교관이자, 1912년에 중화민국 최초의 국무총리가 된 당소의(탕샤오이)가 그 주인공이다.

청계(淸季) 즉 청나라 말기에 청나라와 조선·일본 사이에 전개된 외교관계를 정리한 사료집인 <청계 중·일·한 관계사료> 제8권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청일전쟁 직전에 조선은 일본의 강요 하에 청나라와의 국교를 단절했다. 하지만 국교 단절 상태가 장기화되면 무역관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청일전쟁 직후부터 조선과 청나라는 국교 재개를 위한 움직임을 개시했다. 

그런데 국교 재개의 방식을 두고 양국은 입장차를 보였다. 조선은 '이번 기회에 서양식 조약을 체결하여 상호 대등한 국교를 맺자'는 입장을 취한 데 반해, 청나라는 '대등한 국교는 피하고, 통상관계 정도만 재개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당소의.
 당소의.
ⓒ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중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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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입장차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당소의가 조선 통역관 박태영을 만났다. 이 만남은 고종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고종은 일본의 간섭을 피할 목적으로 러시아군의 보호 하에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의탁한 상태였다.

대등한 조약의 체결을 요구하는 박태영에 대해 당소의는 "조선 군주가 러시아 공사관의 손님이 되어 있는데, 이 어찌 독립국 군주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조약 체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자 박태영은 "(우리 정부가) 러시아 병사 3천 명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러시아 군대만 오면 우리 군주께서 반드시 궁으로 돌아가실 겁니다"라고 답변했다. 고종이 외국 공사관에 있기 때문에 조선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면, 고종이 러시아 군대의 호위 속에 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때 당소의가 이렇게 답변했다.

"다른 나라 군대가 당신 나라의 수도에 주둔하면, 이것은 당신 나라가 다른 나라의 보호를 받는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군대 없이는 독립할 수 없다는 뜻이고, 또 당신 나라의 군주에게 자주권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다른 나라가 보호하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인 겁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속국과 무엇이 다릅니까?"

당소의의 말은 한마디로 "군사적 자주권도 없는 나라가 무슨 독립국이냐"는 것이었다. 독립국이 아닌 나라와는 대등한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미사일 사거리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나라. 이런 나라는 당소의가 말한 '자주권이 없는 나라'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런 나라를 제후국이라 불렀다.

미사일 사거리가 1천 킬로미터를 넘는가, 1만 킬로미터를 넘는가, 아니면 지구를 한 바퀴 돌 만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미사일 사거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사거리가 100킬로미터밖에 안 된다 해도 부끄럽지 않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 사거리가 지구 한바퀴를 돌 수 있는 4만 킬로미터가 되더라도 부끄러운 일 아닐까? 스스로 결정하는 나라는 천자국이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나라는 제후국이기 때문이다.


태그:#탄도미사일 사거리, #한미 미사일 협정, #자주국, #제후국, #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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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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